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스톡홀름 산부인과 연계 호텔에서 우리 셋이 보낸 첫 이틀
2021.12.09
리나에게,
출산이 끝나고 후처치를 한 다음 병원에 연계되어 있는 환자호텔로 자리를 옮겼어.
출산하는 동안 출혈이 상당했었대.
반드시 소변을 봐야 병실을 나갈 수 있다고 해서 화장실로 갔는데
변기에 앉는 순간 미칠듯한 오한으로 온몸이 달달 떨리더니 변기 앞으로 고꾸라졌어.
아무래도 출혈량 때문에 잠깐 찾아온 쇼크였던 것 같아.
네 아빠가 와서 뒤처리를 해줬어.
여담인데,
네 아빠랑 나는 출산을 기점으로 전우가 된 기분이야.
정말 출산하는 동안 볼꼴 못볼꼴 옆에서 다 보고, 소변보다 앞으로 고꾸라진 와이프 뒤처리까지 해주고 말이야.
그래도 네 아빠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야.
하는 짓이 가끔 참 꼴 보기 싫어서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때가 많지만
네 아빠는 참 다정한 사람이란다. 적어도 나랑 너한테는 말이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너를 안고 병원 연계 호텔로 이동했어.
네 할머니도 여기 없고, 산후조리원이라는 개념도 없는 이곳에서 과연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었어. 그런데 여기 여자들 다 잘 회복해서 갓난아기 데리고 엄동설한에 산책 다니고,
눈 쌓인 공원에서 햇살 맞으며 모유수유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라는 심정으로 각오를 단단히 했어.
호텔룸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세상에는 오로지 너, 나, 네 아빠만 남게 된 거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신생아 케어를 우리 둘이 잘할 수 있을까?
우선,
미역국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스웨덴 병원에서 미역국을 줄 일이 없잖아?
차가운 빵조가리랑 요거트만 먹게 되겠구나-
생각한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금방 깨달았어.
식당에서 아빠가 매 끼니마다 2인분씩 룸으로 가지고 왔어.
모유수유 때문인지 출산 여파 때문인지, 계속 허기가 져서 정말 싹싹 긁어먹었어.
사실, 밥이 너무 맛있어서 며칠 더 묵고 싶은 심정이더라.
나는 모든 게 무료였는데 (스웨덴은 임신부터 출산까지 거의 무료야),
네 아빠는 하루 숙박 비용이 600 sek (한화 약 7만 원가량)이었지만.
우리는 룸에 총 2일을 머물렀어.
내가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되지만 그냥 집으로 가고 싶어서 약 이틀만 머물렀어.
시간마다 조산사와 간호사가 와서 내 상태와 네 상태를 체크했어.
젖물리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기저귀 가는 방법도 가르쳐줬어.
네 아빠한테는 특별히, 출산 후 미쳐 날뛰는 호르몬 때문에 내가 많이 힘들 거라고 각오하라고까지 말해줬어.
(정말로 나는 몇 달가량을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미친 사람처럼 생활했단다)
아직 다 들어가지 않아서 볼록 나온 배,
콸콸 쏟아지는 오로, 그리고 회음부 열상과 생전 처음 겪어보는 지독한 변비에 정말 몸이 만신창이었어.
무엇보다도, 모유수유가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19시간 진통동안 잠 한숨 못 잤고, 출산 후에 몸이 다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네가 밥 달라고 30분~1시간마다 울어대서 계속 젖을 물려야 했어.
잠이 들 법하면 밥 달라고 응애응애. 미치도록 아픈 회음부에 어기적어기적 화장실을 힘겹게 다녀왔는데
이제 좀 쉬어볼까, 하고 누우면 밥 달라고 응애응애.
덕분에 내 유두는 살점이 뜯겨 나가고 피가 나, 한마디로 '너덜너덜'해졌어.
정말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어.
모유수유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네가 젖을 물 때마다 상처가 나고 짓무른 유두 때문에
발끝이 찌릿찌릿 손 끝이 하얘지도록 주먹을 꽉 쥐고 고통을 참아야 했어.
나 진짜, 엄청 울었다?
너는 배에 가스가 많이 차던 아기라 배앓이도 참 많이 했었어.
나는 또 내가 뭘 잘못 먹어서 그런 건 아닌지, 내가 이걸 먹어서 그런 건지, 저걸 먹어서 그런 건지,
미칠듯한 죄책감과 조마조마함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었지.
젖물리는 방법도 계속 헤매어서 조산사가 여러 번 알려주고,
심지어 퇴실했다가 며칠 만에 다시 조산사를 찾아가기도 했어.
새벽에 혼자 소파에 앉아 유튜브로 유선 뚫는 마사지 방법 영상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가슴을 쥐어뜯고는 했어.
수유를 해도 너는 계속 배가 고픈 듯 보였고
혹시 모유량이 적은데, 내 욕심에 너를 굶기고 있는 건 아닌지,
포기해야 하는 건지, 끝없는 고민과 걱정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지라,
둘 다 참 많이 헤맸어.
무엇보다도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나는, 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갓 태어난 너를 내가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어.
내 살점이 뜯어져 나가도, 내가 잠을 못 자도, 네 밥은 내가 먹여야 할 것 아냐.
참 많이 울었어. 모든 게 힘들고 낯설고 처음이었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건 호르몬의 농간이었어.
나는 툭하면 울었거든. 정말 나도 나를 감당하기 힘들었어.
그 모든 걸 옆에서 받아내야 하는 네 아빠도 얼마나 힘들었겠냐만은.
어느 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네 아빠가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어.
비행기 탑승 유사시, 구명조끼랑 산소호흡기도 어른이 먼저 착용한 다음에 어린이 착용을 도와주는 게 순서야. 네 몸을 먼저 챙겨야, 리나를 보살필 수 있잖아.
그리고 네 아빠는 네게 분유를 먹였어.
그래야 내가 조금이나마 쉴 수 있을 테니까.
그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기억들이 미화되어 있단다.
네가 태어난 후, 온전히 우리 셋이 함께 했던 네 인생의 첫 이틀.
낯설고 무서웠지만 네 아빠가 있어서 든든했던.
힘들고 지쳤었지만 네가 곤히 자는 모습이 예뻐서 행복했던.
의사 선생님이
네 이곳저곳을 체크해 주고 이상 없다는 소견을 주셔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늘 우리 둘만 있던 집인데,
네가 오니까 느낌이 참 다르더라고.
한 겨울이었어.
온 세상은 눈으로 가득했고 고요했어.
오후 3시부터 어두워지는 스웨덴의 겨울이었지만
온기 가득한 우리 집은 늘 수유등과 무드등이 은은하게 켜져 있었어.
그 겨울,
우리 셋이 보낸 겨울은 내가 기억하는 겨울 중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포근했고
가장 처참했지만 가장 행복했었다.
아참!
집에 돌아와서 네 아빠가 미역국을 자주 끓여줘서 다행히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단다.
내가 출산 전부터 계속 가르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