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곰과 얀테 이야기
4월에 직장인이 되고 나서 급격히 바빠지는 바람에, 스웨덴/북유럽 관련 컨텐츠 게시물을 올릴 수가 없었는데, 새롭게 포스팅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피카(Fika)와 스톡홀름 신드롬에 이어, 3번째 포스팅에서는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문화 코드인 '라곰 (Lagom)' 과 '얀테 (Jante)' 및 얀테라겐(얀테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혹은 인간관계에서 한국인의 특성상, '정' 을 가감없고 과격히 표현하거나
존중받지 못하면서 우리의 멘탈은 쉽게 부스러지고 주춤해지는 것 같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꾹 참고 삭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태도로 확실히 갈등에 직면하는 모습이 있는 한국인들과는 달리, 스웨덴인들은 굉장히 이에 대해 민감하거나 예민합니다. 갈등이 싫어서 말을 뒤늦게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회피하고싶어서 그 자리에 있고싶어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일반적인 논지를 적용한다 할지라도, 1년에 불과하지만 스웨덴에서 일해본 결과, 사회생활에서나 가정생활에서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일을 딱 한 번 들어본 적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들도 사람인지라, 자신을 부풀려 이야기하거나, 아는 척 하기에 바쁘거나 하는 꼴불견인 사람들을 위한 단어이자, 스웨덴 사람들의 철학이 담겨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Tack(고맙습니다), Hej (안녕하세요),
Fika (피카) 에 견줄만큼 자주 쓰이는, 사전적인 의미의 적당함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을 의미하는 단어인, 라곰입니다.
한국의 속담이나 격언에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적당하게 라는 애매한 기준은 '선을 지키는 것' 말고도, '굳이 말을 많이하거나 튀는 개인플레이어가 되지 않을 것'을 단속하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물론 서류절차를 비롯한 관료 집단의 고질적인 늦은 행정처리, 말을 아끼는 스웨덴인에 대한 오해를 숱하게 낳은 것이 이 라곰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스웨덴 사회와 사람들을 이해하기에 유용합니다. 라곰의 유래는 어디서 온 걸까요?
가장 잘 알려진 라곰에 대한 유래는 17세기 초반, 스웨덴이 근대사회로 넘어갈 시점에서 등장합니다. 라곰은 사실 법을 의미하는 lag 과 영어의 about 과 대칭되는 단어인 om이 붙어서, lagom 자체는 "관습적인" 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유추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 뜻은 그리 쓰이지 않을 뿐더러, 1602년의 법전에서 lag(법) 이라는 개념이 명시되기 시작한 이 시점이 쓰인 때가 아니냐고 유추될 뿐입니다. 위의 사진은 15세기 이전까지 긴 시간동안 북유럽을 다스렸던 '바이킹'의 심볼로, 약탈에 능했지만 약탈 이후에는,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구성원들과 음식과 술을 나누며 파티를 벌였고, 이후에는 다시 조직적인 전사들로 재무장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유지했습니다. 예외적으로 전투원이 아닌 경우에는 몫을 배당하지 않았을 정도로 엄격히 대응했다고 합니다. 즉, '집단의 생존'을 위해 보상은 확실히 하지만 그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은 확실히 물었습니다. 바로 이점이 라곰의 유래가 아닌가 추산하곤 합니다.
문제는 한국의 서점가(출판가)나 언론에서, 마치 이 라곰을 미니멀리즘이나 무소유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지만 전혀 다릅니다. 스웨덴은 한국처럼 쓰레기를 굉장히 잘 재활용할 뿐만 아니라, 바이오디젤 연료를 위해 노르웨이나 핀란드에서 폐기물을 수입할 정도로 발전되어있기 때문에, 단순히 오래 쓴 물건들이 필요 없어졌을 때 그만큼 Sharing과 Reuse가 확실하게 촘촘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소비가 적어보이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이지, 절대 미니멀리즘이나 무소유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2010년 전후로 아시아의 일본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미니멀리즘의 대표 인물이나 코드로 '사사키 후미오(일본인 미니멀리스트)'나 법정스님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때 유명했던 노래 '썸'의 가사를 보면, 내 것인듯 내 것 아닌 니 거 같은 나 라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라곰의 반대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비슷한 개념도 아니지만 북유럽 4개국의 노동과 일반 문화속에 스며들어있는 코드, '얀테'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요,
사실 얀테는 실존인물의 이름이 아닙니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 '악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 1899-1965)' 가 1933년 그의 작품인 "En Flykting krysser sitt spor (A Fugitive Crosses his track; 도망자)" 에서 나타나는 가상의 마을로, 이 작은 소도시 속의 작은 마을에는 얀테라겐(Jantelagen) 이라는 10가지로 구성된 지배규율이 있고, 이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 일부 등장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이전까지 상상 이상으로 보수적이었던 북유럽을 '비유적으로 풍자'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있지만, 가장 정확한 의미는 작가 본인만 아리라 생각됩니다.
법(lag) + The (en) + 얀테(Jante) 라는 3가지 단어로 구성되어있는 이 얀테법의 10가지 디테일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요?
1. Du Skall inte tro att du är något.
당신이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2. Du Skall inte tro att du är lika god som vi.
당신이 무언가를 남들보다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 것
3. Du Skall inte tro att du är klokare än vi.
당신이 다른 누군가보다 명석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4. Du Skall inte inbilla dig att du är bättre än vi.
당신이 다른 누군가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말 것
5. Du Skall inte tro att du vet mer än vi.
당신이 다른 누군가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 것
6. Du Skall inte tro att du förmer än vi.
당신이 그 누군가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말 것
7. Du Skall inte tro att du duger till något.
당신이 그 어떤 누군가보다 '더 나은(혹은 준비된) 사람' 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8. Du Skall inte skratta åt oss.
당신은 우리를 보고 비웃을 자격이 없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우월하다 생각하지 말며 비웃지도 말란 뜻)
9. Du Skall inte tro att någon bryr sig om dig.
누군가는 당신을 신경써주고 생각해줄거라 생각하지 말 것
10. Du Skall inte tro att du kan lära oss något.
당신이 무언가를 가르칠 정도로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이라는 총 10가지의 규칙을 담고 있는 이 얀테라겐은 사실 정확한 사실이 아니면 말하지 않으려고 하고,
갈등을 최대한 피하려고 침묵을 유지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철학이 담겨있는 암묵적인 관습이기도 합니다.
소리치며 갈등을 키우거나 하는 꼴을 잘 보지 못하는 북유럽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초에 갈등이 생기면
갈등을 직면하려하기 보다는 조용히 우회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습성이 강하거든요. 바로 이것이 실제로 드러난 부분이, 소설에서 출전한 것이긴 하지만 '얀테'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소중하다면 남도 소중하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얀테, '갑질' 이 만연한 한국사회에 의미있는 말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