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이 시간이 길면 얼마나 길겠니
2022. 04
리나에게,
리나야,
태어난 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가는 너는, 정말 잘 크고 있단다.
너는 참 효녀야.
멀리서 친정 도움 없이 혼자 널 키우는 내가 별로 힘들지 않도록
너는 잠도 잘 자고, 먹는 것도 잘 먹고, 잘 울지도 않고,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네가 있기 전과 후의 내 인생.
아직 5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네가 나에게 주는 행복은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너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행복과 만족감을 주고 있어.
네가 크게 울어도 그저 네가 예쁘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생명체를 만들어 냈는지 경이로움에 목이 막혀올 때가 있어.
너는 스웨덴에서 태어났고 절반은 스웨덴 인이지만, 어쨌든 절반은 한국인이잖아.
네가 자라게 될 곳이 스웨덴이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잃지 않길 바라.
너는 내 유전자를 많이 받아 나를 더 많이 닮았으니까 한국 사회에서도 이질감이 없이 받아들여질 거야.
우선, 네가 한국말을 꼭 하길 바라.
내가 말할 때마다 너는 내 눈을 보고 정말 해맑게 웃어준단다.
그럴 때면,
아직 세상에 험한 꼴을 못 본 네 눈은 내 눈을 닮아 별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반짝거려.
무조건적인 신뢰를 담은 네 두 눈동자가 오롯이 나만 바라보면,
나는 정말 밤하늘의 별도 따다 줄 수 있을 것만 같아.
하루종일 너와 함께 누워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
내가 일을 쉬고 너만 바라보며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네 아빠가 혼자 열심히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걸 아는데도 가끔 네 아빠가 일 때문에 늦게 오거나 피곤해하면 화가 나.
아빠가 널 안 돌보는 게 아닌데, 아빠는 밖에서 일을 하고 오는데.
나도 힘들다 보니 아빠한테 짜증을 내더라.
마치 너를 돌보는 일이 짐인 것 마냥 서로 '네가 할 차례잖아' 하는 모습이 너무 싫었어.
그래서 괜히 너한테도 미안했단다.
이건 네가 이해해 주길 바라.
그냥 잠이 조금 더 필요한 것뿐이야.
육아라는 게 늘 잠과 쉼이 부족한 일이더라.
나의 하루가 오로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끔 벅찼거든.
그래도 네 아빠가 나도 친구 만나고 기분 전환 겸 놀다 오라고 배려해 줬어.
(근데 네가 아빠랑만 있으면 그렇게 3~4시간을 내리 울기만 했었어)
나랑 네 아빠는
처음 해보는 육아지만, 나름 잘 버티고 있어.
하루하루 커가는 네 모습에 순수한 행복을 느끼며 말이야.
이렇게 너와 나,
열렬하게 서로 필요로 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면 얼마나 길겠니.
하고 싶은 만큼 네 말랑한 볼에 뽀뽀하고,
내 품 안에서 잠든 너를 꼭 끌어안은 채
아기 냄새가 나는 네 살결과 네 머리카락을 마음껏 만지고,
작디작은 니 손과 발을 하루종일 조물조물거리고,
네 미소와 네 눈동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 순간.
너와 내 인생에 길면 얼마나 길겠어.
조금 더 크면
내가 하는 뽀뽀가 부끄러워서 날 밀어낼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