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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비즈 Apr 20. 2022

카프카의 《변신》이 말하는 존재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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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 잤다고 가족에게 성질을 내버렸어요 - 최 대리의 이야기


나는 왜 이런 고된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날이면 날마다 여행이라니. (…) 기차 접속에 대한 걱정, 불규칙적이고 질 나쁜 식사, 자꾸 바뀌어서 지속되지도, 정들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 악마나 와서 다 쓸어가라지!

- <변신> 중에서


벌레로 변했지만 회사원 DNA는 고스란히 남았는지, 그레고르는 여전히 회사와 밥벌이에 대한 화를 참을 수 없다. 회사 생활이 얼마나 뭐 같으면, 벌레로 변한 와중에도 회사 욕부터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곧 책 속의 그레고르는 모든 걸 다 잊고 출근을 준비한다. 벌레로 변한 현실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 모양이다. 이내 그는 타야 할 기차 출발시간과 사장의 호된 꾸지람을 떠올리며 절망한다. 지각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 대리는 슬펐다. 벌레로 변해서까지 지각과 사장님의 꾸지람을 걱정하는 회사원. 자신도 바로 그러한 회사원이라는 사실에 우울해졌다. 회사원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걸까?



최 대리는 이쯤에서 작가가 궁금해졌다. 프란츠 카프카. 그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지역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보헤미아 지역은 여러 민족과 언어가 뒤섞여있는 곳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과 전쟁이 있어 온 분쟁지역이다. 이곳에서 카프카는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으로 자랐다. 불안정한 정치 환경 속에서 언어와 민족이 서로 다르다는 건 카프카의 정체성 확립에 큰 어려움을 줬을 것이다.


이런 성장 배경 속에서 카프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곱씹으며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묵직한 질문을 가슴에 숨긴 채 법률사무소와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일했던 카프카. 기계처럼 반복되고 오로지 돈만 좇는 월급쟁이 생활은 그를 더더욱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질문에 빠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가?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어야만 하는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그것이 없다면, 내가 벌레와 다를 게 무엇인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그렇다면 나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인간답게 사는 건 또 뭐지?


작가는 가족들을 위해 성실하고 소박하게 살아온 착하디착한 우리 그레고르를 왜 벌레로 변신시켰을까? 벌레의 등과 다리를 하고서도 회사에 지각할까 봐 걱정하는 천상 회사원인 우리 그레고르는 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까?



우리가 ‘무엇이 되었다’라고 말할 때, 그 판단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겉모습으로만 결정되는 것일까? 자전거를 개조해 자동차처럼 모양을 고쳤지만 자동차처럼 달릴 수 없다면, 그걸 자동차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책상을 의자로 고쳤지만 아무도 앉을 수 없다면, 의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자동차는 운전자가 원하는 장소로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의자는 사람이 편히 앉기 위한 목적이 있다.


그렇다. 무엇이 되었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 그 존재 목적을 따져 판단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 목적을 갖는가? 벌레는 어떤 존재 목적을 갖는가? 소설 《변신》에서 이 질문은 중요하다. 만약 인간만의 독특한 존재 목적이 없다면, 겉모습이 벌레로 변신했어도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목적 없는 인간의 거죽이 역시 목적 없는 벌레의 거죽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러한 결론은 가정부가 그레고르의 최후를 가리키는 단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러니까 옆방의 저 물건을 어떻게 치워버릴지,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 염려 놓으시라 이겁니다. 사실 벌써 다 해결되었으니까요."

- <변신> 중에서



그레고르를 보며 최 대리는 궁금했다. ‘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아내는 나를 어떻게 할까? 그 반대로 아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나는? 나아가 사랑스러운 아들이 벌레로 변한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았다. 고민해 보니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한 행동이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할 것 같았다.


사람이 벌레로 변한다는 문학적 상상은 그야말로 상상일 뿐이다.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최 대리는 자기 자신과 아내 그리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지금까지 해 보지 못한 질문을 했고, 답을 구하기 위해 골몰했다. 그 질문들은 안 그래도 엉성하기만 했던 자신의 자아관과 가치관에 구멍을 숭숭 냈다.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게 되자 최 대리는 살짝 짜증이 났다.


한바탕 소란스럽던 오전이 지났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이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최 대리는 문득 깨달았다. 최 대리와 아내 그리고 아들은 아직 벌레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최 대리 가족은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최 대리는 아내에게 전화했다. 기분은 좀 어떠냐며, 아침에는 미안했다며, 그리고 사랑한다며 쑥스럽지만 정확하게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라는 질문에 정답이 있을까? 사실 정답이 있건 없건, 최 대리는 벌레로 변하기 전에 함께 사는 가족들을 조금 더 아끼고 사랑하고 싶어졌다. 《변신》을 읽으며 만들어진 불안한 질문들 속에서 최 대리는 신기하게도 삶의 방향감각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 글은 책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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