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르르 귀촌라이프>-4
월악리 농촌마을, 바쁜 가을을 지나 겨울도 반이 지나갔다. 겨울 지나가는 동안 덕산에는 뉴스에도 보도될 정도로 많은 양의 눈이 내렸고 이 동네 사람들도 참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이사한 집에서의 첫겨울을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연말도 지나갔다. 해가 바뀌는 시점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채웠다. 2021년 3월에 월악리로 귀촌해 햇수로 3년 차다. 지금까지 나의 귀촌생활은 새로운 경험과 시행착오로 가득해 '내가 하고 싶은 건 따로 있지만 일단 이 시골생활에 좀 더 적응하자'라는 생각으로 일관했다. 물론 이 마음가짐은 여전하고 또 그래서 긴 여행길에 있는 듯한 불안함과 설렘도 여전하지만 뭐랄까, 이번 해에는 뭐가 됐든 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의욕이 생겼다는 것은 내 마음의 체력이 그만큼 충전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돌이켜봤다. 덕산에 내려오기로 한 결정부터.
딸을 6년 내내 기숙사 학교에서 배우도록, 1년간의 해외 유학을 다녀오도록, 더 많이 여행하도록 독려해 주던 부모님도 나의 귀촌 결정에는 걱정을 앞세웠다. 이전까지는 서울로, 부모님 곁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두 분도 아셨던 것 같다. 나의 심리적 불안정을 함께 견디고 붙잡아주기 위해 노력해 왔던 부모님이었기 때문에 고립된 공간에서 갑작스레 찾아올 나의 공황, 불안장애도 함께 걱정하셨다. 나도 거기에 대해선 부모님을 안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내 아주 이기적인 욕심에서 결정을 밀어붙였다. 그전까지 나는 가족에게서 독립하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으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결정 뒤에야 "독립"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것도 같다.
그 이후로 참 많은 결정을 혼자 했다. 대안학교를 졸업해 주체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해 결정한 경험이 몇 번이나 될까. 늘 나의 결정에 타당함과 정당함을 보태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야 했다. 내 고민에 대해 반드시 타인이 해주는 긍정의 말이 있어야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겼던 것 같다.
덕산에 와서부터 작년까지 하던 제천간디학교 생활관 주말 생활지도교사 일을 잠시 그만뒀다.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많았지만 사실 모두 "나를 위한 이유"였고, 지속한다면 지금으로서는 학생들과 학교를 위하는 이유가 컸을 것이다. 참 긴 시간 고민하다 나를 위해 이기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적지 않은 죄책감이 뒤따랐지만 아주 이상하게 나는 그 안에서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그게 나를 위한 결정인 거야"라고 말하면서 타인과, 집단과, 공동의 목표를 위해 결정해 왔던 것 같다. 모든 결정이 그랬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정말 순수하게 나 자신만을 위한 결정은 몇 번 안 되었나 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를 위한 결정에는 반드시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모든 죄책감, 후회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내린 결정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내 마음을 충전시키고 있는 것 같다.
올 해도 날이 따뜻해지면 아주 바쁘고 정신없는 봄, 여름, 가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겨울에 찾아올 약간의 휴식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는, 예상 가능한 이 시골풍경의 변화가 나를 안정되게 하고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