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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번째 생일을 자축하며!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껏 존재하는 감사함에 대하여

"엄마는 나나, 나는 유유, 아빠는 뚱뚱!!!"


토요일 아침부터 호텔방 안이 우리셋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웃음으로 만들어진 공기가 창문을 뚫고 우리를 태울 것처럼 내리쬐는 햇볕보다 뜨겁다. 요즘 회사에서 각자의 영어 이름을 만들고 그것을 계속 사용하라고 내려온 지침이 핫이슈이다. 이미 여타의 기업들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제도이지만,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보수적인 이 곳 은행에서 나타난 이런 제도가 낯설기만 하다. 처음에 영어 이름을 만들라고 했을 때는 모든 직원들이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대충 영어 이름을 지어 제출했다. 하지만 우리 지점에서는 꽤나 열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점장님한테도 영어 이름을 부르면서 말을 하게 되니 실제로 더 수평적인 느낌이 든다.


나는 아침부터 남편과 이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남편이 물었다. "그래서 당신 영어 이름은 뭔데?" 내가 말했다. "어? 나는 NANA야! 내 이름이 워낙 쉬워 그런지 지점에서 제일 많이 불리는 것 같아. 처음에 부장님이 나 놀린다고 내 영어 이름을 자꾸만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게 우리 지점에 이 문화가 정착하는 견인 역할을 했다니깐. 영어 이름 부르는 거 너무 재밌어!"라며 신나게 말하는 나를 침대에 앉은 다섯 살 아들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더니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의 영어 이름이 NANA야? 음, 그럼 나는 뭐하지?" 아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녀석은 이미 진지하다. 미간이 살짝 찌푸러진 아들은 생각의 마침표가 찍혔는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럼 YUYU 할래!!!!" 자신의 이름에서 차용해 온 것이 분명함과 동시에 엄마의 영어 이름을 생각해 보니 꼭 두 글자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표정과 말투가 너무 귀여워 나와 남편은 '큭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들을 칭찬했다. 너무 멋진 이름이라고! 나는 녀석의 다음 생각이 궁금해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러면 아빠는 어떤 이름이 좋을까? 우리 아들이 지어줘 볼까?"라는 내 질문에 아들의 표정이 또다시 진지해진다. 잠시 후 아들이 말했다. "어~~ 아빠의 영어 이름은 '뚱뚱'이야!" 그 순간, 나와 남편은 포복절도했고 아빠 엄마의 그런 모습이 또 웃기는지 아들 녀석도 침대에서 떼굴떼굴 구르며 웃기 시작했다.


남편이 말했다. "인정 인정! 진짜 아빠가 요즘 뚱뚱해지기는 했어. 이제 다시 살 뺄 거야!" 올여름까지 야심 찬 다이어트로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던 남편은 내가 9월 말에 코로나 확진자가 되면서 아들 녀석과 단둘이 2주 간의 자가격리를 했고 그때 그는 '확찐자'가 되었다. 그 후 회사생활과 박사과정을 병행하면서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현저하게 많아지다 보니 나날이 살이 포동동 올랐다. 최근에는 건강검진 보고서에서 '비만'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고는 꽤나 충격을 먹었더랬다. 아들이 지어준 영어 이름 '뚱뚱'이 왠지 그에게 '비만'이라는 단어보다 더 충격을 준 것 같다. "오늘 여보 생일만 지나고 나면 다시 다이어트 돌입이야! 앞으로 맛있는 거 먹자고 하면 안 돼! 알았지?"라며 남편은 레이저가 나올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나의 서른일곱 번째 생일이다. 나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내 생일에 휴가를 낸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은행원이라는 직업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한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집단에는 소위 진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때로는 진상 고객으로 인해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날도 수두룩 빽빽인데, 생일날마저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었던 신입시절에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나는 내 생일에 절대 은행에 있지 않겠어!'라고.


그 후 매년 생일에 휴가를 썼는데, 올해는 토요일이라서 휴가를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2020년 하반기에 코로나라는 변수에게 직격탄을 맞았던 내 삶에서 가족이 주는 소중함은 어마어마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온전히 내 생일의 기쁨을 맞고 싶다는 생각에 생일 이틀 전 휴가를 쓰고 호텔을 예약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코로나가 진정될 거라 예상하며 사 두었던 호텔 숙박권이 이렇게 사용될 줄이야! 하루에 천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이라 호텔의 시설들도 이용할 수 없고, 그렇다고 어디 놀러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온전히 우리 가족 셋이서 붙어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거라 확신했다.


비록 호텔방에 콕 박혀서 보내는 휴가여도 두 남자와 함께 있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일 거라는 내 생각은 정확히 맞았다. 두 남자와 함께하는 호텔에서의 72시간은 행복 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면 집보다 좁은 공간에서 보내는 것이 뭐 그리 좋을까 싶지만 나는 좋았다. 두 남자와 함께 나란히 자고 다 함께 눈 뜨고 셋이서 오손도손 끼니를 챙겨 먹고 잘 때까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없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두둥실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나는 꽤나 생일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수많은 날들 중에 한 날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생일이라는 그 날이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하다. 내게 생일이라는 한 날짜가 부여됨으로써 나는 세상에 태어난 기적 그 자체를 소유했다. 우리 모두는 약 3억대의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뤄내는 수정란, 그 작은 씨앗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3억 마리의 정자가 경쟁을 시작한다. 그중 단 하나의 정자만이 난자 속으로 들어가 비밀의 문을 열고 엄마의 자궁에 착상한다. 열 달 동안 사람이 될 준비를 하는 작은 씨앗은 어느 날, 세상 밖으로 나와 '진짜 사람'이라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만난 그대와 나, 그러니 우리에게 생일이라는 날짜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나는 감사한다. 지금까지 나를 낳고 길러주시고 이제는 우리 아들에게까지 사랑을 흘려보내 주시는 나의 부모님에게 말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볼 때마다 '왜 나에게는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걸까, 더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내 삶이 지금보다 나을까...' 하는 등등의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 헌신과 기도를 통해서 나는 점차 깨달아갔다. '나에게 이보다 좋은 부모님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게다가 평생의 가장 좋은 친구 여동생까지 내게 선물로 주셨으니 나의 부모님에게 내가 더 바랄 것은 없다. 그분들의 건강과 행복 외에는 말이다. 아직도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들도 많고 학대받는 아이들도 많고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존재하는 요즘 같은 때에, 나의 부모님이 거의 사십 평생을 함께 사시고 두 분 모두 살아계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안다. 그분들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셨고 나를 부족함 없이 길러주셨고 지금도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음이 얼마나 큰 감사함인지 이제야 철이 조금 든 나는 알 수 있다.




두 분이 만들어낸 사랑의 하모니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고, 그 작은 씨앗이던 한 아이는 어느새 다섯 살 아들을 둔 엄마가 되었다. 오늘 아침부터 엄마의 생일이라며 내 옆에서 계속 붙어서는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는 엄마랑 평생 같이 있을 거야!"라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의 부모님이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해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사랑스러운 녀석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엄마 생일이지만 OO이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야. 두 분이 엄마를 낳아주셔서 엄마가 존재하고 그 덕에 OO이 네가 지금 엄마 옆에서 숨 쉬고 있는 거니깐!"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녀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 꼬맹이가 이 말에 대해 알리가 없지.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벌써 깨닫는다면 아이가 아니지, 어른이지..'


슬기로운 호텔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핸드폰이 울렸다. 친정아버지이다. 언제쯤 집에 도착하냐는 질문에 대략적인 도착시간을 말했다. 그러자 친정아버지는 "엄마가 미역국 끓여놨어. 조심해서 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휴~ 요새 같은 때에 생일에 미역국 좀 안 먹으면 어때. 엄마도 참, 몸도 안 좋다면서 미역국은 왜 끓였나 몰라..'




미역국만 끓인 줄 알았는데 집에 도착해 보니 불고기며 오징어볶음에 육전에 샐러드 등등 한 상 가득한 생일상차림이다. 힘들게 이런 건 왜 준비했냐며 투덜거리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작년에는 엄마가 못 챙겨줬잖아. 올해 많은 일은 겪은 네게 생일상을 차려줄 수 있어 너무 좋다!" 그 말에 또 코 끝이 찡해졌다.


내가 코로나가 확진자가 된 그날부터 엄마는 매일 같이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추석 당일에도 큰딸인 나는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고 사위와 손자는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가족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지만 요즘 들어 매일 같이 천명씩 확진자가 발생하는 날들 속에 긴장을 풀지 못하고 지내는 엄마였다.


그 와중에 딸의 생일상을 직접 차려줄 수 있어 기쁘다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 건지 희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엄마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엄마는 무심한 듯이 봉투 하나를 건넸다. "엄마가 생일카드 썼는데 요즘 들어 몸이 안 좋아 그런지 눈도 잘 안 보여서 글씨도 안 써지고 손도 벌벌 떨리더라고. 나중에 읽어봐!"




사랑하는 우리 큰 딸,
생일을 축하하고 축하한다.
37번째 생일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예쁘기만 한 우리 OO.
금년 생일은 아픔도 고통도 많은,
잊을 수 없는 고난의 한 해였지만
이렇게 잘 이겨내주고 있어 고맙고 미안해.
엄마의 부족함 때문에
상처도 받고 미울 때가 있을 텐데
엄마를 용서하고 우리 서로
화목하게 지내기를 기도할 뿐이야.
OO야, 하나님의 축복이 네 가정 위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도한다.
생일 더욱 많이 축하해.

- 2020.12.19. 못난 엄마가 -


카드 위로 뜨거운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나는 안방에 있던 엄마를 찾아가서 엄마를 살포시 안았다.

"엄마, 카드 고마워.
사랑해."

나에게는 최고의 엄마인데 자꾸만 엄마는 왜 스스로를 못났다고 자책할까. 앞으로 엄마에게 더 많이 더 자주 더 강력히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마음먹어 보는 38살의 생일이다. 나중에 우리 아들이 외할머니에게 "엄마를 낳아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HAPPY BIRTHDAY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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