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르르 귀촌라이프>-3
최근 이사를 했다. 덕산에 오고부터 계속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숙소 생활을 하다 드디어 시골집의 로망을 이루려는 순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늘 이사를 많이 다녔다. 가장 길게 살았던 게 아마 6년 정도였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마포 근처에 3층짜리 주택을 지어 살았다. 그런데 그마저도 얼마 살지 못하고 재개발 때문이었나, 쫓겨나듯 이사를 하고 그 후론 어딘가에 정착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꽤 많이 돌아다니면서 산 것 같다. 집도 평균 2~3년 주기로 옮겨졌지만 그 외에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덕산에 위치한 대안학교를 다니기 위해 청소년기 내내 매년 여름, 겨울마다 엄청난 양의 짐을 싸서 이동했고, 스무 살이 넘어서도 1년은 노르웨이 유학으로, 그 이후엔 셰어하우스와 자취방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쩌면 그저 당연하게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이유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덕산에 와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참여가 끝나갈 무렵부터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숙소로부터 독립을 위해 빈 집을 조금씩 알아봤다. 덕산면 소재지에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주 머무르는 빌라가 하나 있는데 시골까지 와서 빌라에 살고 싶지 않은 고집이 있어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나의 인맥에서 알음알음 알아볼 때는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려워 회사에서 점심을 준비해주시는 여사님께 도움을 청했다. 월악리가 고향이라 웬만한 주민들과는 다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함께 점심을 먹고 여사님께서 봐 두셨다는 빈집을 보러 가는데 아저씨 두 분이 길가 그늘에 철퍼덕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나 혼자였다면 분명 그냥 지나쳤겠지만 여사님이 아저씨들께 덜컥 물어보니 ‘그 집은 집주인 자식들이 놀러 오기도 해서 내놓지는 않고 우리 형네 집 내놨는데 보러 와도 된다’라고 해서 갑자기 홀린 듯 빈 집을 구경하러 가게 되었다. 그 집이 지금 내가 이사해서 살고 있는 집이다. 역시 시골생활은 마을 원주민들과의 친분이 없으면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집을 구할 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리된 공간과 햇빛이었다. 아침 해가 잘 들어오는 것을 아주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고, 원룸에서 살 때의 비좁고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느낌이 싫어 침실과 부엌은 따로 있기를 원했다. 덕산에서 집을 구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의 숙소 생활을 해보니 시골집은 생각해야 할 게 아주아주 많았다.
덕산에는 여전히 지하수를 이용하는 곳이 많은데 어떤 마을은 석회질이 많이 섞여 나와 고생한다는 곳도 있었다. 또 지난 7월까지 지낸 숙소는 바닥 보일러를 전기로 하고 온수는 가스로 하는 형태였는데 가스가 꽤 비싸기도 하고 겨울에는 자주 갈아줘야 해 번거로웠다. 바닥을 전기장판의 형태로 데우는 방식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전기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난 1월, 아주 추운 겨울에 두 번째 숙소로 옮겨서 남은 겨울을 내내 그 방에서 보내야 했는데 여름용 숙소로 지어져 더 그랬겠지만 야외에 텐트만 치고 자는 것처럼 추웠다. 바닥만 따뜻하지 코끝으로 찬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월악산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보니 여름철 산과 계곡의 습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내 몸이 습한 것은 그저 땀 흘리고 샤워하면 좀 나아지지만, 이 습기는 집 안 모든 벽지에 곰팡이를 선사한다. 심지어 한 이틀 관리하지 못하고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집을 비웠더니 옷에도 곰팡이가 생겼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최근 이사한 집은 방 2개에 부엌 겸 거실로 쓸 수 있는 큰 방이 하나 있는 주택이다. 월세라고 해도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고, 위치와 보일러 형태,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까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해 덜컥 구두계약을 하고 이사를 준비했다. 이 집도 다른 방치된 시골집처럼 곰팡이가 많이 보여 심한 곳만 도배를 부탁드렸는데 여름에 이사를 준비한 탓인지 습기 잡기가 어려워 날짜를 한 차례 미뤄야 했다. 8월 중순 서울 집에 있던 나의 짐들을 몽땅 옮기고 숙소에 있던 짐들도 동료들의 도움의 받아 옮겨 놓고 보니 겹겹이 발라진 벽지 아래로 심각한 수준의 곰팡이가 보였다. 그마저도 내가 발견한 게 아니라 함께 짐을 옮겨준 동료가 심각하다며 보여준 것이다. 그런 방에서 그냥 잠을 자려했다니.
지금 내가 침실로 쓰려던 방은 벽지와 단열재를 뜯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태의 집을 제대로 보수도 안 해주고 월세를 줘버린 집주인에게 배신감도 느꼈지만 애초에 시골집에 젊은 사람이 월세를 주고 툭툭 들어왔다 나가는 일이 많지도 않고 고령의 부부에게 그런 관리를 다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내가 경험한 이곳의 관계에서는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주인 내외의 허락을 받아 직접 보수를 진행하기로 하고 마음을 살짝 고쳐먹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침실만큼은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아늑하고 예쁘게 꾸며보자, 단열재도 바르고 페인트도 칠해보는 작업이 결국 다 내 삶의 기술이 될 것 같아 살짝 기대도 됐다. 내 침실이 언제 완성이 될지는 가늠할 수 없다. 최근 요 근래 들어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전부 지쳐있어 벽지를 뜯다가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꾸준히 작업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늘 하던 것처럼 멈추지만 말고 조금씩 하려고 한다. 집과 물건에 대한 나의 고민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내 소유물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도 살아봤으니 모든 것에 내 흔적을 마구 남겨가면서도 살아보고 싶다. 이사한 지 약 한 달이 되어가는데 집이 없어도 힘들지만 집이 있어도 그것대로 아주 골칫거리가 많이 생긴다는 것, 물건은 소유하는 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 나의 어머니가 감당했어야 할 집안일의 절반의 절반 정도를 깨닫는 중이다. 또 시골생활이 쉬울 것이라 만만하게 보고 온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수도 있구나! 하면서 주변인의 도움에 감사하는 요즘을 보내고 있다.
내 시골집 로망은 한적한 주말에, 또는 아주 추운 겨울날 저녁에 아는 사람들을 초대해 차를 대접하고 함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내가 조금씩 모은 접시에 간식을 담아 올려주고 그날만큼은 우리 집 고양이에겐 미안하지만 좋아하는 향초를 켜 주고 싶다.
내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상을 하면서, "곰팡이방(동료들이 붙여준 침실 이름이다)"의 방문은 오늘도 잠시 닫아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