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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콩 Mar 07. 2019

[잡기] #2 : 평균의 함정

무식의 기준 

당신은 '무식함'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은 '무식함'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맞춤법'을 모르는 것? 아니면, '시사상식'을 모르는 것? 혹은, 주변사람들이 다 아는데 소수만 모르는 것?




어릴 적, TV속 예능프로그램에는 퀴즈를 맞추는 코너가 유독 많았다. 브레인 서바이벌, 일박이일 등에서는 수도, 독서, 영어 퀴즈등을 내고 맞추지 못하는 사람을 무식하다며 타박하며 희화화시키는, 일종의 '몰이'를 하는 것이 재미의 한축이였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때때로 가슴이 싸해지곤 했다.


TV 속 퀴즈문제 중 내가 모르는 문제가 출제되었을 때, 출연진 중 한명이 이를 몰라서 한참동안 무식하다며 놀림을 받는 상황이 이어지면, 나도 마치 티비 속 그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출연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자막과 연출, 출연진들을 통해 한참이나 구박을 당하는 일명 바보캐릭터인 그들을 보며,

'나도 무식한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경험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단연코 '영어'퀴즈였다. 공부를 별로 시키지 않으셨던 방목형 부모님을 둔 덕에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또래들이 으레 하던 '구몬', '재능'등의 학습지를 푸는 게 전부였다. 그 마저도, 국어를 좋아했던 나에게 부모님은 국어외 다른 과목은 시키지 않으셨다. 



방과후, 매일같이 놀이터로 운동장으로 뛰어놀았고, 집앞 세탁소에서 키우는 토끼를 방과후 몇시간씩 내내 구경하거나 땅밑을 기어가는 곤충들을 하염없이 관찰하는 일상을 반복해나갔다. 공부 스트레스는 하나도 없었고,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5학년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반 친구들을 한명씩 불러다가 선생님 앞에서 영어단어를 읽게 시킨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영어사교육을 한번도 받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영어를 기초부터 가르치지 않았기에

그저 암기식을 외우듯이 학교 선생님이 "하우 아 유?"를 외치면, '아임파인 땡큐 앤유?"를 읊을 수 있는 것이 내가 하는 영어의 전부였다. 즉, 나는 영어단어를 보고 읽는 것 조차 하지못했던 '영어문맹'이나 다름없었다.그런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다.



하지만, 내 차례가 되어 선생님이 가리키는 단어를 하나도 읽지 못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화를 내시며,

"5학년인데도 영어를 읽지도 못하는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니?"라고 말씀하셨고, 반친구들은 그 얘기를 듣고 빵터져 한참동안 웃었다. 마치 내가 TV속 퀴즈를 못풀어 '몰이'를 당하는 출연자가 된것 같았다. 얼굴은 터질듯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귀와 목은 물론이고 몸 전체가 뜨겁게 열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수치스러워서 눈물도 핑돌았다.



무려, 10년이 넘게 훌쩍지난 일이지만 그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아직도 그때의 상황, 선생님의 표정, 반의 분위기, 교실의 온도등이 손에 잡힐듯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날 일이 너무 충격적이였기에 집에와서 엄마에게 영어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학원에서 알파벳을 읽는 법부터 처음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6개월이 지난 후,  나는 반 학급 영어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다. 단, 6개월만에 무식한 아이에서 우등생이 된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더욱 의문스러워졌다. 단지 6개월을 더 공부해서 모르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인데, 그정도의 노력이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영어를 읽을 줄 알고 모르는게 왜 무식의 기준이 되는가?



그저 나는 아주 단순한 교육을 더 추가적으로 받았을 뿐이고, 놀림을 당하던 때와 100점을 받은 나는,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대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모른다고 모두의 눈초리를 받을 일이였는지, 어린 마음에도 의문이 퐁퐁 샘솟았던 것 같다.

 


TV에서 상식퀴즈를 내고, 맞추지 못한 출연진들을 무식하다며 타박할 때, 많이 뜨끔했었다. 모르는 문제가 수두룩했고, 그것이 마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내가 특정 한 분야에 대해 알고 모르고의 여부가, 나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안다. 그저 약간의 수고로움, 약간의 노력이 더해지면 알게 되는 내용들에 불과한 것들이다.


무식의 기준, 평균적인 지식과 상식은 어떤 것이고, 똑똑함과 무식함은 어떤 방식으로 가를 수 있는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의미없는 기준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무식함'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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