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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영 Aug 19. 2019

진짜 어른의 맛

드롱기 커피 머신 ECP 31.21

‘카페인 수혈’이란 말을 좋아한다. 굉장히 다급하고 간절해 보이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것 같아서. 각성이 필요한 바쁜 현대인들에게 '카페인 긴급 수혈'은 필수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카페인에 맛을 들인 것은 언제였을까. 최초로 마신 아메리카노의 맛을 기억한다. 어느 겨울날, 친구와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시켜본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내 최초의 ‘블랙커피’였다. 쓰고 또 쓴데 묘하게 견디고 싶어 지는 맛, 억지로라도 친해져 익숙해지고 싶은 맛이었다. 나는 그게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견디듯이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억지로 친해지기 프로젝트'는 제법 성공적이었고, 대학교 4년 내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교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주문량의 8할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고, 나머지 2할은 민트 초코와 바닐라 라떼가 차지했다. 사실 그땐 각성을 위해 마신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당시 나는 커피가 맛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작정하고 ‘카페인 수혈’을 위해 커피를 마신 것은 이십 대 중반 즈음인 것 같다. 취업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카페인의 각성제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올빼미 형 인간이던 내가 최선을 다해 아침 형 인간으로 생활 패턴을 바꾸고자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실패했다.) 그 시기엔 기상 직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일찍 일어난 보람도 없이 낮 시간 내내 졸았다. 그리하여 위와 장을 포기하고 눈 뜨자마자, 공복에, 눈곱만 겨우 떼어 내고 커피를 한 잔 가득 타서 세 번에 나눠 흡입했다. ‘아, 이제야 좀 살겠다’는 주문 같은 말은 매일 아침 따라붙었다.




작업실을 오픈하면서 필요한 장비들을 적어보았다. 커피 머신은 모두가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장비 중 하나였다. 정말 고맙게도 친한 친구들이 드롱기 커피 머신을 선물로 보내주었는데, 직접 받아보고 나서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질러댔던 게 기억난다. 허리를 열-심히 꺾어 온 몸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인증 사진까지 찍어 보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멋들어진 커피 머신이 생겼다. 우리의 작업실에, 나의 2n 년 인생에 최초로 말이다.



작업실 분위기와 잘 맞을 것 같아 고른 검은색 커피 머신이 테이블에 안착했다. 필터 홀더와 홀더 접합부는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고, 다른 부분은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어 제법 가볍다. 아래쪽의 컵 받침대 부분까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어 위생 면에서 조금 아쉽지만 사용 직후 바로 세척해주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는 것을 잘 알지만, 보통은 바로 세척하지 않으므로 커피 찌꺼기가 들러붙어 굳어 있기 일쑤다. 나중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꼭 미리 닦아두어야 한다. 사실 제때 닦지 않으면 소재가 무엇이든 고생이다.) 컵 받침대 부분과 전면부까지 모두 스테인리스로 되어있는 상위 모델이 훨씬 위생적이겠지만 (역시나) 디자인만 보고 올 블랙 드롱기 커피 머신을 골랐다. 디자인에 매우 약한 사람이라 작업실에선 위 모델을 사용하지만 추후에 집에 둘 커피 머신은 조금 더 위생적이고 튼튼한 스테인리스 모델로 구매할 생각이다. 두 모델을 꼭 비교해보고 구매하시길 권해드린다.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신 지는 꽤 되어 익숙해진 참에 이런 신문물을 접하니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지, 이건 어떻게 끼우고, 원두는 얼마나 넣으며, 에스프레소는 잔의 어느 정도까지 채워 추출해야 하는지 등,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드롱기 커피 머신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작업실 메이트에게 단기 속성으로 과외를 받은 덕분에 조금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커피 추출할 때가 되면 버벅거린다. 손님이 오면 여유롭고 능숙하게 커피 한 잔 만들어 대접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능수능란하게 커피를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초반엔 손까지 떨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어쨌든 커피 머신을 새로이 접하게 된 이상, 그 옛날 옛적 아메리카노와 친해지기 위해 공들였던 만큼 드롱기 커피 머신에 관심을 쏟을 예정이다. 자주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자꾸 만져 커피를 대접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5년 경력의 카페 직원 같은 포스를 풍길 수 있지 않을까.



원두 속을 가득 채운 카페인 때문이든, 매일 아침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습관에서 비롯된 강박관념 때문이든, 커피 머신을 통해 커피를 내리는 그 과정 자체 때문이든, 우리는 꽤 자주 잠을 깨는 데에 커피의 덕을 본다. 드롱기 커피 머신은 내가 내린 커피 한 잔에 묘한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그 속에 든 카페인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며, 정성껏 만든 아이스커피로 타인의 갈증까지 멎게 할 수 있는 여러모로 쓸만한 물건이다. 생각보다 다양한 만족감을 주는 기특한 기기이고, 어른의 맛과 냄새가 나는 좋은 장비이다.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를  직접 내리는 어른이 되고 싶다면, 드롱기 커피 머신 적극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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