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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환 Aug 27. 2021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후보"라는 말은 없다

48. [생각하다] - 줄 세우기식 선거 보도의 문제점

정치의 꽃이 선거인 것처럼 정치부 기사의 꽃도 선거 보도이다. 많은 시민들이 선거 보도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누가 이기고 지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선거 보도는 경쟁하는 후보들을 경주마처럼 표현한다. 1등이 누구이고, 누가 추격하고, 결국 누가 이겼다는 식의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마식 보도를 하게 되면 왜 이겼는지, 어떤 공약이 핵심이었는지 등은 잘 주목받지 못한다. 시민들에게 중요한 정보인 선거 공약, 정책을 검증하는 기사는 절대적으로 수가 부족하다. 시민들은 어떤 공약이 나오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인물 간 대결 구도만 보다가 선택하게 된다.      


2018년에 한 지방선거 후보자에게 "왜 정책 설명은 안 하고 다른 후보 비방만 하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후보자가 "정책 이야기 많이 했는데 기사 한 번도 안 써주지 않았냐"고 반박할 때가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정책 기사는 재미없고 조회 수가 잘 안 나와서 덜 써왔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거 보도를 보다보면 "오차범위 내에서 A후보자가 앞서고 있다"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문장은 사실 틀린 표현이다. 오차범위 내에 있단 것은 이 범위 내에서는 수치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앞서거나 뒤에 있는 게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단 뜻이다. 하지만 언론에선 줄 세우고 싶은 욕망 때문에 "오차범위 내에서 조금 앞섰다"는 틀린 표현을 쓰고 있다. 나 역시 이런 표현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써왔다. 오차범위 내에 있을 때는 "접전을 벌이고 있다" "우열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선거 기간엔 여러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땐 응답률이 어떤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응답률은 보통 10%대인데 즉 10명 중 1명 정도만 여론조사에 참여하고 9명은 거절한단 뜻이다. 그런데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10명 중 1명은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의 당원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여론조사 전화를 받아서 끊지 않고 여러 문항에 답하면서 시간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각 정당에선 당원들에게 선거 기간에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반드시 받아서 당 후보의 지지율을 높여달라는 부탁을 한다. 각 정당이 당원을 얼마나 잘 조직하고 동원하느냐에 따라 여론조사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예측과 실제 투표 결과가 크게 다른 경우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정당들이 이렇게 여론조사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동조 효과 때문이다. 시민들은 자기도 모르게 다수에 속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언론이 이를 받아쓰는데 선호하는 정당이 없던 사람들은 이걸 보고 이기고 있는 쪽에 표를 주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여론조사의 함정 때문에 여론조사를 인용하는 기사를 쓸 땐 질문, 표본 구성, 응답률 등을 표시하고 해설을 덧붙일 필요가 있지만 대부분 기사가 생략하거나 아주 짧게만 적고 있다. 오로지 누가 몇 퍼센트의 지지율을 얻어서 몇 등을 하고 있는지만 강조한다.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경우 표본 구성, 응답률 등을 자세히 쓰지 않고 위 기사 처럼 독자에게 알아서 찾아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 선거 보도를 하면 단골손님처럼 나오는 기사가 지역 민심을 파악하는 르포 기사다. 지역 현장을 직접 가서 시민 인터뷰를 여러 명 한 뒤 종합해서 쓰는 기사다.      


그런데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요즘은 이 지역 민심 르포가 아주 형식적이고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엔 지역 민심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직접 가지 않더라도 민심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선거 기간에는 형식도 내용도 비슷비슷한 지역 민심 르포 기사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게다가 직접 지역에 간다고 해서 여러 사람을 골고루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방에 내려가면 기자들은 제일 먼저 택시 기사들에게 민심을 물어보고, 그 다음 전통 시장에 도착해서 상인들과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지방의 민심이 전통 시장에만 있을 거란 생각은 지극히 서울 중심적인 사고다. 지역에서도 번화가 영화관에서 물어볼 때, 대학가에서 물어볼 때는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온다.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옮겨 쓰는 것도 어렵다. 10명 중 9명이 A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기사에 같은 비중으로 썼다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내가 파악한 민심이 실제 표심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쪽 후보에만 유리한 기사를 썼다고 시비가 붙거나 선거관리위원회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선거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기계적인 균형을 다소 맞춰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책 기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선거 기간에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이 가운데서 시민들이 꼭 필요한 정책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눈에 띄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정치부 기자들이 아직도 해결 못한 오래된 과제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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