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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환 Aug 07. 2021

설리, 악플, 그리고 언론의 자살 보도

44. [생각하다] - 자살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

2019년 가장 가슴 아픈 사건 중 하나는 가수 설리씨가 세상을 떠난 일이다. 속보가 떴을 때 머리가 멍 해졌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 언론계 종사자로서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설리씨가 숨지고 나서 언론은 그의 사망 원인을 악플 탓으로 돌렸다. 악플이 유명인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하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악플러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언론은 설리씨의 죽음에서 자유롭나. 가장 큰 책임은 사실 악플을 촉발시키고 증폭시킨 언론에 있었다. 설리씨의 사망을 반성하는 목소리마저도 화제성 보도로 둔갑시키기에 바쁜 언론사조차 눈에 보였다.  



자살을 다루는 보도는 참 하기 어렵다. 보도로 인해 모방 자살이 발생한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입증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명인의 사망을 보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취재 윤리를 지켜가면서 보도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참 어렵다.      


자살 보도는 그래도 최근 긍정적인 방향으로 꽤 많이 변화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덕분이다. 이들은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기자들에게 경고 이메일을 보낸다. 이메일엔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따라 해선 안 되는 원칙들이 적혀 있다.      


예를 들어 기사 제목에 자살이란 표현과 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극단적 선택', 방법을 설명하는 '투신' 등을 쓰지 못하게 한다. 우울증 등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자살을 뜻하는 표현만으로도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기사 내용엔 구체적인 자살 방법과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엔 유명 연예인이 숨졌을 때 방법이나 도구가 구체적으로 알려졌고 이를 따라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최근까지도 이들이 숨지기 전 마지막 행적을 CCTV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보도가 자주 나오고 있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고 부작용이 더 큰 보도 방식이다.     


자살 보도를 할 때 '벼랑 끝 선택' '극단적 선택' '마지막 탈출구' 등 어려운 상황의 끝에 내린 결정인 것처럼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다. 어떤 상황도 자살의 합리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이런 표현이 늘어나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살아있을 때 힘들어 했던 이유를 들면서 자살의 원인을 쉽게 단정하거나 유서의 내용을 함부로 공개해서도 안 된다. 자살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미화해서도 안 된다. 누군가에게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될 수가 있다.     


얼마 전까지도 자살 보도는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다뤄졌다. 중앙자살예방센터의 노력 덕분에 이런 보도는 많이 줄어들었고 기자들 사이에서도 자살 보도에 대한 경각심은 빠르게 높아졌다.     


아쉬운 점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해선 안 되는 표현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나열이 돼 있지만, 어떻게 기사를 써야하는지에 대해선 권고 사항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기자들이 갑작스럽게 황망한 소식을 접했을 때 우왕좌왕 기사를 쓰다가 유가족 등에게 상처를 주는 잘못을 반복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한국기자협회가 함께 고민해서 바람직한 자살 보도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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