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찾다] 발제가 힘들 땐 지난 사건도 다시 보자
아무리 고민을 해도 기사거리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지나간 사건들을 뒤져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추수까지 다 마친 사건이라도 바닥에 흘리고 간 이삭을 줍다보면 쏠쏠한 재미를 얻을 때가 있다. 홈런은커녕 안타도 치기 어려울 땐 번트라도 대 보자는 심정이다.
2019년 6월 20일 아침, 서울 문래동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밥을 짓고, 세수를 하려 물을 틀어보니 붉은 녹물이 나와서다. SNS에 인증샷이 올라오고 방송 카메라들이 달려갔다. 그동안 수돗물을 그대로 먹어도 된다고 홍보하던 서울시는 자존심이 구겨졌다. 문제는 오래된 상수도관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긴급 예산을 투입해서 서울에 있는 낡은 상수도관을 모두 긴급 교체하기로 했다.
많은 사건이 그렇듯 그 뒤로 문래동은 어떻게 됐는지, 정말 상수도관이 문제였는지, 교체는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지 '애프터 서비스'를 해주는 기사는 없었다.
혹시 그사이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보러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를 찾아가 봤다. 다행히 교체 작업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빈손으로 돌아 나오려다 문제가 됐던 문래동의 상수도관을 꺼내는 날이 언제인지 물어봤다. 방송 기사인 만큼 물때가 가득 찬 상수도관의 심각함을 직접 보여주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달 뒤로 예정된 공사 날짜를 캘린더에 저장해뒀다.
공사 날에 맞춰 영상취재 기자와 문래동 공사 현장에 나가봤다. 도로 한복판에서 포클레인이 아스팔트를 부수고 땅을 파내자 문제의 상수도관이 드러났다. 전문가가 들어가서 산소절단기로 관을 잘라내고 쇠사슬로 묶어서 포클레인이 들어올렸다. 생소한 광경이었다.
꺼낸 상수도관 속을 직접 살펴봤다. 방송 기사를 쓰기에 그림이 딱 이었다. 먹는 물이 지나다니는 길에 이물질이 굴러다니고 물때가 잔뜩 껴 있었다. 카메라를 켜서 구석구석을 찍고 직접 손으로 상수도관을 닦아내 끈적끈적한 물때를 보여줬다.
대단한 특종은 아니지만 주말 저녁 뉴스로 반응이 쏠쏠했다. 흐지부지 마무리된 사건이나 구속된 유명인의 출소일 등을 메모해둔 뒤 기사거리가 궁할 때 꺼내보면 요긴할 때가 많다. 기사거리가 흉작일 때 살아남는 나만의 꿀 팁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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