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프로투잡러의 인생
솔직히 말하면, 처음 치킨집을 오픈할 때 걱정이 꽤 많았다.
나는 이유 없는 호의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맹 제안을 받았을 때도 솔직히 조금 어리둥절했다.
제안을 해줬던 형님은 치킨집이 너무 잘돼서
무려 30호점까지 직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20호점도 안 될 때부터 갑자기 연락이 계속 오기 시작했다.
치킨집을 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며,
나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잘된다면 왜 직접 직영으로 운영하지,
왜 나에게 인수하라고 하지?”
두 번째로 이상했던 건 계약 과정에서 보여준 각 지점별 재무제표였다.
너무 ‘그럴싸하게’ 꾸며놨다고 느껴졌다.
매출이 얼마까지 오르면 어떤 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아주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줬다.
그런데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내가 배운 게 하나 있다.
숫자는 절대 딱딱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내민 재무제표는, 마치 공식처럼 딱 떨어졌다.
마치 ‘이대로만 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듯.
예를 들어, 매출이 2,500만 원만 나오면 직원 5명을 둬도 매달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돼 있었다.
(내가 운영한 지점을 기준으로 말이다.)
계약 과정에서도 뭔가 급하게 떠넘겨진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예전부터 외식업을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마음,
가장 친한 친구를 돕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설마 지인 회사인데 나쁜 제안을 하겠어?“라는 안일함이 겹쳐 결국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치킨집을 열게 되었다.
오픈 첫날 매출은 40만 원이었다.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이라, 지인들의 도움 없이 오롯이 플랫폼 노출만으로 만든 매출이었다. 그래서 더 뿌듯했다.
하지만 그 뿌듯함도 잠시, 현실적인 재무 압박이 곧 시작됐다.
치킨집을 운영하며 빠져나가는 비용은 끝이 없었다.
수도·광열비
원자재 값
인건비
프랜차이즈 로열티
배달비
플랫폼 수수료
마케팅 비용
월세
지금 돌아보면, 나는 외식업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
오픈 준비에 목돈을 거의다 썼고,
통장 잔고에는 1,000만원 밖에 안남았었다.
첫 달 매출은 1,000만 원.
겉보기엔 선방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기장한 재무제표를 까보니 -800만 원 적자였다.
그나마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버틸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다음 달은 1,500만 원 매출.
적자 폭은 줄었지만 여전히 -600만 원.
생닭 유통기한이 짧아 주문 예측을 잘못하면 그대로 폐기였다.
몇 번의 실수가 누적되면서 타격이 컸다.
그 다음 달 2,000만 원 매출.
여전히 -400만 원.
배달 수수료는 운영 기간 동안 세 번이나 올랐고,
기름값과 닭값도 계속 뛰었다.
(나중에 뉴스에서 보니, 닭 가격은 하림이 담합으로 올려 과징금을 맞았다는 기사를 봤다.)
그다음 달은 2,500만 원 매출.
드디어 -150만 원까지 줄었지만 여전히 적자였다.
무언가 이상했다.
계약 당시 받았던 프랜차이즈 재무제표에 따르면
2,500만 원 매출을 찍으면 월 200~300만 원의 수익이 나와야 했다.
직원도 나, 친구, 파트타임 2명뿐이었고,
나는 급여조차 가져가지 않고 있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제공한 재무제표를 다시 꺼내,
실제 기장 자료와 비교표를 만들었다.
비교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인건비는 오히려 우리가 더 적게 쓰고 있었지만,
카드 수수료 / 플랫폼 수수료 / 배달비 / 원자재 값
수도·광열비에서 큰 차이가 났다.
특히 수도·광열비는 공용주방 구조가 문제였다.
넓은 공용 공간의 비용을 입점 업체들이 나눠 내는 구조였는데,
공실이 많아지면서 소수 업체들이 모두 부담해야 했다.
우리가 들어올 무렵 이미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고 있었던 탓이다.
(아… 그래서 본사에서 급하게 넘기려 했던 거구나.)
수도·광열비야 그렇다 쳐도, 원가 차이는 심각했다.
본사에서 공급받는 튀김 기름 등 주요 자재들을
쿠팡과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본사 가격이 10~15% 더 비쌌다.
지인 형님에게 따졌더니, 본인은 본부 운영이 아니라 마케팅만 담당한다며 발을 뺐다.
자료를 정리해 본사에 문의하니 돌아온 답은 더 황당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보다 더 저렴한 곳이 있으면 거기서 구매하셔도 됩니다.
다만, 다른 항목들은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어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대신 저희 에이스 슈퍼바이저를 보내 매출을 더 키울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알았다.
이들도 프랜차이즈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시장 상황도 나빠졌고, 운영도 서툴렀다.
그래도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본사의 태도에
원망에 에너지를 쓰기보단,
‘그냥 매출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계속 운영을하며 누적된 적자로, 대출까지 받은 상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죽어라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결심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왔다.
바로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
배달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다음 달 매출은 다시 -600만 원을 기록했다.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는 이미 바닥을 쳤고,
내 멘탈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때, 함께 하던 친구 A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재원아,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
밀린 월급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매일 굳어 있던 내 표정 때문이었을까.
친구는 사업을 접어도 괜찮다고 했다.
'너는 어떡할 거냐' 는 내 물음에,
A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요리하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다른 주방에 들어가 더 배워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부모님도 경험을 더 쌓으면 가게를 차리는데 도움을 주시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 말을 들으며, ‘그래도 내가 친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건 아닐까?’ 억지스러운 정신승리를 하며 나는 치킨집을 정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예전에 첫 창업이 무너졌을 때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이번엔 조직생활을 하고 있던 중이라,
결국 남은 건 약간의 빚(?!) 정도.
그것만 갚으면 정리되는 문제였다.
나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었다.
(다음편 부터는...미소 임원 이야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