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출판 : 발달장애인의 성인기를 준비하는 생애포트폴리오 / 세아담
프롤로그 / 출판을 위한 글로 언제든 수정 될 수 있습니다.
2018년 11월 단행본 ‘지니의 스토리텔링’을 출판하며 발달장애인의 성인기를 준비하는 생애포트폴리오라는 부제를 달았다. 글을 쓰면서 부제를 제목으로 한 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니의 스토리텔링은 부제의 사례에 해당하는 책이며, 후속 출판에 대한 부담을 안겨준 책이기도 했다.
새로 등장한 부모교육 강의 주제로 신선했는지, 복지현장의 종사자, 발달장애 자녀의 부모들을 만나 강의를 하고 생애포트폴리오 제작 자조모임을 지원하면서 생애포트폴리오라는 주제로 장애를 바라보는 논리가 업그레드 되어갔다. 강의자료를 준비할 때마다 늘 출판을 염두에 두었지만, 첫 출판 이후 3년여의 시간 중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막혔던 2년여가 있었다는 것으로 늦은 출판의 변을 대신한다.
생애포트폴리오가 필자의 딸 지니의 사례에서 시작이 되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사례에 관계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에 부담이 있다. 모든 사례에는 사람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결정적인 동기를 안겨준 2015년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그분들은,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이 책과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위안을 삼는다.
장애가 의심된다는 상담 이후 10년을 지니의 손을 잡고 치료 교육실을 누볐다(누볐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10년의 세월은 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회화된 개인의 삶에서 장애가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처절하게 부딪치고 느껴보는 시간이다(이런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 지니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한해를 유예하여 입학했으니, 8년만에 온전하게 주어지는 오전 몇 시간의 자유가 매우 어색했다. 무언가에 내 시간을 옭아매어 묶여 있어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허전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뭔가 불편한 상태였다.
먼저 동네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러닝머신 위를 빠르게 걷거나 달려보기도 했고, 영어 회화학원에 등록을 하는 등 장애를 만나고 직장을 그만둔 후 처음으로 장애와 관계없는 새로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일상의 삶에서 성격이나 목적이 정해진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 해도 그 안에서 사교가 이루어지는데, 그 사교의 순간이 매우 편하지 않았다. 10년의 공백은 즉, 장애와 함께 지냈던 그 시간에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장애를 처음 만났을 때와 유사한,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든 것이 어색하고 어려웠다. 이때의 느낌과 경험으로 나는 지니를 바라보고 이해하려 했는데, 그것 이상의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부딪침과 명상과 각성의 시간을 겪으며, 체험으로 아는 장애가 아니라 이론적, 학문적으로 정립되고 있는 장애를 알아봐야겠다는 결론으로 2004년 특수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장애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이나 구조를 제대로 알아야 지니도 나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분명해질 것 같았다. 대학원에서 알게 된 사실은 학령기를 마치고 성인기에 접어든 발달장애인은 갈 곳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학령기 이후의 장애인을 왜 거리에서 보기가 어려운가? 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대학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던져지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니의 생애주기를 앞서서 알게 된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특수교육대학원에서 특수교사 자격증을 획득하였고 일반교과 교사로 교직과 사회생활 10년을 경험했던 나는 오랜 공백을 깨고 특수교사가 되어 다시 교육 현장으로 들어갔다.
장애인복지는 국가의 정책과 사회가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하는 일이어서 지니의 앞날을 미리 안다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장애 진단을 받은 초기 그 헤아릴 수 없이 무겁고 힘든 시절 동안은 빨리 내 나이 40(지니 나이 11세)이 되기를 바랐다. 그 나이가 되면 안개가 옅어지고 가야 할 길이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였었다. 그렇게 지루하게 느리게만 가던 시간은 지니가 10대에 접어들고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속도가 붙더니 어느새 성인기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지니의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장애인평생교육 복지 전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령기 이후 자립과 독립생활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지원은 성인이 되어도 계속되어야 하므로 성인기 발달장애인의 지원을 평생교육, 평생학습의 관점으로 풀어가려는 것이었다.
나는 50대에 접어들었고, 나의 역치와 한계를 고민하다 스스로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들기로 했다. 힘에 부쳐서, 능력이 안 되어서 못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래도 나는 지니를 위해 고민했고, 노력했고, 최선을 다 해보았다는 그럴듯한 변명거리.
단국대학교 장애인평생교육 복지 박사과정에 2013년 9월 입학했다. 나의 현장은 특수교육현장과 딸 지니이다. 그러나 연구자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연구과제는 지니와 지니의 삶이며 지니와 함께 지낸 나의 체험과 그 시간이다.
지니가 학령기를 마칠 즈음 진로 탐색 와중에서 지니의 생애포트폴리오를 실제로 사용할 일이 생겼다. 막연하게 생각 속에 머물러 있던 일이 실제로 활용이 되고 생애포트폴리오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준비 중이던 박사학위논문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게 되었다.
그 주제를 함축해서 담아낸 것이 당시 23년 삶의 기록인 지니의 생애포트폴리오이다. 지니의 삶의 이야기 속에 녹아든 것이 나와 가족의 삶이다. 지니의 기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니의 기록 속에 스며든 가족의 시간과 이야기가 함께 한다.
발달장애인의 생애포트폴리오를 알리자는 목적으로 2018년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참가하여 소셜벤처 안정을 창업하고 세아담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먼저 간 이들이 남겨놓은 흔적은 뒤를 잇는 이들에게 지침이 될 수 있다. 생애포트폴리오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탓에 나는 생애포트폴리오를 정의해야 했고, 강의하게 되었고, 제작하는 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2021년까지 세아담프로젝트의 이름으로 만난 기관 77개, 제작 참여 인원 55명을 만나면서, 포트폴리오는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며, 발달장애 자녀를 소개하는 목적으로 자유롭게 구성하면 된다고 하였지만, 서서히 사례들이 쌓이면서 그 사례들이 예시가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생애포트폴리오 연구라는 새로운 연구 방법을 시작하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신 지도교수님의 말씀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한 영역의 시작이며 표준이 되어 버린다.
나는 2016년 당시 23년 지니의 생애포트폴리오를 논문의 부록에 그대로 실었고(아스퍼거여성의 삶에 관한 종단적 사례연구(정은미, 2016), 논문의 내용을 ‘지니의 스토리텔링, 발달장애인의 성인기를 준비하는 생애포트폴리오(정은미, 2018)’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지만, 길을 내고 보니 별도의 안내서가 필요해졌다.
어쩌다 스스로 만들어버린 마음의 부담과 의무감을 안고 코로나19 바리러스의 팬데믹을 비롯한 여러 가지 내 외적인 한계를 경험하면서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 버거운 집필을 마음먹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생의 후반기를 훌쩍 넘긴 시점에 어쩌다 보니 내 생애에 두 번째 출판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지니가 나를 이렇게 키우며, 끌고 가고 있다.
2022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어제 556명의 부모, 당사자, 종사자 삭발식이 있었다.
* 팬데믹pandemic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
* 생애포트폴리오
스스로 자신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의 삶(성장, 교육, 체험)의 기록자료
* 평생교육
* 세아담프로젝트
세아담, 세상의 아이들을 담아두다. 라는 이름은 ‘발달장애인의 기록이 모여있는 가상세계’를 생각하고 만든 이름이다. 대한민국의 IT기술은 세계 선두에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며 모든 기록은 스마트폰으로 생산되고, 볼 수 있는 스마트 세상이 되어 있다. 세아담프로젝트는 이런 기술 접근성을 활용해 대한민국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약 25만명 발달장애인의 기록을 가칭 세아담이라는 가상세계에 저장하고 활용하면 발달장애인복지현장의 많은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해보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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