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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재석 Dec 18. 2022

물이 진짜 100도에서 끓을까?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조차 정확하지 않은 지식일 수 있다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중학교 때 과학시간에 배운 것을 기억한다면 기압이나 불순물에 의해서 끓는점이 바뀔 수 있다는 것까지 알 것이다. 놀랍게도 정밀하게 실험하면 모두가 상식이라고 믿는 '1 기압의 순수한 물이 정확히 100도에서 끓는다'가 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거품이 올라올 때 물이 끓는다고 한다. 거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기 표면에 매우 작은 공기방울이 만들어지고, 그 공기방울이 커지다가 어느 순간 떠오른다. 첫 공기방울이 용기 표면에 만들어지는 이유로 표면이 더 뜨거운 것도 있지만,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물속에서 공기방울이 존재하려면 방울 표면을 둘러싼 물의 표면장력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거품의 지름이 0일 때 표면장력은 무한대가 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물 한가운데서 공기방울이 발생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공기방울은 용기 표면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흠집에 있는 빈 공간(보이지 않는 공기방울, 또는 진공 상태)에 수증기가 채워져서 만들어진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 한 곳에서만 공기방울이 올라오는 것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위치에서 공기방울이 만들어지기 쉬운 표면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부터 재밌는 일이 발생한다. 용기마다 표면이 거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공기방울이 만들어지는 속도도 다르다. 공기방울이 빨리 만들어지면 기화열을 흡수하여 물의 온도를 더 빨리 낮출 수 있다. 그래서 흠집이 많은 양은냄비에서는 물이 계속 끓여도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유지된다. 반대로 매우 매끈한 유리에서 물을 천천히 가열하면 100도보다 높은 상태에서도 끓지 않는다. 거품 없이 섭씨 112도까지 초가열되었다는 실험 기록도 있다고 한다.


재밌는 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섭씨는 물의 어는점을 0도, 끓는점을 100도로 정의한 온도 체계이다. 그런데 물이 용기에 따라 끓는 온도가 다르다는 것은, 애초에 측정에 사용하는 온도 체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린 온도가 쉽게 정량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온도계가 만들어지기 전이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뜨겁다, 차갑다 처럼 정성적인 말 밖에 하지 못한다. 정량적인 수치로 바꾸려면 측정도구를 만들어야 한다. 측정도구를 만들려면 바뀌지 않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면 측정을 해야 한다. 문제의 시작으로 돌아왔다. 측정도구를 만들려면 측정도구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과학은 불완전한 측정도구를 만들고, 그걸로 관측하고, 관측을 기반으로 좀 더 정밀한 (하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측정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을 반복해왔다.


이처럼 매우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믿는 것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지적으로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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