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ttitude May 16. 2024

찬스를 놓쳐서 영웅이 된(?) 손흥민

찬스를 놓치는 손흥민


어제 새벽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이 맨시티에 패배했다. 이로써 토트넘은 리그 4위까지 주어지는 챔피언스 리그 자격을 잃게 되었다. 스코어는 2-0이었지만, 1-0 상황에서 손흥민이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이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사상 최고 수준의 골 기댓값을 기록하는 손흥민이 이걸 놓칠 리 없다고 모두 생각했을 것이다.  카메라에는 손흥민이 볼을 잡고 달리는 순간 머리를 감싸고 뒤로 쓰러지는 상대팀 감독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보충 설명>

손흥민은 근래 10여 년 가까이 프리미어리그 최강팀인 맨시티 상대로 강하다. 맨시티는 현재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7년 동안 손흥민이 골을 넣은 경기는 모두 승리하지 못했다. 하나 승리한 경기가 있긴 한데,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4-3으로 승리했으나, 1차전(0-1 패)과 골 합산에서 밀려서 4강에 진출하지 못했으니 진 거나 다름없다. 합산 4-4 동률이었는데, 동률 시 원정 경기 다득점 규칙이 있던 당시 맨시티 홈구장에서의 손흥민의 2골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키퍼 선방에 막혔다. 상대 키퍼가 한 쪽 슛 각도를 좁히고 들어와서 반대쪽을 다리를 뻗어 막은 것으로, 매우 잘 막은 것이긴 했으나 더 바깥쪽으로 차거나, 한 번 더 드리블해서 키퍼를 제치던가, 키를 넘기는 플로팅을 히는 등의 다른 선택을 할 능력이 충분했던 손흥민이었기에 아쉬웠다. 경기라는 건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만일 손흥민이 골을 넣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상한 것은 여기서 시작된다. 손흥민이 골을 놓쳤는데 토트넘 관중들이 오히려 환호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자신의 팀이 절호의 골 찬스를 놓쳤고, 후반 막판이라 패색이 짙어지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도 좌절되는데, 이 모든 걸 능가하는 기쁜 일이 무엇이었을까? 



북런던 더비


영국은 사람들이 축구에 매우 팬심이 깊고, 역사도 오래됐다. 100년에 가까운 라이벌 관계도 존재하고 그들이 펼치는 경기에는 '더비'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 와중에 토트넘은 아스널이라는 팀과 북런던 더비 라이벌 관계다. 상상이상으로 서로 증오 수준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불문율로 서로 간에 선수 이적은 할 수 없으며(아예 없진 않으나 그들은 지금까지도 배신자 딱지가 붙어있다), 인간의 본능이 그대로 녹아 이들은 자기 팀의 성취보다 실패하더라도 상대 팀의 상실을 더 기뻐한다. 당연히 상대의 경기를 응원은커녕, 맞대결 경기가 아니면 관람조차 하지 않는다.



라이벌리가 너무 심해서 생긴 기묘한 일


하지만 이날은 상당수의 아스널 팬들이 이 경기를 입중계(유튜버들이 경기를 보며 각자 시청자에게 전달하며 리액션 하는 것) 했다. 더비 갈등을 넘어설 정도로 이 경기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요약하면, 아스널은 20년 만의 리그 우승을 할 기회를 맞이했다. 이날 토트넘이 맨시티를 이기거나 최소 비기기라도 했다면, 다가오는 주말에 열리는 최종전에서 자력으로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반면 토트넘은 이 경기를 이겨야 4위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 



토트넘이 챔피언스 리그를 못 가면 1년만 아쉽지만, 아스널이 우승하면 10년 동안 조롱 받는다.


이 문장이 확 와닿았다.  토트넘 팬 입장에서는 이기면 챔피언스리그 희망 이어가서 좋고, 지면 아스널 우승 못해서 좋은 꽃놀이패였던 것이다. 물론 최종전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건 아스널은 자력으로는 우승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트넘 팬들은 손흥민이 빅 찬스를 날려서 승리를 놓쳤음에도 오히려 동상을 세워주자고 한다.^^ 반면 아스널 팬들은 일제히 분노했다. 위 스샷에도 보이듯이, 평소 그런 걸 안 놓치는 손흥민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쏘니 너도 결국 토트넘 선수였구나, 우리 아스널이 우승하는 건 도저히 못 보겠던 거구나 등등 반응들이 재밌었다.


정말 손흥민의 마음속에 일말이라도 그런 라이벌리 의식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현지에서는 딱히 승리를 바라지 않는 현장의 분위기, 특히 그 일대일 찬스에서도 여느 때와 다르게 함성도 적었다고 하던데, 그런 것들도 찬스 미스에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분석한다. 


손흥민은 프로다. 그 순간에 본인이 골을 넣으면 리그 우승 판도가 어떻게 되고 그런 생각이 있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토트넘 감독도 불만을 토로했다. 돈 주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어디를 응원하는 거야 자유지만, 바로 뒤에서 자기 팀이 지기를 바라는 팬들이 있으면 불쾌할만하다. 


어쨌든 이렇게 토트넘은 경기를 짐과 동시에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도 진출 못한다. 참고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 여부는 자금 유입이나, 선수 영입에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잃더라도 오직 라이벌이 리그 우승 놓친 사실 하나에 팬들이 잔치 분위기인, 상상을 초월하는 라이벌 관계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브랜드를 탁월하게 만들어 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