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듣다] - 정치인의 말은 무조건 의심해라
2021년 중앙일보 정치부로 인사 이동을 했을 때, L선배는 오리엔테이션을 해주면서 "다른 출입처와 국회가 다른 점은 이곳 사람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거다. 정치인의 말은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부에서 취재를 해보니 이 말은 사실이었다. 시민들이 국회의원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정치인들 중에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거짓말은 두 종류가 있다. "그날 A를 만났냐"고 물었을 때, 만나고서도 "아니다"고 답하는 명시적 거짓말이 있고, "기억이 안 난다"고 모호하게 대답해서 나중에 거짓말이 드러나도 빠져나갈 여지를 만드는 묵시적 거짓말이 있다. 밥 먹듯이 한다는 거짓말은 주로 묵시적 거짓말에 해당한다.
2021년 1월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자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하자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이익을 본 기업이 피해를 본 기업에게 이익을 나누자는 취지였다.
야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자본주의 선진국인 미국의 보잉, 영국의 롤스로이스, 일본의 도요타도 이익공유제를 이미 시행해서 성과를 거뒀다"고 반박했다.
논쟁 중에 해외 사례를 줄줄 읊으면 뭔가 유식해보이고 당장 확인이 불가능하니 일단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이때 정치부 기자라면 이 사례가 정말 맞는 말인지 검증을 해봐야 한다. 정치인들은 종종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잘 맞지도 않는 해외 사례나 어려운 개념을 아전인수격으로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역시나 민주당의 주장은 반절만 맞는 얘기였다. 민주당이 사례로 든 롤스로이스의 사례는 '위험-수익 공유파트너십'이었다. 이익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위험도 나눠야 하는데 위험은 쏙 빼놓고 인용한 것이다. 미국 보잉사의 경우도 이익공유라기 보다는 투자나 연구·개발 개념에 가까워서 코로나 이익공유제와는 전혀 결이 달랐다.
이런 내용을 지적해 기사를 썼더니 민주당은 발끈했다. "해외사례를 왜곡하거나 꼼수를 쓴 게 아니다. 위험도 당연히 공유하는 것인데 이것을 생략했다고 왜곡이라고 보도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익과 위험을 모두 공유하는 개념인데 이익만 부각하고 위험은 숨긴 게 거짓말이 아니라니, 정말 유감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아래 도서 정보를 참고해 주세요.
<네이버 책>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