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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순이 Jan 05. 2021

나, 천덕꾸러기 된 거 맞지?

과거 #3

직장 사람들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리를 두니 오히려 스트레스는 덜 받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식적이지 않게 선을 넘거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자차로 출퇴근하는 나에게 다짜고짜 차를 태워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단순히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제품 조사를 퇴근 후 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 맞서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두 번째부터는 훨씬 더 쉬웠다. 게다가 나는 당시 맡고 있는 분야에서 한국의 유일한 전문가가 되었고 입지도 굳어져서 내 콧대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제가 그 방향으로 가지 않으니 태워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택시 기사는 아니잖아요.)"

"이 조사는 제가 보기에 업무와 상관없고 불필요한데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 궁금하면 직접 찾으세요.)"


칼 같이 쳐내고 의견을 똑바로 얘기할 수 있게 되니 외롭긴 해도 응어리가 쌓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군대식 문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말도 안 듣고 따박따박 말대답하며, 까칠하게 대하는 나는 이질적이고 이상한 직원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쌈닭'인지, 아니면 어디에나 한 명씩 꼭 있다는 불변의 법칙 주인공, '돌+아이'인지는 몰라도 다들 쉬쉬하며 나를 피했다. 나와 대화를 할 경우에는 철저하게 업무적으로 대했으니, 덕분에 편해진 면도   없지 않아 있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정신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일을 잘했기도 했고 적성에 맞아서였다. 혼자서 현장에 나가 벤치마킹을 하는 일뿐만 아니라 글로벌로 다양한 업무 방법을 하나로 모아서 표준화시키는 것도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전 세계로 소통해야 하는 업무이다 보니 미국 본사의 동료들과 대화할 기회가 더 많았다. 사실, 한국의 팀원들을 적으로 돌렸기 때문에 고립되었던 내가 빠져나갈 수 있었던 통로는 외국 동료들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나는 눈엣가시였기 때문에 지식이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았어야 했던 현실도 한몫했다. 그래서 최대한으로 협력하고 자주 연락하니 그들과 더 사이가 좋아지게 되었다. 언제나 열성적이고 협조적이며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니, 그곳 팀장이 우리 팀 팀장과 본부장에게 나를 칭찬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보라순이 씨는 그냥 미국 직원인가 봐. 그쪽 사람들한테만 맞추고 칭찬받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성과를 조금은 인정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를 좋게 평가하기는커녕, 팀장을 포함한 모든 팀원은 비아냥거리기에 바빴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미국에 주권을 팔아먹은 매국노였나 보다. 그러나 나는 사대주의, 혹은 본사에 잘 보이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었으며 나와 대화가 통했고 더 잘 맞았기 때문에, 아니 좀 더 속 깊은 진실을 얘기해보자면 나에게 호의적이고 잘해주었기 때문에 더 친해진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미국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고 그쪽에 더 의지했던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그 해, 내 생일날에도 그랬다. 한국으로 출장 온 미국 본사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케이크를 선물해주며 축하해주는 게 아닌가! 회사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동도 받았다. 회사는 전쟁터이고, 회사 사람과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선물을 받으니 쓸쓸함도 함께 밀려왔다.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더니, 그 오지랖은 정(情)의 일종이 아니었었구나. 같은 사무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나에게 갖는 적대감이 피부로 와 닿았다. 단순히 '티격태격'인 줄 알았던 내가 한심했다. 그 친구도 출장 내내 같이 지내다 보니 팀의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 되었다. 나를 너무 막 대한다고 느꼈는지 모두가 있는 앞에서 "NOT NICE"하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한 번은 팀워크를 키워야 한다며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신뢰 게임처럼 한 명씩 나와서 눈을 감고 뒤로 쓰러지면 나머지 팀원들이 잡아주는 시간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앞으로 나와 자세를 잡았다. 게임의 목적답게 아무런 의심 없이 뒤에 있는 사람들을 믿으며 넘어졌다. 그런데 그들이 날 싫어하는 정도가 내 생각보다 더 심했나 보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아서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렇게 맨 땅에 쓰러지고 나니, 그나마 있던 정나미도 떨어져 버렸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처럼 누구의 잘못이 먼저인지 따질 가치는 없어 보였다.  혹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데 내가 자초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에게 직장 생활은 너무 혹독하고 잔인했다. 나와 팀 사람들 사이에는 벽이 생겼고 서로 증오하는 마음은 커졌으며 나도 거칠 것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업무는 철저하게 분리가 되어서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되는 환경이 되었다. 의식적으로라도 팀 사람들을 무시하고, 혼자서 움직였다. 더 이상의 다툼이나 대립은 없었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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