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승환 Aug 10. 2021

2차 가해와 성폭력 범죄 입증 사이의 딜레마

46. [생각하다] - 성폭력범죄 보도 취재윤리

가장 아슬아슬한 보도 유형을 꼽으라 하면 그 중 하나는 성폭력범죄 사건을 다룰 때다. 성폭력범죄는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보도를 잘못 할 경우 2차 가해를 할 수도 있다. 거꾸로 오보를 낼 경우 가해자로 의심 받은 사람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명예훼손을 가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한 글자라도 허투루 쓸 수 없는 기사가 성폭력범죄 보도다.     


성폭력범죄 중 비교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쉬운 경우가 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의 조사를 통해 범죄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때다. 이럴 땐 성폭력범죄 보도를 할 때 일반적으로 지켜야 하는 취재 윤리 기준을 따라 기사를 작성하면 된다.      


한국기자협회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이를테면 피해자의 신상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가해자의 시선에 입각한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이다. 과거엔 사건에 이름을 붙일 때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가해자의 이름을 따서 사건명을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피해자를 부각하는 보도 제목(왼쪽)과 가해자에 집중하는 보도 제목(오른쪽)의 차이


가해 행위를 미화하거나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몹쓸 짓' '나쁜 손' '몰카' 등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인 경우다. 성폭력범죄를 이렇게 모호하게 쓰면 가해자의 범죄가 가볍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나쁜 손이 아니라 범죄다


범죄 상황을 삽화나 재연 등으로 보여주는 것도 피해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고통을 떠올리게 하고 보는 사람에겐 불필요한 상상을 하도록 유발한다. 많은 신문사의 삽화가 가해자 중심적인 시각으로 성폭력범죄를 그리면서 피해자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성폭력 범죄 사건을 그린 일러스트에서 대부분 피해자는 구석에 웅크려 앉아있다. 이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이 어려운 경우이다. 피해자가 성폭력범죄를 겪고서 한참 뒤에 기자에게 제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듣고 보도를 할 경우 어느 수준까지 밝혀야 하는지를 두고 언론사 내에선 항상 논쟁이 벌어진다. 아무리 피해자가 동의했다고 해도 그 사실을 너무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명백한 2차 가해가 되고, 너무 모호하게 표현할 경우 범죄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반론을 얼마나 실어줘야 하는가도 큰 쟁점이다. 가해자의 해명이 범죄 사실을 부정하기 위한 거짓 변명인 경우 이것을 그대로 기사에 담는 것이 피해자에겐 2차 가해가 된다. 그렇다고 가해자의 반론 없이 성폭력범죄를 폭로할 수는 없다. 수사 기관이 아닌 기자 입장에선 큰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다.     


성폭력범죄 보도의 경우 특히 0.1%라도 자신의 보도에 의심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않은 채 기사를 내보내선 안 된다. 성폭력범죄를 폭로하는 보도는 이렇게 모든 증언의 앞뒤 맥락을 따져보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등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과해 나온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는 언론 보도는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시킨다


성폭력범죄 보도가 지켜야할 또 다른 기준 중 하나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숨어 있거나 우울하거나 불행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강화하는 식의 보도, 이런 선입견과 다른 모습이 포착됐을 때 지적하는 식의 보도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아래 도서 정보를 참고해 주세요. 


<네이버 책>

<교보문고>


매거진의 이전글 붉은 수돗물 나온 문래동에서 '이삭줍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