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23
황소고집
세상에서 나 보다 나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무살 나는
부모님이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을 때
무작정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 스승을 찾아 헤매었다.
그렇다.
우리가 언제 교통사고 날지 모르기에 그것을 대비해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는 것처럼
사람은 인생 밑바닥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벼랑 끝에 서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세상사는 일은 행복할 때 불행을 대비해 보험을 들 듯
사람도 언제 일어날지 모를 궁지를 대비해
자신을 꺼내 줄 의인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걸
스무 살 나는 대학이 가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도 친척도 내 등록금 대신 내어주는 이가 없었다.
그 때 알았다.
세상이 비정하다는 걸
그렇게 나는 항상 지금도 잊지 않고 사는 것들이 있다.
바로 사람조심이다.
사람은 사람을 흥하게도 하지만
그 사람이 사람을 망하게도 한다고.
사람을 잘 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하나 무너뜨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말이다.
어쩜 영화 같은 일보다 더 험한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게 사실이니까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쉬이 인연 맺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을 잘 만나면 운명도 바뀐다.
어떤 사람을 잘 만나면 그 운명과 인연된 모든 사람의 운명까지
바꾸게 된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사람을 잘 보아야 한다.
가짜 속에 진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을 쉬이 구별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인연을 대할 때
첫째 손해 보면 정리한다.
둘째 돈에 인연을 쉬이 자르고 본다.
셋째 득이 안 된다 싶으면 무시한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인연을 대할 때
첫째 자로 재듯 계산한다.
둘째 득볼 것이 있으면 접근한다.
셋째 득볼 것이 없으면 준걸 다시 빼앗는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얽힌 실타래를 자르는 건 쉽다.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리석거나 평범한 사람들은 쉬이 인연을 만나지 못한다.
왜냐면 그 의인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설픈 시험대에 올려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심판대에 올려 그 사람의 심지를 심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쉬이 거두지 않는다고 한다.
어리석거나 평범한 사람들은
쉬이 작은 돈에 사람을 사고팔기도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그릇이라는 게 아닐까
우의란 의란 그리 쉬이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건
가까운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자신의 운명을 바꿔준 사람을 한 평생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수록 없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거래로 만날수록 더 심해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나를 냉소적으로 판단해본다.
첫째 적어도 득보기 위해 쉬이 인연 맺지 않았고
둘째 한번 인연 맺으면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과는 평생을 간다.
셋째 끝맺지 못할 사람은 빨리 알아차려 더 깊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어렵사리 외롭게 잘 지켜 여기까지 왔다.
그것이 내 고집이다.
사람 사귀는 일만은 쉬이 인연 맺지 않는다.
그리고 인연 맺은 사람은 쉬이 인연 끊지 않는다.
그리고 내 스승으로 모신다.
그가 누구든
그래서 나는 일찍 나보다 어린 사람과 쉬이 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고집은 황소고집이다.
내 관 뚜껑 덮을 때 까지 변함없을 일이고
이런 내 철학은 내 자식들에게도 지킬 고집으로 가르칠 것이고
나는 죽는 날까지
스승 모시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아주 오래
내가 백 살이 되어
내가 내 스승을 모실 수 있을 날까지
평생 내 스승을 모실 것이다.
이것이 내 새끼들의 ‘스승’에게 바치는
최소한의 내 부모 된 도리라 믿는다.
긴 추석연휴
내 스승께서 말하셨다.
스승이 돌아가셨다.
그 스승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그렇게 나도 긴 연휴 내 스승의 스승을 만나는 일에
겸허한 시간이었다.
그래 내 스승이 아끼는 단 한 사람의 제자로 사는 일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당하는 불편과
늘 살을 자르는 혹독한 잔소리가 사실 그리 편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은 절대 공것이 없다.
그래서 그 잔소리에 나는 이렇게 납작 엎드려 산다.
‘늘 도다리처럼 살아라.’ 하셨던 나의 스승
그 스승이 슬픈 날
문득 나의 제자들을 돌이켜 보았다.
대학에서 시간 강사 4년. 겸임교수 4년
왕비재테크 카페, 왕비아카데미교육센터
2017년 10주년 오늘까지
그리고 보니 나는 제자가 한명도 없는 것 같다.
물론 나의 인간됨이 그리 좋지는 못하여도
남 피해 입히고 사는 팔자는 아닐진데.
나의 제자들은 웬만큼 나를 견디지 못 했던 건지
그렇게 내게 스승이라 칭하는 제자도 없고
어쩜 나 역시 나의 부족에
제자를 키운다는 생각을 쉬이 해 본 적이 없는 오늘인 것 같다.
내 성격이 겉보기에 매서운 북풍과 한설같은 사람이라설까?
아니면 내가 내 분야에 아직 탑이 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인가
작은 생각들을 가져보는 보름밤이다.
비쩍 말라 대꼬챙이처럼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십년 전 나는 오늘까지 팍팍하게 살며
내 스승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던 날들 위로
늘 훈계 속에 눈물 흘릴 때
나는 글을 썼다.
왕비 컬럼
왕비 미션
부자의 비밀
누가 읽든 누가 내 글을 칭하던 욕하던
제대로 제자가 되고자 애쓰며
내 스승이 되어줄 스승을 찾으며 발버둥 칠 때
내 스승이 되어 준 스승들
목숨 걸었는데 나는 여러 목숨을 살렸다.
나와 내 새끼들
그리고 감히 부끄럽지만
내 강의를 들어주셨던 많은 왕카인들
그렇다.
살아보면 자기를 낳아준 부모보다 자신이 더 잘되기를
바래주는 의인 스승이 있다.
나는 내 삶의 철학이 확고하다.
부모라고 다 자신편이 아닐 수도 있고
조 심으면 조가 되지만
조를 버리는 부모도 있다.
부모에게 거절당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이
나를 욕할지 모르겠지만
십년 전 내 남편이 재산을 탕진하고 살고자 발버둥 칠 때
병원에 쓰러져 퇴원하던 날
그 비싼 병원비를 계산한 사람은 내 가족들이 아니었다.
그게 내가 배운 세상이다.
핏덩어리 서너 살 사내아이가 내 곁에서 안 떨어질 때
그 아이를 돈 안 받고 봐준 사람들은 내게 없었다.
그 때 나는 피토하며 살아냈고
친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과 타협했다.
내게 세상의 평화가 찾아오고
그 사내아이가 이제 열다섯
누구의 손이 필요 없을 나이가 되고 보니
인생은 둔하면 안된다.
둔하면 탁해진다.
송곳이 닿으면 쓸모가 없어지듯
세상의 이치는 거대한 흐름인 것 같다.
성대한 이치는 막힌 것을 틔울 줄 아는 힘이다.
그래서
인간에겐 스승이 존재한다.
먼저 간 선생님이 계셔야 하고
자기를 이끌어 줄 스승도 있어야 한다.
긴 추석연휴
나는 내 곁에 스승에게
잊고 지낸 스승에게
그리고 나의 선생님들께
손가락이 아프도록 글을 썼다.
친필로 썼다.
스승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며
평생 의를 어루만지며 살겠다고
그리고 스승이 심어준 신념으로 살아내겠다고
이 초라하고 조촐한 내 삶에
스승이 되어주신 그 스승들의 가르침으로
적어도 내 삶이 궁색하지 않아서 너무 좋다.
만날 친구가 없어도
가까이 내 새끼를 볼 수 없어도
내 주변 친척을 만나지 못해도
기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건 세상의 이치를 각인시켜 준 내 스승이 있어 가능했기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려는 오늘
이 밤의 외로움을 맘 가는 대로 써본다.
왕비재테크 카페 왕카님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준 스승이 있었나요?
아니 아직도 못 만나셨나요?
십년 전 나를 처음 대면하던 날
적어도 넌 내가 키워주면
날 배신하진 않을 것 같구나.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당신 역시 당신의 가장 멋진 스승을 얻게 되시길
내 생에 가장 긴 추석연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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