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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May 24. 2024

동의가 더 필요할 때

A의 아버지 부고를 들었다.

나는 지인 B, C, D와 함께 모여 내 차로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B, C, D를 태우고 장례식장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는 동안 우리는 누가 대표로 향을 꽂을지, 절할 때 오른손이 위냐 왼손이 위냐 등의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A를 걱정하는 대화도 오고 갔다.

지인들을 먼저 내리게 한 후, 주차를 하고 로비로 들어갔다.


"들어가죠."


"잠깐만 누가 더 와야 해."


B가 말했다.


"다 왔잖아요."


"아니, 한 사람 더 와야 해."


"누구요?"


"있어. 다 왔다니까 잠깐만 기다리자고."


시원치 않은 대답이 답답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냥 참고 기다렸다.

누구라고 말을 안 해주니, 내가 모르는 사람이려니 했다.

몇 분 뒤에 E가 나타났다.


E는 우리 모두가 아는 사람이었다.

A와 B와는 친하지만, 나와 C, D는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C, D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B도 알고 있다.

E는 웬만한 사람이 불편해 할 만큼 심하게 관종끼가 있는 사람이다.

아무도 그가 왔을 때 화를 내진 않았다.

함께 조문을 하고,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E의 관종 끼는 여지없이 발휘됐다. 자리가 불편해서 우리는 예상보다  A를 맘껏 위로하지 못하고, 일찍 장례식장에서 나왔다.


그럴 때일수록 상황이 이러하니, E와 함께  가자고 B가 양해를 구했더라면 거기서 싫다고 생떼를 부리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오히려 오늘만큼은 E를 받아주자는 마음의 준비를 했을 테니 말이다.


살면서 심심치 않게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

상대가 싫어할 걸 알면 더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이해해 주길 바라며 어물쩡 넘어가 버리는 경우.




이 상황과 관계없는 K에게 하소연을 하며,


"내가 너무 까칠한 건가."


했더니, K는 자기에게도 B와 같은 성향이 있다고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 지인에게 동의와 배려를 구하는 용기도 건강한 관계맺기에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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