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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asson Oct 05. 2023

L에게 쓰는 편지

#04. 이 시간이 길면 얼마나 길겠니

2022. 04

리나에게, 



리나야, 

태어난 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가는 너는, 정말 잘 크고 있단다. 


너는 참 효녀야. 

멀리서 친정 도움 없이 혼자 널 키우는 내가 별로 힘들지 않도록 

너는 잠도 잘 자고, 먹는 것도 잘 먹고, 잘 울지도 않고,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네가 있기 전과 후의 내 인생. 

아직 5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네가 나에게 주는 행복은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너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행복과 만족감을 주고 있어. 

네가 크게 울어도 그저 네가 예쁘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생명체를 만들어 냈는지 경이로움에 목이 막혀올 때가 있어. 


너무 귀여운 네 발
우리 셋 엄지손가락
너무 작은 네 발. 나는 네 손&발 매니아.



너는 스웨덴에서 태어났고 절반은 스웨덴 인이지만, 어쨌든 절반은 한국인이잖아. 

네가 자라게 될 곳이 스웨덴이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잃지 않길 바라. 

너는 내 유전자를 많이 받아 나를 더 많이 닮았으니까 한국 사회에서도 이질감이 없이 받아들여질 거야. 


우선, 네가 한국말을 꼭 하길 바라.

그래서 내가 더 많이 노력하고 있어.

세 사람 네 사람 몫까지 말하려고 하루 종일 조잘조잘거리고 있지. 

내가 말할 때마다 너는 내 눈을 보고 정말 해맑게 웃어준단다.


그럴 때면, 

아직 세상에 험한 꼴을 못 본 네 눈은 내 눈을 닮아 별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반짝거려. 

무조건적인 신뢰를 담은 네 두 눈동자가 오롯이 나만 바라보면, 

나는 정말 밤하늘의 별도 따다 줄 수 있을 것만 같아. 


누워서 마주보고 웃고 있는 너



하루종일 너와 함께 누워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 

내가 일을 쉬고 너만 바라보며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네 아빠가 혼자 열심히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걸 아는데도 가끔 네 아빠가 일 때문에 늦게 오거나 피곤해하면 화가 나. 

아빠가 널 안 돌보는 게 아닌데, 아빠는 밖에서 일을 하고 오는데. 

나도 힘들다 보니 아빠한테 짜증을 내더라. 

마치 너를 돌보는 일이 짐인 것 마냥 서로 '네가 할 차례잖아' 하는 모습이 너무 싫었어. 

그래서 괜히 너한테도 미안했단다. 

이건 네가 이해해 주길 바라. 


그냥 잠이 조금 더 필요한 것뿐이야. 

육아라는 게 늘 잠과 쉼이 부족한 일이더라. 

나의 하루가 오로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끔 벅찼거든. 

그래도 네 아빠가 나도 친구 만나고 기분 전환 겸 놀다 오라고 배려해 줬어. 

(근데 네가 아빠랑만 있으면 그렇게 3~4시간을 내리 울기만 했었어)


나랑 네 아빠는 

처음 해보는 육아지만, 나름 잘 버티고 있어. 

하루하루 커가는 네 모습에 순수한 행복을 느끼며 말이야. 


이렇게 너와 나, 

열렬하게 서로 필요로 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면 얼마나 길겠니. 

하고 싶은 만큼 네 말랑한 볼에 뽀뽀하고, 

내 품 안에서 잠든 너를 꼭 끌어안은 채 

아기 냄새가 나는 네 살결과 네 머리카락을 마음껏 만지고, 

작디작은 니 손과 발을 하루종일 조물조물거리고,

네 미소와 네 눈동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 순간. 


너와 내 인생에 길면 얼마나 길겠어. 



조금 더 크면 

내가 하는 뽀뽀가 부끄러워서 날 밀어낼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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