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리데이파머스 Jul 28. 2020

농부 코스프레는 재미있다. 실전 농부는 글쎄

농촌에서 살아남기 후덜덜

#1

 큰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다르게 햇빛이 내리는 주말이었다. 분명 얼마 전에 잡초를 제거해줬는데 멀칭비닐 사이로 크게 자란 잡초들이 눈에 띄었다. 잡초 제거 비닐 구멍마다 한 두 개씩 자리 잡은 잡초를 제거하면서 궁시렁거렸다. "정말 친구가 필요해. 잡초 제거일은 너무 외로워. 대구 친구를 매주 오라고 할 수 도 없고.. "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적용된 잡초 제거기가 미국에서 개발됐다는데 그런 기계를 소유하고 싶다. 높은 습도와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들 저기까지만 하고 마트 가서 맥주 한잔 해야지. 이렇게 말해놓고도 손은 눈에 보이는 작은 잡초까지 계속 뽑는 중이다. "아 쓰러질 거 같아. 정말 저거만 뽑고 마트 가자. 헉헉 " 영화관에서 팝콘을 한번 먹으면 다 먹을 때까지 계속 손이 가듯이.. 의외로 중독성 있는 작업이다. 왠지 나는 힘들지만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결국 계속 잡초를 뽑으려는 손을 진정시키고 마트에 도착했다. 이 땀을 주륵흘리고 난 뒤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의 짜릿함. 테이블에 앉아서 기분을 느끼는 와중에 농부 1, 2, 3이 등장했다. 어째 오늘은 일이 없으신가? 너무 한가로워 보였다.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농기계라고는 호미, 삽, 곡괭이만 가지고 있는 내가 그들을 통해 평소 많이 도움을 받아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농부 1의 트랙터로 올봄에 밭을 갈지 않았으면 어쩔 뻔. 삽으로 온 밭을 뒤적이다가 때려치웠을지도 모른다. 나의 작업 속도가 잡초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잡초로 뒤덮이는 건 순식간이었겠지. 그래서 소소하지만 순대와 소주 한 병을 사드렸다.



#2

농부 1 : 어때 요즘 잘 돼가? 저번에 밭 간 이후로 많이 심었어?


 조그마하게 농장일을 하는 걸 너무 신기하게 바라본다. 처음 보는 식물 이기도 하고 잘 돼가냐는 물음은 단골 질문이다. 그러다가 귀농 이야기로 흘러갔다.


농부 1  :  귀농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지나가다가 보니까 어떤 젊은 여자 2명이서 넓은 밭에서 낑낑거리고 있더라고.. 고구마를 심으려고 한대.  논을 사서 복토를 했는데 땅이 바늘도 안 들어갈 만큼 딱딱하게 굳어 있더라고.. 진짜 너무 딱해서 트랙터로 갈아줬어. 정말 딱하더라고.. 서울 어디서 왔대. 밭농사는 정말 논하고 다르게 힘들어 금방 늙어. 하는 게 아니야. 차라리 땅 사놓고 잊어버려..


나 : 힘든 건 두 번째고 정말 돈이 그렇게 안 되나요?


농부 1: 바로 저기에 보이는 콩밭 있지? 젊은 이가 보기에는 꽤 넓이 보이겠지만 저거 다 수확해서 팔아봤자.. 음.. 한 30만 원 되려나?


정말 말문이 막혀 버렸다. 30년 정도 농사를 지은 농부의 말이라 그대로 믿을 수밖에. 농부 1의 주력 작물과 나와는 전혀 달라서 직접 비교할 수 없겠지만 농촌 현실이 이 정도일 줄이야.


농부 2:  귀농해서 대출받아서 농사지으면 절대 빚 못 갚아. 정말 신중해야 해. 땅만 있으면 안 되고 농기계도 사야 하고.. 땅이 넓어지면 농기계 구입비, 유지비가 같이 증가하니까 빚 갚다가 끝나는 거야. 농촌 왔다가 망해서 가는 사람들도 많아..


나 : TV에서는 억대 농부들 소개도 많이 되잖아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된 거예요?


농부 2 : 정말 특수작물이거나 또는 매출만 높다는 거지 실제 남는 거는 별로 없어. 거의다 경비로 빠져나가..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할 뿐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긴 마트 사장님의 어르신이 작년에 3000평 밭에 고구마를 심어서 수확할 때 인건비랑 이리저리 다 제했더니 남는 게 250만 원이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농부 1 : 농사는 조그마하게 취미로 해야지 안돼~ 정말 안 돼. 그냥 땅 사놓고 잊어.


농부 3 : 할 거면 정말 바닥부터 시작해야 해. 처음부터 대출 많이 받아서 하우스 크게 짓지 마. 남들 보기에는 으리으리해 보일지라도 그렇게 하면 거의 끝이 안 좋아. 바닥부터 조금씩 조금씩 올라와야 한다니까.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맞붙이고 공중에 미세한 성장 그래프를 그리면서 설명했다.)


시작은 미약하다는 것.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3

그렇구나! 회사에서 하는 일을 대충 생각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시급 1만 여원의 돈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 그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사회생활을 회사에서 시작했고 그동안 월급만 받아봐서 그런지 막연하게 월급이라는 게 계속 나올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1시간 일해서 받는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런 훈련을 할 필요가 없어서이겠지. “요즘 1만 원 가지고 마트 가면 몇 개 못 담아!” 이러면서 1만 원의 가치를 너무 쉽게 생각했지.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세세하게 따져보지 못하고. 이런 훈련이 필요한데 말이야.

 자의든 타의든 언젠가 회사에서 나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방식을 강요당할 텐데.. 안전지대 속에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세상일을 와 닿게 느껴본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길.. 돈 1만 원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면 막연하게 생각하던 바닥 리밋의 실체를 깨닫게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무실 책상 인테리어 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