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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Sep 06. 2021

‘우리는 뱅크시 당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2465


‘우리는 뱅크시 당했다’ -알렉스 브랜식, 소더비 유럽 현대미술 책임자





2018년 영국 소더비 경매장에서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가 한화 약 15억 원에 낙찰된 순간, 액자에 설치된 파쇄기를 통해 작품이 파쇄되는 충격적이며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바로 작품의 작가인 뱅크시. 그다음 날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라는 피카소의 문구를 인용하게 되면서 그림이 경매에 나갈 것을 대비해 미리 작품에 파쇄기를 설치했음을 밝혔다. ‘현대 미술 시장의 거래 관행을 조롱하고 예술의 파괴와 자율의 속성을 보여주려 한 기획’으로 해석한 알렉스 브랜식, 소더비 유럽 현대미술 책임자는 이러한 아트에 “우리는 뱅크시 당했다(Banksy-ed)”라는 말을 남겼다.





뱅크시는 1990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예술을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브리스톨 담벼락에 낙서를 남기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하지만 당시 브리스톨에서 그래피티는 불법이었고,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잡으려는 단속은 더욱 심해졌기에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벽에 빠르게 남기고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만 했다. 그렇게 뱅크시는 ‘스텐실’ 기법(두꺼운 종이에 원하는 모양을 뚫고 벽에 고정하여 잉크를 분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미리 준비한 틀을 건물 외벽에 고정한 뒤 재빠르게 잉크를 분사하고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는 신원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작가로 특유의 사회 풍자적이며 파격적인 주제의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뱅크시가 낙서미술을 시작할 무렵은 그래피티를 흔히 ‘저항미술’의 상징, 낙후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거리미술’로 인식 하기보다는 아마추어들의 한물간 퇴행 미술이거나 거리를 더럽히는 범죄행위로 취급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 가장 자주 등장한 것은 ‘쥐’다. 세상이 가장 어두운 순간에 돌아다니며 생존하는 쥐는 ‘저항’과 ‘생명력’을 상징하기에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을까. 더불어 쥐(Rat)는 예술(Art)의 철자를 바꾼 아나그램으로 “쥐는 바로 우리, 권력이나 자본의 힘에 눌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 못 하는 무력한 개인이 그들이 만든 시스템에 항의할 수 있는, 아직은 생명이 부여한 야생성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초상이다.”라고 뱅크시는 말했다. 스위스 바젤 <Messe>에서 전시 중인 <뱅크시–Building Castles in the Sky>에서 역시나 쥐가 등장하는 다수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뱅크시의 은 90년대 미국 랩퍼인 ‘갱 스타’를 흉내 낸다. 힙합 모자와 체인 목걸이를 한 쥐가 “붐 박스”라고 알려진 전형적인 힙합 액세서리인 대형 휴대용 스테레오 옆에 자리한다. 그 위에는 붉은색으로 휘갈겨 쓴 글씨가 보이는데, 글자는 뱅크시의 인쇄소인 Pictures on Walls를 지칭하는 POW이며, 동시에 Prisoner Of War, 전쟁 포로를 상징하기도 한다. Gangsta는 뱅크시가 브리스톨에서 활동할 때 그에게 영향을 미친 힙합 문화의 아이콘인데 ‘저항’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쥐를 그려내면서 미움받고 쫓기고 박해받는 상황 속에서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모습을 담아낸다.






한 남자가 폭동의 복장을 하고 화염병을 던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화염병 대신 색깔이 예쁜 꽃 한 다발을 들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으로 예루살램의 한 차고 옆에 그려졌고 전쟁 대신 평화를 이야기한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 속에서 평화를 그려낸 뱅크시는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사람을 그려냈는데, 꽃다발은 평화뿐만 아니라 삶과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며 오랜 분쟁으로 잃은 생명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본인을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하는 뱅크시는 2019년 12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을 그래피티로 가득 채웠다. 베들레헴이 속한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는 중동 전쟁 이후, 거대한 콘크리트 분리 장벽이 새워진 곳인데, 국경 지역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인권 유린의 장치이자 군사적 전략이다. 뱅크시의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게 기념할 동안 정작 크리스마스의 기원지인 베들레헴에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사람들의 관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Girls with Balloon>은 아마도 그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꿈과 희망을 놓치는 것인지, 꿈꾸는 것인지 모호한, 그렇지만 아마도 항상 희망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작품은 아니었을까. 앞에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2018년 영국 소더비 경매장에서 파쇄기에 갈려 나갔다. 이후 이 작품의 이름은 <쓰레기통 안의 사랑>이라는 제목이 새로 붙게 되었다. 미술 작품은 돈 있는 사람들만 구매할 수 있고 미술은 그들만의 영역이라는 인식을 깨트리는 동시에 예술계에서 작품성이 돈으로만 평가되는 현실을 비판한 예술 행위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파쇄된 이후 그의 작품가격은 더욱 상승하게 된다. 그는 그가 써낸 책에서 “우리가 보는 미술 작품은 선택되어진 소수 화가의 작품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소수 그들의 사람들이 전시를 기획하고 홍보하고 구입하며 미술 작품의 성공을 결정한다. 갤러리에 간 당신은 단지 백만장자들의 장식장을 구경하는 관람객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누군가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경찰이 되지만, 뱅크시는 ‘더 좋아 보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술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자본주의, 전쟁, 종교, 현대사회, 미술시장 등을 솔직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거리 위의 예술가 뱅크시의 전시는 전 세계 각국을 돌면서 그의 철학과 예술세계에 열광하는 팬들을 만난다. 서울에서도 아시아 최초로 전시가 개막되었지만, 개막 전부터 ‘가짜(Fake)’, ‘원화 존재 여부’ 등 여러 의문이 제기되면서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뱅크시 공식 홈페이지에는 전 세계를 무대로 돌고 있는 전시가 ‘가짜’라고 명시해 놓았지만, 아트 오브 뱅크시 주최 측은 “작품의 이름과 제작연도, 제작 의도 등을 뱅크시가 설립한 인증 기관인 ‘페스트 컨트롤’의 자문을 거쳐 준비한 전시이기에 절차상 하자는 없다”고 전했다. 현대의 상업 예술 시스템을 비판하는 뱅크시의 허락을 받지 않고 열린 전시라는 의미에 설왕설래가 벌어졌지만 애초에 익명으로 활동하는 특성과 ‘그래피티’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뱅크시가 ‘저작권’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전시 자체를 제지하지 않는 한 전시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더불어 뱅크시가 전달하는 ‘의미’와 ‘메시지’에 초점을 둔다면 스위스 바젤에서 관람한 뱅크시 전시 역시나 작자인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기에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과연 우리가 뱅크시 당한 것인지, 뱅크시가 뱅크시 당한 것인지는 글을 읽고 난 후에 생각해 보기를 추천한다. 뱅크시의 예술관과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고 설왕설래가 오가는 이 부분 또한 흥미로운 예술에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뱅크시 당한 걸까요?’


                    

사진 출처

https://www.dw.com/en/shredded-banksy-painting-back-under-the-hammer/a-59080688

https://www.banksy.co.uk/out.html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a8CegT8CUE

https://www.youtube.com/watch?v=7PGMNM9wKrA






글 아트렉처 에디터_uumin_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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