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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신화를 낳는 순간

페드루와 이네스 - 포르투갈 국민 러브스토리 01

by 마싸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리스본 북쪽 약 120km, 알코바사Alcobaça에는 아주 오래된 수도원이 있다. 1153년 창건되고, 198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명한 수도원의 한가운데, 흰 대리석 무덤 두 개가 서로를 마주 보고 놓여있다.

정교한 조각과 천상의 표정, 그리고 마주 놓여 있는 발 -

많은 관광객들이 그 무덤 앞에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는 것은 물론, 이 무덤을 보러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죽어서야 함께한 연인”이라는 이야기를 모르는 이라도, 그 사이의 침묵이 전하는 사랑의 무게가 느껴지는 곳.


전설은 말한다

- 그들은 생전에 함께일 수 없었으나, 죽음 이후 서로 마주 보도록 묻혔다고.

최후의 심판 날, 두 사람이 일어설 때 가장 먼저 서로를 볼 수 있도록.


무덤 사이의 간격은 길지 않다. 그러나 그 짧은 거리에는, 왕권과 사랑, 정치와 복수, 그리고 신화가 교차한 포르투갈의 한 시대가 응축되어 있다.
사랑의 거리만큼 간절한 간격.
그 사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자의 사랑

14세기 중엽, 포르투갈 왕국은 카스티야와 끊임없는 긴장 관계에 있었다. 아폰수 4세Afonso IV의 아들 페드루 왕자는 정략결혼으로 카스티야의 귀족 여인 콘스탄사Constança Manuel와 혼인했다. 국왕은 결혼을 통해 평화를 확보하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운명은, 그 결혼식 행렬 속에 있었다. 시녀 중 한 사람, 이네스 드 카스트로Inês de Castro. 갈리시아 출신 귀족의 딸로, 교양과 미모를 겸비한 여인이었다. 페드루는 첫눈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그 사랑은 곧 왕실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O infante Pedro se enamorou de Inês de Castro, e esquecendo-se de sua esposa legítima, deu-lhe todo o seu coração.”
— 《Crónica de D. Pedro I》, Fernão Lopes


"왕자 페드루는 이네스 드 카스트로에게 마음을 빼앗겨, 합법적 아내를 잊고 그녀에게 온 마음을 주었다." - 동페드루 1세 연대기 by 페르나웅 로페즈


D._Inês_de_Castro_(Quinta_da_Regaleira).png 19세기에 그려진 이네스의 초상, Kings' Room, Quinta da Regaleira, Sintra, Portugal @ Public Domain, Wikimedia



왕의 궁정은 냉담했다.

아폰수 4세는 아들의 열정이 단순한 연정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적 불안을 초래할 위험한 감정이라 여겼다. 정식 왕자비 콘스탄사가 엄연히 있는 와중에, ‘간통'이라는 도덕적 문제는 물론, 정치적 문제도 있었다. 이네스의 친가인 카스트로 가문은 카스티야 내부에서 세력 다툼 중이던 유력 귀족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 가문의 영향력 증가와 후손들이 왕위 계승권을 위협할 가능성을 우려가 들 만 했다.


그러나 젊은 페드루는 왕좌보다 사랑을 택했다. 궁정의 시선을 피해 코임브라 근교의 산타 클라라에서 이네스와 함께 은밀한 시간을 보냈다.

한편 '이름만 왕자비'인 콘스탄사는 1345년, 둘째 아이를 낳다가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페드루는 공식적으로 싱글이 된 셈. 간통에서 시작된 이네스와의 관계는, 정식 부인 사후에 사실상의 결혼 관계로 이어졌다. 둘 사이에는 네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아폰수 4세의 분노는 점점 정치적 불안으로 변했다.


이네스의 죽음

1355년 어느 겨울, 코임브라의 공기가 비극을 예감하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폰수 왕은 결단을 내렸다. 아들의 사랑이 국가의 안정을 위협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페드루가 사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왕은 세 명의 신하—페루 코엘료, 알바루 곤살베스, 디오고 파체쿠—를 이네스가 머물던 곳으로 보냈다.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E mandou el-rei Afonso IV matar Inês, temendo que seu filho se perdesse pelo amor dela.”
아폰수 4세는, 아들이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를 잃을까 두려워, 이네스를 죽이라고 명했다.
...“Ela caiu de joelhos, e pediu pela vida dos filhos.”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아이들의 목숨만은 살려달라 빌었다.
— 《Crónica de D. Pedro I》, Fernão Lopes


Fonte_dos_Amores_-_Quinta_das_Lágrimas_-_Coimbra,_Portugal_-_DSC09563.jpg
Fonte dos Amores - Quinta das Lágrimas - Coimbra, Portugal @Public Domain, Wikimedia
"눈물의 샘" Fonte das Lágrimas과 "사랑의 샘"Fonte dos Amores, "눈물의 저택(정원)"Quinta das Lágrimas - 모두 후세 사람들이 이네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와 연결시켜 부른 전설적 지명입니다. 페드루 왕자와 이네스가 코임브라 근교의 산타 클라라 궁전Paço de Santa Clara에 머물며 사랑을 키웠고, 이 궁전에서 가까운 Quinta das Lágrimas 정원이 그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의 장소였다고 합니다. 후세 전승에서는 이 정원에서 이네스가 피살되었다고도 전해지죠. 실제 사료에서는 살해 장소가 명확하지 않지만, 16세기 이후 전설 속에서 이곳이 ‘이네스의 피가 떨어진 곳’으로 굳어졌습니다.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항상 전설을 낳는 법!)
샘 근처 바위에는 지금도 붉은 얼룩이 남아 있는데, “이네스의 피가 바위를 물들인 흔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과학적으로는 석회암과 이끼, 철분의 산화작용...) 전설적 낭만이 자리를 지킨 셈이죠.
오늘날 Quinta das Lágrimas는 코임브라의 역사 유적이자 고급 부티크 호텔, 그리고 이네스·페드루 전설을 상징하는 관광명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원 산책길에는 작은 안내판이 있어 “Aqui, Inês de Castro chorou as suas últimas lágrimas.” (이곳에서 이네스 드 카스트로가 마지막 눈물을 흘렸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죠.
그래서 많은 포르투갈인들이 “사랑과 눈물의 정원”이라 부르고, 현대 포르투갈의 ‘로맨틱 헤리티지(romantic heritage)’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칼날은 망설이지 않았다. 드레스 위로 붉은 피가 번졌고, 그녀의 이름은 그날 이후 전설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페드루는 광기에 가까운 절망에 빠졌다.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나라를 내전 직전까지 몰고 갔다.
사랑을 빼앗긴 왕자는 왕좌보다 복수를 원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역사 속에서

콘스탄사는 한때 카스티야 왕 알폰소 11세Alfonso XI의 약혼녀였다가, 정치적 이유로 버림받은 여인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왕실로 시집왔지만 이미 “버림받은 공주”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었고, 게다가 병약했지요. 결국 둘째를 낳다가 사망하고 맙니다.


포르투갈 국립문서보관소(Arquivo Nacional Torre do Tombo) 소장 자료에 따르면, 페드루는 즉위 후, 1360년 6월 18일 코임브라에서 “1354년 어느 날 자신이 Inês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를 왕비로 인정하겠다”라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을 ‘비공개(incógnito)’로 치렀다는 암시가 있고, 공식 교황청 승인서나 결혼 증서가 사료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정치적 명분(자녀의 정통성 확보, 왕위 계승 문제)과 개인감정이 맞물린 복합적 발언으로 평가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onstanza_Manuel


https://www.pousadasofportugal.com/portuguese-culture-the-story-of-the-two-lovers/

https://pt.wikipedia.org/wiki/Afonso_IV_de_Portugal

https://antt.dglab.gov.pt/exposicoes-virtuais-2/d-pedro-e-d-ines-de-ca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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