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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ul 22. 2021

억만장자들의 우주여행을 바라보며

우주 관광 산업,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1) 생소한 여행 상품, '우주 관광'에 대하여


 지난 7월 11일,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이 버진 갤럭틱 우주선 'VSS유니티'를 타고 우주 관광에 성공했다. 7월 20일에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블루 오리진의 로켓 '뉴 셰퍼드'를 타고 성공적인 우주 관광을 마친 후 돌아왔다. 테슬라의 테크노킹(테슬라 CEO의 직함) 일론 머스크도 스페이스X를 통해 우주 관광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억만장자들 사이에서는 우주 관광 열풍이 한창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주 관광이란 우주 경계선(고도 약 88km)까지 올라가 몇 분간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고 지구를 멀리서 내려다보다가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성공적인 시범 비행을 시작으로 우주 관광 산업은 본격적인 서비스 운영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 내년부터는 우주 관광이 상용화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 기세가 엄청나다. 90분가량의 우주여행 상품 가격은 약 3억 원가량.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각종 유명인사와 부자들 600명이 이미 해당 여행 상품을 예약했다.





(2) 우주 관광을 바라보는 시선


 버진 그룹의 버진 갤럭틱,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기업 블루 오리진은 우주 비행을 생중계했다. 버진 갤럭틱의 생중계를 놓친 것이 무척이나 후회스러웠던 나는 '블루 오리진 생중계는 꼭 실시간으로 지켜보리라' 결심했다. 블루 오리진의 비행 생중계 시작 시간은 지난 20일, 밤 10시경. 퇴근 후 진이 빠진 나는 오자마자 뻗어버렸다. 블루 오리진 생중계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청난 후회를 한 것은 다음 날의 일이었다. 대신 다시 보기 영상을 통해 아쉬움이라도 달래며 실시간으로 생중계를 지켜보았던 이들의 반응을 찾아보았다.


 '근래 들어 이 정도로 떨린 적은 없었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짜릿했고 우주 비행이 성공했을 때는 나도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인류가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부정적인 여론도 생각보다 많았다. 특히 해외에서는 우주 관광 산업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최근 지구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어렸을 때부터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상 이변이 닥칠 것이다.'와 같은 말을 종종 들어왔지만 지금껏 크게 체감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 폭우를 포함한 각종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세상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일부 선진국들은 급하게 탄소 규제 및 국제 환경 협약 등을 체결하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은 한창 우주 놀이에 한창이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해외의 정치인이나 각종 언론들은 '지구가 불타는 와중에 부자들은 비싼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으로 바다 생물까지 쪄 죽는 판에 억만장자들의 돈놀음을 구경해야 하나. 당신들이 단돈 60억 달러(6조 9000억 원)만 보태주면 전 세계 굶주리는 사람 4100만 명을 도울 수 있다. 우주 대신 기후 위기가 닥친 지구나 박봉의 지구인들에게 돈 좀 쓰라.'라며 이들을 비판했다.


 제프 베이조스는 '우주에서 봐야만 연약한 지구가 제대로 보인다'는 논리와 함께 거액의 기부 약속을 하며 이를 무마하려 노력했지만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3) 부자들은 왜 우주에 가려고 할까



 지난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적인 부호들의 우주여행에 대한 관심은 과거 꼭대기 층을 추구해온 부유층들의 모습과 부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는 '꼭대기 층을 차지하려는 부유층의 욕망은 13세기 이탈리아 저택에 앞다퉈 세워진 탑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고, 현대에서는 마천루 경쟁으로 이어졌다. 우주는 갈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고 배타성의 매력이 추가되어 신분의 마지막 경계가 됐다'며 그들을 비판했다.


 또한, 미 워싱턴포스트는 '억만장자들의 우주 고도 경쟁은 과거 빅테크 기업 회장들이 누가 더 큰 요트를 타는지 경쟁하던 것을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우주 관광 산업 안에서는 은근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버진 갤럭틱의 우주 비행기 'VSS유니티'의 비행 고도는 88.5km이다. 블루 오리진의 로켓 '뉴 셰퍼드'의 비행 고도는 100km 이상으로 버진 갤럭틱에 비해 훨씬 높이 비행한다. 블루 오리진은 '세계 인구 96%의 우주는 100㎞ 위부터 시작된다'는 트윗을 버진 갤럭틱의 비행 전에 게시하며 그들을 은근슬쩍 평가 절하했다.


 즉, 인류에게 우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기 위함은 허울 좋은 가식일 뿐이고, 이들에게 우주 관광이란 자신의 자본과 기술력을 과시하며 '우리는 너희가 가지 못한 곳까지 갈 수 있다'를 나타내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4) 자본주의 사회, 부자들의 사치는 무엇이 문제일까?



 누군가는 이를 보고 역으로 비판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들이 정당한 방법을 통해 취득한 정당한 소유물을 가지고 소비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그들이 우주여행을 가든, 우주에서 살림을 차리든 그것은 타인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당신들은 부자의 소비 권리를 억압하며 자유시장경제를 해치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이 말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억만장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는 지구와 타인의 희생을 통해 획득된 것이다. 그들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기계를 가동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환경오염이 발생했다. 따라서 무관한 타인들이 그들의 부에 대한 간접적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즉, 억만장자들은 지구온난화에 기여하였고 사회에 간접적인 피해를 끼쳤으므로 타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 덧붙이자면 '로켓의 발사, 착륙 과정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양의 열과 이산화탄소, 발사체 배출물은 성층권 오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즉, 이들은 '자유롭게 소비할 권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타인에게 물리적 피해를 주고 있다.

억만장자들은 우주 관광 사업을 통해 기존의 물리적 피해 위에 열등감,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정신적 피해까지 덤으로 얹어주었다. 우주 관광 산업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정신적 피해까지 입은 소비자들이 부자의 사치를 비판할 자격은 충분하다.



 ICT 발전함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대규모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지금의 사회는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소비 행위가 내 일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미줄 같은 모습을 띄고 있다. 그들의 소비와 나의 생활을 무관하게 생각할 수 없다.





(5) 억만장자들의 수습, 그리고 ESG


 ICT의 발전으로 이해관계자의 수가 늘어나고 관계가 복잡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평균 GDP가 올라가면서 소비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보장받았고 높은 윤리 의식을 보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ESG'라는 개념이 새롭게 부상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해당 기업이나 경영자가 윤리적이지 않으면 구매를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 혹독한 시장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비자들의 반응을 계속 신경 써야 하고 그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즉, 억만장자들이 '지구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고액 기부를 약속한 것도 이타심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다. 이는 그들의 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빛 좋은 개살구로 포장된 선의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좋은 명분을 내세우고 거액의 기부를 했다고 해서 그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비록 놓쳤지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우주 비행 생중계는 인류에게 가능성을 보여주고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마음속 깊이 심어주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여기에 더 무서운 상상도 가능하다.


 로버트 라이시 전 미 노동장관은 지난 15일 트위터에 '억만장자들의 우주 비행은 진보의 신호가 아니다. 나머지 인류가 고통받는 동안 선택된 소수가 지구를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기괴한 불평등의 징표다.'라는 글을 올렸다.


 지구온난화가 더 심해져서 마침내 지구 멸망의 날이 왔을 때, 극소수 최상위 계층만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떠난다고 상상해보라. 우리가 불타는 지구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지를 때, 이를 내려다보며 우주 너머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말이다. 우주 관광 사업은 이러한 불평등의 시발점일지도 모른다. 억만장자에 대한 단순한 열등감, 반발심리에서 비롯된 여론이라 하기에 지금 상황은 너무도 끔찍하다.




“ I really hope that there will be millions of kids all over the world who will be captivated and inspired about the possibility of them going to space one day.”

나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언젠가 우주에 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영감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Richard Branson, Founder, Virgin Galactic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 버진 갤럭틱 홈페이지에 적어놓은 글귀이다.


 그의 말에 진정성이 있기를, 소수의 최상위 계층에게 차별성을 부여하려 하기보다는 모든 인류에게 우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산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이상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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