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승환 Aug 22. 2021

“흰 연기는 수증기 입니다?”포스코 제철소의 거짓말

47. [만나다] - 말할 권한이 있는 입을 찾자

2019년 하반기에 JTBC 탐사팀에 몸담았다. 탐사팀의 장점이자 단점은 취재 범위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자기가 취재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얼마든지, 시간과 자원의 제약을 덜 받으면서 파고들 수 있다. 대신 취재거리를 스스로 찾지 못하면 남아도는 시간이 정말 좌불안석이다.     


취재거리를 찾지 못한 답답한 어느 주말, 부모님 댁에 찾아가서 쉬다가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의 눈높이는 보통 시민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최고의 척도이다.    


"엄마는 요즘 뭐가 제일 관심 있어?"


"미세먼지가 제일 고민이지."     


그래서 미세먼지를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미세먼지의 배출원 중 중국은 당장 취재가 어려우니 일단 빼놓기로 했다. 국내 발생 원인을 찾다보니 눈에 띈 곳이 제철소였다. 한 환경단체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아무런 필터도 없이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해왔다고 영상을 공개했다. 포스코는 흰 연기가 대기오염 물질이 아니라 수증기라고 반박했다. 실체를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이런 주장을 한 환경단체에 연락했다. 포스코 측은 굴뚝에서 나오는 흰 연기가 수증기라고 하는데, 대기오염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대답은 다소 황당했다. 포스코에서 전에 일했던 직원이 말하길 그 굴뚝에는 대기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장치가 없다고 한 게 근거라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기사를 쓸 수는 없었다. 대기업의 환경오염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런 주장을 그대로 믿고 인용할 수는 없다. ‘권한이 있는 사람의 책임질 수 있는 말’이 필요했다.     


포스코 뉴스룸의 흰 연기 관련 설명자료. [포스코 뉴스룸 캡처]


서울에서 전화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현장을 찾아갔다. 광양제철소를 마주보고 있는 한 마을의 주민들을 만나기로 했다. 직접 가서 보니 환경단체의 말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라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창틀과 마당 바닥을 손으로 쓸면 검은 분진이 묻어 나왔다. 자석을 대 보니 정말 쇳가루였다. 포항제철소 옆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은 창문도 못 열고 지낸다면서 인터뷰를 해줬다.     


그래도 기사를 쓰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환경단체 담당자와 서로 옥식각신 말다툼을 많이 했다. 환경단체에선 이렇게 분명하게 주민들의 피해가 눈에 보이는데 뭐가 더 부족하냐고 따졌다. 포스코에서 돈을 받고 시간을 끌다가 취재를 접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답답했지만 저 굴뚝에서 나오는 흰 연기 속에 쇳가루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때까진 어쩔 수 없었다.     



고민하던 중에 환경단체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행정부처인 환경부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속으로 드론을 띄워서 미세먼지를 측정해보기로 했다는 거다. 그 측정 과정과 결과를 환경단체도 함께 보기로 했으니 그 자료를 입수하면 기사를 쓸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권한이 있는 사람(환경부)의 책임질 수 있는 말(측정 결과)을 찾아낸 것이다.      


측정 결과 연기 속에서 기준치를 넘는 대기오염 물질이 나왔다. 흰 연기는 수증기라서 해롭지 않다는 포스코의 주장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미 대기 중에 퍼진 연기에서 미세먼지를 포집한 결과라는 것이다. 보통 대기오염 물질의 양을 잴 때는 굴뚝에 직접 측정기를 대고 측정한다. 대기 중에 이미 흩어진 연기에서 드론으로 측정하는 것과 최대 100배 정도 차이가 난다.     



최종 확인을 위해 환경부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환경부 담당자는 "흰 연기가 거의 다 수증기라는 말은 맞지 않다. 드론으로 측정한 것보다 실제 나오는 오염물질의 농도는 더 높을 것이다"라고 말해줬다. 이제 분명하게 기사를 쓸 수 있게 됐다.      


포스코의 주장과 달리 흰 연기는 대기오염 물질이었고 그 배출량이 상당하다는 기사와 제철소 주변 주민들이 직접 말하는 고통을 담은 기사, 총 2꼭지의 방송 리포트가 보도됐다. 권한이 있는 사람의 책임질 수 있는 말이 들어갔기 때문에 포스코에선 어떤 반박 자료도 내지 못했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아래 도서 정보를 참고해 주세요. 


<네이버 책>

<교보문고>


매거진의 이전글 2차 가해와 성폭력 범죄 입증 사이의 딜레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