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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werhead Jul 08. 2024

올 여름, 에어컨 없이 살기로 했다

매일의 날씨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에어컨이 없는 집이라니? 이번에 이사하게 된 새집에 들어오자마자 의아했던 점은 그것이었다. 에어컨이 없다는 점. 아니, 에어컨을 설치한 흔적조차 없다는 점.


“사장님, 전에 살던 분은 에어컨 없이 사신 거예요?

(땀을 흘리며) “글쎄요, 정말 에어컨 없이 사신건가…”

언덕에 있는 이 많은 집들. 올라가는 것이 힘들수록 멋진 뷰를 누릴 수 있다는 단점과 장점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곳은 서울 언덕배기에 위치한 집. 이제까지 없던 더위가 닥친 6월말, 이곳에 오르느라 벌써 공인중개사 사장님과 나는 땀을 한바가지 흘린 뒤였다.


에어컨이 없는 집은 처음보는데, 그리고 한국에서 살면서 한번도 에어컨 없이 살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워지면 ‘에어컨 틀자!’며 항상 에어컨과 함께했던 지난날.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때는 집 밖보다는 확실히 덜 더운 느낌이었다는 점. 조금은 서늘하고 시원한 느낌이 있었다.

언덕 위에 위치한 서늘한 집. 산의 기운을 잔뜩 받아!

결국 집을 계약하고 이사를 오는날 가장 먼저 주문한 것은 선풍기였다. 에어컨을 첫날부터 설치할까 하다가 에어컨 둘곳을 먼저 보자고 하며 선풍기만 먼저 구매했다.


물론 몇 안되지만 그래도 차에서 엄마와 함께 세번은 왔다갔다 한 이삿짐을 다 옮기고 나서 땀으로 푹 젖은 옷을 선풍기를 쐬며 식혔다. 욕실에서 찬물을 조금 맞으니 금방 시원해졌다. 짐을 옮길때야 더웠지만 가만히 있으니 이내 땀이 식었다.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에어컨을 사지 말까…‘


친구가 이삿날 나의 새 집에 놀러왔다. 이 친구는 가나에서 일년 반 가량 의료봉사를 마치고 갓 귀국한 친구인데, 내가 우리집에 에어컨이 없으니 참고하라고 하니 자기는 가나에서 왔다며, 이제는 별로 더위를 안 탄다며 괜찮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에어컨 없이 잠을 청했고 자는 중 조금 더운 탓에 창문을 열어보니 시원해져 다시 잘 잘 수 있었다.

친구는 뜨개질을 참 잘한다. 직접 뜨고 만든 예쁜것들과 나의 옛날 사진들을 집들이 선물로 주었다.

이 집 뒤에는 산이 있다. 올라오는데는 조금 힘들어도, 산 기슭에서 나오는 시원한 기운인지, 나무가 많고 차나 전광판이 적어 한결 온도가 낮은지, 땅콩집같은 이 집의 네 방향으로 나있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매일마다 풍향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바람이 잘 들어오는 곳이다.


오래된 집인데, 참 오래되었어도 잘 지었다 느껴지는 집이다. 채광은 좋으면서도 햇빛이 길게 들어오지 않아 더워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지을 수 있지? 아마도 서향에 난 창문이 직접적으로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남향 앞쪽에 있는 건물이 조금은 빛을 막아주는 것인지.

아직은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나의 오피스. 작업방을 만들었다. 동남쪽으로 창이 나있어 채광이 좋고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며 뷰가 좋아 작업할 때 집중이 잘된다.

나는 올해 초에 미국 캘리포니아, 프랑스 파리에 잠깐 다녀왔는데, 그 두 지역 모두 에어컨을 틀지 않는 지역이었다.


캘리포니아는 사계절 내내 기온이 비슷한 편이고 여름에도 그렇게 습하게 더워지지 않아 에어컨을 틀지 않는 듯 했다. 게다가 그쪽은 보통 전원주택에서 생활하므로 층고도 꽤 높은 편이며 겨울에도 엄청나게 추워지지는 않아 특별한 난방도 안되어 있고,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생활하는 듯 했다.


프랑스 파리야,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곳으로 꽤 유명한 곳이라고 들었다. 파리도 5월에 가보니, 우리나라보다 확실히 서늘했고, 들어보니 여름에도 그렇게 더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알고보니 프랑스 파리의 위도가 48도, 한국 서울의 위도가 37도로, 꽤 많이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습하고 푹푹 찌는 시기가 있다보니 모두가 에어컨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발코니가 있고 에어컨은 없는 프랑스 파리의 집들

그러나, 언제부터 이렇게 에어컨을 모두가 쓰게 되었을까? 사실 나는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것도 싫어하는데, 에어컨을 오래 틀어놓은 곳의 공간에 오래 있다보면, 피부가 엄청나게 건조해지고, 머리와 눈이 아프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오래간다.


예전 회사를 다닐때에는 여름에도 무릎담요를 항상 덮고 있거나, 긴팔 가디건 지참이 필수였다. 그리고 안구건조증을 항상 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더운 나라에서 에어컨 없이 지냈던 경험은 작년, 발리와 태국에서 몇개월간 지낼때였다. 발리는 연평균 기온이 최고 29도, 최저 21도 정도로, 낮에는 덥지만 저녁이 되면 선선한 편이다.


특히 건기(6월~9월)의 경우에는 그늘에 가면 시원한 정도이니, 특별히 에어컨이 필요없다. 우기에는 우리나라 여름처럼 덥다. 특히 엄청 습하고 덥다면 곧 비가 온다는 뜻이다. 비가 오고 나면 조금은 선선해진다.

환기가 잘 되도록 만들어진 발리의 집들. 발리도 우기에는 굉장히 습해지기 때문에 창문을 많이 내야 한다. 그리고 층고도 높은 경우가 많다.

발리의 집들은 창문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방충망을 치지 않고, 벽에 일부러 구멍을 내어 놓은 집도 있었다. 방충망도 없고, 유리창도 없는 그냥 뚫려있는 벽. 벌레와 함께 사는게 너무나 당연한 곳이다.


나는 이렇게 발리에서는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잘 살았다. 발리도 당연히, 상업시설이나 외국인들을 위한 방들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에어컨 없이는 못사는 특히 북반구에서 온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이다.


나는 에어컨 없는 집에서, 땀을 흘릴 때에는 땀을 흘리고, 너무 더울때에는 에어컨이 있는 카페로 피신하였다가 집에 오곤 했다.


한국에서는 땀을 흘리는 것이 왠지 부끄럽다고 여겨졌었는데, 그곳에서는 모두가 땀을 흘리니, 당연한 것이 되어 이제는 남 앞에서 땀을 흘리는 것도 별로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나는 여름에는 어느정도 땀을 흘려줘야 몸에 좋다고 생각한다. 땀이 노폐물을 배출시키는데, 땀을 흘리면서 피부도 좋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나 나처럼 피부가 건조한 편인 사람들은, 특히나 더 중요하다.

치앙마이의 집들. 치앙마이는 집을 굉장히 컬러풀하게 지어놓았다. 알록달록한 것이 참 예쁘다. 치앙마이는 대부분 에어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치앙마이는 꽤 덥다.

태국은 치앙마이, 방콕, 코팡안에서 지냈었다. 치앙마이는, 성수기인 건기(1월~2월)에 갔었는데, 건기인데도 낮에는 꽤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낮 시간에는 에어컨을 틀고 지냈다.


그보다 위쪽인 빠이라는 곳은 훨씬 위도가 높고 산 중턱이기 때문에 고도도 높아서 겨울(그들의 우기, 1월~2월)에는 추울 정도였다. 그곳은 낮에는 엄청나게 덥지만 밤에는 추워서, 에어컨이 생각도 안 났었던 것 같다.


방콕은 엄청나게 더웠다. 에어컨이 없이는 정말로 살 수 없을 정도로. 방콕의 낮 시간대에는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가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 있거나, 차를 타고 다녔었던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방콕이 서울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껴졌는데, 사람들의 밀도도 높고 콘크리트 바닥에 차가 많고 전광판도 많아서 메가시티에서 나오는 어쩔수 없는 온도의 상승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코팡안은 더웠지만 대나무집인 hut 에서 잤는데, 선풍기로, 땀이 나더라도 잘 버텼다.


이건 옥상에서 주인 할머니가 키우시는 야채이다. 오늘 갓 따서 나에게 주셨다. 방울토마토가 어쩜 그리 단지, 여름의 맛이었다. 상추와 깻잎은 구운계란과 함께 먹었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서울에서 처음으로 에어컨이 없는 여름을 지내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장마가 시작되니 오히려 시원해져서, 지금이 여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마도 장마가 끝나고 나면 찌는 듯한 더위가 몇 주 이어지겠지. 그때는 정말로 피서를 가버려야 할까? 아마도 에어컨 설치 비용과 피서 비용이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에어컨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니, 시원하기 위해 창문을 열게 되고, 그날의 날씨를 조금 더 자세히 살피게 된다. 그날 그날의 바람과 온도와 습도를 그대로 느끼면서 매일을 보내니, 참, ‘자연스럽다’ 고 느껴진다.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다 무더위가 찾아오면… 나는 어디로 떠나버릴지, 에어컨이 나오는 곳으로 피서를 갈지, 울며겨자먹기로 다 끝나가는 마당에 에어컨을 설치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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