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서 치매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가슴 뭉클한 장면이 있었다. 우울증과 약한 치매 증상이 있는 환자에게 의사는 어떤 글을 읽어보라 지시한다. 환자는 진료실에서 글을 낭독하다가 운다. 정확한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니 아마도 '왜 사는가'에 관한 법륜스님의 글 중 한 편 아니었나 싶다.
"사람은 왜 살까? 사는 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삽니다."
환자는 천천히 글을 낭독한다. 이어 "다람쥐나 토끼는 의미를 찾아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삽니다. 천하 만물이 다 그냥 삽니다." 에서 울음이 터지고 만다. 아, 티브이 앞에 멍청히 앉아있던 나도 함께 탄식한다.
이런 마음 뭘까. 인생은 너무나 깨지기 쉽고 취약한 것이라는 자각. 별것 아닌 인생을 너무 무겁게 들고 있느라 그간 내 팔이 아팠구나 하는 안도감과 약간의 억울함, 저릿한 마음.
가을이다. 봄과 여름, 누추한 나를 겨우 가리고 지내왔는데 뜨거운 태양은 사리지고 선득 한 바람만 휘잉휘잉 불어 대니 낙엽 더미같이 허술하게 덮여 있던 마음의 구멍이 그만 훤히 드러난다. 제대로 살고 있니. 구멍 속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나는 되묻는다. "제대로가 도대체 뭔데요!"
죽기 전 날까지 이 질문이 들려올까 겁이 난다. 그 제대로를 알고 눈을 감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저 오물오물 풀을 뜯어 먹는 토끼처럼 밥을 해 먹고 아이를 배웅하고, 국을 끓이고 게을러 퍼져있거나 약간의 의욕이 있는 날에는 무언가를 하려다가 실패하거나 조금 한다. 원하는 미래가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자격증 공부도 하나 하고 있다. 자격증 강의를 틀 때마다,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볼 때마다 '필요할지도 몰라서' 한다는 게 어쩌면 어리석게 느껴지지만. 모르겠다. 토끼처럼 기린처럼 그냥 '뭔가'를 '하고' 산다.
에단 호크의 소설, <완전한 구원>을 읽고 있다.
인덱스를 붙인 문장은 이것.
"어쩌면 사람들은 그 무의미함을, 인생의 철저한 무가치함을 마주 본다면 그 공허의 무게에 짓눌려 휘청거릴까 봐 무서워하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두 번째 인덱스는 이것.
"나도 필요해지면 남편을 위해 똑같이 할 거예요.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우린 같은 믿음을 갖고 있어요. 사랑은 감정이 아니에요. 행동이에요."
인생의 허무에 첫 인덱스가 붙었지만 두 번째 인덱스가 '그래서?'의 대답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