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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Jun 10. 2024

직장인의 마음(4)

4. 이 짓 때려치고 사업이나 할래요?


"인생이 너무 무료하고 지루해서 다 그만두고 싶어서요."

 

점심시간 즉석 떡볶이 냄비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후배가 침울한 얼굴로 속내를 털어놨다.

이 녀석이 입사한 지 몇 년 차더라 하다가 떠올리고 보니 나도  후배 연차가 됐을 때 같은 마음이었던 게 생각났다.


매일매일 타이트하게 반복되는 출퇴근, 특출 난 아이디어 없이 그저 매일 써 내려가면 끝인 보고서, 겉으론 하하 호호 웃지만 가끔은 미치도록 신경 쓰이는 사무실 내 타인들.

어찌 보면 서른 언저리의 소중한 시간들인데 이렇게 무의미하게 지내도 되나 싶고,

그렇다고 의미를 찾아 당장 사직서를 내고 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작은 환경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성격을 가지고서는 모든 걸 또 싹 바꾸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던 8년 차였던 때.




그때의 나도 직장 내 선배를 만나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면서 고민을 털어놓았더랬다.

밥 대신 맥주 한 잔 사달라는 말에도 조용히 웃으며 그러겠노라 했던 선배는

그냥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다는 내 말에 표정을 굳히더니 입을 열었다.



"가족 중 누가 아프다거나 남편과 사이가 안 좋거나 재정적 문제가 있거나 한 것도 아니면서 참 너 엄살이다 야."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남편과 성격 차이로 매일매일 언성을 높이다 결국 결혼 3년 만에 별거를 했고

최근 친정아버지는 새벽녘에 거실에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었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생사를 오가는 가족이 있고,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람에게 인생이 무료하다그니 지루하다느니! 

내가 미쳤지. 내가 도른자지!

(아무튼 그 선배는 이혼도 하지 않았고, 그 이듬해에 임신을 했으며 친정 아버지는 8년이나 지난 지금 건강히 잘 지내고 신다.)


어쨌거나 그날의 그녀만큼 생에 지쳤다거나해서 후배에게 버럭 화를 낼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던터라

나름의 위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질겅이는 떡볶이를 씹으면서 우울감을 토해내는 후배의 어깨를 툭 치며 가볍게 말을 걸었다.  



"우리 다 때려치고 사업이나 할래?"






사. 업.

직장인이 '이 짓 때려치고 말지' 하면서 직장욕, 직장 상사욕 하다가 궁극적으로 다다르는 결론의 말.

응용 문장으로서 '사업할래?' '장사할래?' '00 한 번 팔아볼래?' 등등이 있다.

하지만 이 대화의 끝도 결국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나곤 한다.


'사업, 그거 아무나 하냐?'


그래서 결국 다시 자리로 돌아와 쓰던 보고서를 쓰고, 하던 일을 하고, 꾸역꾸역 키보드를 두드리다 퇴근 시간을 맞이한다.


나와 후배도 마찬가지.

그녀와 나는 1시간 30분 동안의 황금 같은 점심시간 내내

이걸 팔아 볼까, 저걸 팔아 볼까, 이건 만들어 볼까, 저걸 시작해 볼까.

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담에 또 얘기해요."

"엉. 담엔 진짜 우리 사업 얘기 다시 해보자."


다음에 만나 또다시 사업 얘기를 한다 해도 결국 또 그다음의 결론은 또 똑같을 것이지만

또 그녀와 나는 당장이라도 때려치울 사람처럼

오늘과 같은 점심을 되풀이 하겠지.


누가 보면

의미 없고 결론도 없는 비생산적이고 쓸모없는 이야기.

하지만 이걸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다독이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러니까 직장인에게 사업은

어쩌면 도달할 수도 있고

도달할지도 모른다고

위로하고 자조하는

만능 치트키다.


그래서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에도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 동료들과

떡볶이를 먹고 샐러드를 비비면서

또 사업 얘기를 꺼내는 것이겠지.








나는 여전히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 할 것을 제대로 못 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그래서 자신감을 잃은 끝에 제풀에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 위에 생존 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곧바로 소외감이 찾아오고,

그것이 또 부당하게 느껴지고,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른바 청춘의 방황만이 아니었다.


-은희경, 빛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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