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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도 '공기를 읽는 감각'이다

눈보다 예민한 후각의 힘

by 권도연

경영학에서 전략과 데이터는 리더십의 핵심 도구로 간주된다. 재무 지표, KPI, 시장분석 등은 조직의 성과를 수치로 가시화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지도’ 역할을 한다. 이 데이터들은 리더가 직관이나 감에만 의존하지 않고,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 전략은 목표까지 가는 길을 설계하는 역할을 하고, 데이터는 그 길 위에서 현재 위치와 이동 속도를 확인하게 해주는 좌표와도 같다.


그러나 전략과 데이터만으로도 기업 운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출(데이터)이 감소했다고 해서 단순히 비용 절감(데이터)과 구조조정(전략)으로 대응하는 리더가 있다면 결과는 뻔하다. 조직 구성원의 사기는 떨어지고 팀 결속력은 느슨해질 것이며 리더에 대한 신뢰 또한 곤두박질 칠 것이다.


조직은 사람들의 감정과 에너지, 관계망이 복합적으로 얽힌 유기체다. 특히 팀원 개개인의 미묘한 반응, 서로 간의 긴장과 기대, 조직 전체에 흐르는 공기와 분위기는 단순한 데이터로는 포착할 수 없다.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데이터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사람의 마음은 데이터로만 읽을 수 없다. 직원들의 동기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략적 결정은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라고 말했다. 실제 IT 스타트업에서 매출 하락이 발생했을 때 CEO가 단순히 비용을 줄이고 인력을 감축했다가 팀 내 불만과 사기 저하로 제품 개발 속도가 느려져 더 큰 손해를 안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대표가 팀원들의 미묘한 신호를 읽고 불안감을 해소하는 소통과 지원을 병행했다면 어떠했을까. 단기적 대안은 눈앞의 손실을 줄일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성장과 신뢰 구축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나는 부업으로 조향 일은 하지만, 진짜 내 본업은 국회에 있다.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리더들과 일한다. 그중에는 매우 독선적인 사람도 있고, 철저히 계산적인 전략가도 있으며, 숫자와 성과만을 중시하는 관리형 리더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존경을 얻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끌림을 만들어내는 리더는 언제나 감성적 리더였다.



부업에서는 향도 만들고 리더도 되지만, 본업에서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월급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은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국회 본관. <사진출처: 시사오늘>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감성 지능(EI, Emotional Intelligence)이 뛰어난 리더일수록 조직 성과가 높으며 직원 만족도와 몰입도도 증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리더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은 조직 내 신뢰와 협력 수준을 결정짓는다”라고 강조했다. 숫자와 전략만으로는 읽히지 않는 조직의 ‘숨은 흐름’을 감지하고 활용하는 능력, 즉 감각적 리더십, 직관적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리더십 이론을 조향학과 접목시키며 재미를 느낀다.


조향학에서 조향사는 향의 미묘한 변화—예를 들어, 부드러운 플로럴에서 은근한 시트러스 톤으로 넘어가는 순간—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리더는 회의 중 팀원 표정, 목소리의 떨림, 미세한 몸짓 변화에서 조직의 숨은 신호를 읽어내야 한다.


“리더는 때때로 말을 멈추고, 그 자리에 흐르는 공기를 느껴야 한다.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조직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글로벌 IT기업의 리더는 중요한 제품 론칭 회의에서 팀원들의 말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눈빛과 몸짓에서 긴장감을 감지했다. 직관적으로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비공식 대화를 진행한 결과 팀원들이 사전에 발견한 버그를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었으며 제품 론칭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런 사례는 직관과 감각이 전략적 결정의 질을 높이는 대표적 예다.


실제 연구에서도 심리학자 Amy Cuddy는 “팀 내 비언어적 신호를 읽고 적절히 대응하는 리더가 더 신뢰받고, 팀의 성과도 높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순히 친절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 긴장과 감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적시에 개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얘기를 리더들에게 하면 그들은 종종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한다. “그건 태어나기를 무던하게 타고난 사람이거나, 특히 여성들이 더 잘하는 영역이지 않은가?”라며 스스로와는 거리를 두는 것이다. 마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람들의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선천적인 자질이자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큰 오해다.


직관은 흔히 ‘즉흥적 감각’으로 느껴지지만, 심리학에서 직관은 경험과 학습의 결과다. 게리 클라인(Gary Klein)은 전문가들이 복잡한 상황에서도 순간적인 직관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감이 아니라 경험 기반 패턴 인식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즉, 그 누구도 인정받는 리더가 되고 싶으면 경험하고 학습하면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감각으로 배우는 리더십, 조향사가 권하는 훈련법


조향은 향을 섞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훈련이다.

한 방울의 차이가 전체 조합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늘 예민한 촉을 세운다.

조직도 작은 감정의 균열이 성과를 뒤흔든다. 그래서 나는 리더십을 설명할 때 늘 조향의 언어를 빌려온다. 리더십은 결국 감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자기 인식은 ‘노트 감별’에서 시작된다.


조향사가 향 속의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를 구분하며 자신의 반응을 기록하듯, 리더 역시 자신의 감정을 세밀히 구분하고 관찰해야 한다. 명상이나 감정 일지는 일종의 후각 일지와 같다. 심리학자 Richard Davidson은 “자기 인식과 정서 조절 능력은 리더의 스트레스 관리뿐 아니라 의사결정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결국 자신을 모르는 리더는 타인을 읽을 수도 없다.


2. 관찰은 ‘블라인드 테스트’와 닮아 있다.


조향사가 향료의 이름을 가리고 그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듯, 리더는 회의 속 표정과 목소리, 제스처의 흔들림을 읽어야 한다. 처음엔 그저 기록하는 수준일 수 있다. 하지만 반복이 쌓이면 보이지 않던 패턴이 보이고, 그때부터 직관은 훈련된 감각이 된다.


3. 조직의 변화는 ‘잔향 추적’과 같다.


향이 시간에 따라 변하듯, 조직의 공기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성과가 떨어지거나 침묵이 길어질 때 그 뒤에 남은 ‘잔향’을 추적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후각이 기억을 자극하듯 조직의 작은 경험들도 감각적 기억으로 저장되어 다음 결정을 이끄는 단서가 된다.


4. 의사소통은 ‘블렌딩’이다.


조향의 마지막 단계는 서로 다른 향을 조화롭게 어울리게 하는 일이다. 리더십의 의사소통도 같다.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고, 공감과 피드백을 맞춰가는 과정은 곧 조직의 블렌딩이다. Harvard Business Review는 “정서적 언어화가 잘된 조직은 문제 해결 속도가 30% 이상 빨라진다”고 보고했다.








조향학적 시각에서 보면, 리더의 후각과 직관은 향을 구분하는 감각과 같다. 그것을 세밀하게 연마하는 과정이 바로 조직의 미묘한 신호를 읽고 대응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숫자와 전략만으로는 조직의 숨은 흐름을 읽을 수 없다.


심리학자 John Kotter는 조직 변화 연구에서 “리더는 단순히 계획을 실행하는 관리자(manager)가 아니라, 조직의 공기(Atmosphere)를 읽고 조율하는 촉매자(catalyst)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더십은 결국 수치와 보고서에 갇혀 있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의 표정, 침묵, 분위기 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 전략과 데이터가 조직의 지도를 그려준다면, 감각은 그 지도를 따라 걸어갈 때 필요한 나침반이 된다.


좋은 향기가 공간을 채우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듯, 좋은 리더의 존재 역시 구성원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함께 하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곧 조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리더들이여, 숫자 너머의 공기를 읽고, 전략 뒤에 남은 향을 감지하라. 그것이 오래도록 사람을 붙잡는 리더십의 힘이다.






https://www.nbn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07549



드디어 나의 리더십이자 향기의 결정체, Roslyn

내일부터 3일간, 서울뷰티위크에서 공기 속에 남을 향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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