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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밑하나 Mar 19. 2024

벌레싫어인간의 벌레 일기

<빙그르르 귀촌라이프>-7


 나는 '벌레싫어인간'이다. 벌레천국 덕산에 내려와 산지 3년이나 되었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이제는 벌레를 발견해도 발을 동동 구르면서 비명을 지르거나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경직되지는 않는다.


어디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이 작은 존재를 '벌레 자식'으로 부를지, '작은 친구'로 부를지가 나눠진다. 흙을 만지다 만나는 존재들은 크건 작건 간에 자연과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작은 친구들이다. 움츠리고 있다가 놀라거나, 재빨리 숨을 곳을 찾아 피하고 있는 모습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단 한 마리도 죽이고 싶지 않다. 작물들을 다 갉아먹는 해충이라면 또 예외겠지만..

오래간만에 이불이나 시원하게 털려고 패드를 딱 들췄는데 사사삭, 이를 닦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칫솔을 집어드는데 그 옆에 더듬이를 갸웃갸웃, 이제 마음 놓고 자려고 누워 천장을 보는데 그 위에 꾸물꾸물, 이 녀석들은 모두 내 평화를 헤치는 벌레 자식들이다.


그렇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벌레 자식들이다.

흙에서 만나는 작은 친구들은 못 본 척도 해주고, 조심히 들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도 옮겨 주면서 왜 나는 집에서 만나는 녀석들은 죄다 욕하면서 죽여버릴까. 지금부터는 조금 잔인한 스토리다.


최근 덕산이 따뜻해졌다(드디어). 영상 10도 이상을 훌쩍 넘어가면서 부쩍 희한하게 생긴 벌레가 많이 생겨났다. 대충 봐서는 노린재같이 생겼는데, 조금 기다란 노린재다. 그런데 냄새가 나지 않는 걸로 봐서 노린재 비슷하게 생긴 다른 종류인 것도 같다. 아무튼 이게 하루에도 몇 마리씩 집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화장실에서 자꾸 발견되었다. 화장실에서 발견되면 일이 조금 간편하다. 휴지나 내 손을 쓸 필요 없이 물로 흘려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익사를 시켜버린다. 개인적인 기준에 작은 크기의 벌레가 아닌지라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에 들어가면 우선 이 벌레 자식이 있는지 확인하고 발견하는 족족 처리하곤 했다.


한 번은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 생각 의자(변기)에 앉고 난 후에야 이 벌레 자식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젠 일어날 수 없어 벽에 붙어있던 녀석이 날기라도 할까 가만히 이 자식을 주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자식, 움직임이 거의 없다. 왠지 내가 갑자기 나타난 것에 놀라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갑자기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연민이 생겼다.


그렇게 화장실을 그냥 나왔다. 처음으로 그 동족을 죽이지 않고. 심지어 그 자식은 존재가 잊힌 채로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나에게 그날 밤에 다시 발견되었다. 이번엔 바닥에서. 변기 바로 근처에 있는 그 녀석이 조금은 위협적이게 느껴졌지만 죽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들어 다가오지 못하게 발로 살짝 건드려 뒤집어 놓고 일을 보고 다시 나왔다. 그다음 날도 다시 몸을 뒤집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던 녀석을 또 움직이지 못하게 뒤집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녀석은 몸이 뒤집힌 채로 죽어 있었다.


이 잔인한 스토리 뒤에 나는 머리맡에서 발견된 거미를 못 본 척했다. 이번엔 화장실이 아닌 집 안 곳곳에서 발견된 기다란 버전의 노린재 비스무리한 벌레들을 휴지로 살짝 집어 집 밖으로 내보내 보았다.

낡은 콘크리트 주택이라 정말 가끔씩 아주 작은 바퀴벌레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땐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래서 그 벌레가 죽여야 하는 벌레냐, 나쁜 녀석이냐, 그냥 둬도 되는 녀석이냐, 뭐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숲을 걸으면서 나무를 보고 이 나무는 좋은 나무다, 나쁜 나무다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흙을 밟으면서도, 길고양이를 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벌레들을 잡아 죽이던, 그러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던, 오로지 인간의 기준에 따라 익충과 해충을 나누던, 판단에 대해 모순적인 나의 새로운 점을 이 작은 벌레들로부터 발견하게 된 듯하다.


내가 내렸다 생각한 당연한 판단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생각해 보는 중이다. 정말로 나의 평화를 헤치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보니 ‘벌레싫어인간'은 과거형이다.


*커버사진의 구름은 어떤 친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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