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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17. 2020

사색85. 목적이 있는 행사

5월 16일(금)

어제가 15일, 스승의 날. 오늘로 약속된 대학원 지도교수 사은회가 있다는 알림, 실직자 신분이라 가기 싫지만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어제저녁 바른 마음으로 전 회사 직원들과 화해를 시도하면서 동시에 내일 스승의 날을 맞아 초대받은 지도교수 사은회 행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화해가 있고 나니, 실직자라고 기죽지 않고 뉴스에서 보던 청년실업 통계가 이렇다는데 오늘 이 자리에 실직자 하나 있어야죠 하고 너스레를 떨 수 있을 것 같더라. 화해는 새로운 관계를 창조한다. 무엇보다 교수님, 동료들이 보고 싶은 게 가장 중요하니까. 내 처지보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게 목적 아닌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목적이 있는 행사.     


2006년 여름,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한 학기를 아직 남겨두고, 여름 방학 말미에 취직을 했다. 남은 한 6학점은 과제 등으로 수업을 대체해 이수해서 졸업하자고 했다. 6학점 중 필수학점 3학점짜리 과목을 담당한 강사분은 학생이 수업을 제대로 이수해야지 이렇게는 점수 못해준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IMF 이후 대학은 거대한 청년취업지원센터로 전락하지 않았나. 학과장께서는 학생이 이미 취업했다는 데 졸업은 시켜줘야지 하니, 강사 님은 고집을 접고 낙제가 아닌 D학점을 주더라. D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취업센터로 전락해버린 대학에서 대학은 취업지원센터가 아니야 라는 자존심, 몽니를 부린 것 같다. 취업지원센터에서 취업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필수과목을 담당했다는 역설, 여기선 자기 과목도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란 것을 학생의 취업에 자신이 거세당한 듯이 몸부림치는 것이었나. 

      

졸업 전에 취직을 했으니 특별히 한 학기 지나 내 졸업장이 나오는 졸업식엔 가지 않았다. 갈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사실 직장 초년 생활을 눈치 보느라, 일 배우느라 바쁘게 보냈다. 그렇게 졸업식날이 지나고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하나 왔는데,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내 졸업식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내셨다. 부모님께서 내가 없는 내 졸업식장에 다녀갔다니 마음이 울렸다. 나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줄 알았는데 아버지 어머니께서 졸업을 시켜주신 것이더라. 내 졸업식이 아니라 그분들의 졸업식인 게다. 8학기 내내 성적장학금 한번 타보지 못한 변명을 국립대라 등록금이 싸니 성적장학금은 정말 불우한 학생이 받아야 한다며 때마다 맞춰 날아오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들이셨고, 대학생이니 대학생다운 용돈이 있어야 한다고 본인 용돈 줄여 내 용돈 주시고, 그렇게 본인들이 한이 된 ‘대학 진학’이라는 여한을 큰 아들인 나에게 투영시켜 풀어가며 자존심을 지킨 게다. 후회했다. 졸업식에 가야 했다. 내 행사가 아닌 부모님의 행사에 나를 포함시켜야 하는 행사였다. 그렇게 졸업식날 직접 학사모를 씌워 드리지 못한 게 죄송해서 대학원이라도 가서 학사모를 씌워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원이라니, 내 머리로 학업에 무슨 뜻이 있으랴. 

     

부모님이 자식 대학 등록금을 대주는 거, 이게 나쁜 건만 아니다. 자식에게 고등교육시키는 거 부모 입장에서는 뿌듯한 일이다. 등골이 휜다지만, 등골 휠만큼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내 자식 교육이라는 데. 다만, 비싼 교육을 받았는데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게 부모 힘을 빠지게 한다. 등골이 휘게 등록금을 댔는데, 이젠 졸업하고도 집에서 빈둥거리는 걸 봐야 하는 참을성까지 길러야 하게 됐다. 자식 취직 문제는 등록금 대는 것 이상의 문제다. 보통 부모님들은 자녀의 취직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외교부 장관 정도나 자녀를 자기 부처 사무관으로 특채시킬 정도, 전직 고위 관료나, 주요 신문사 논설위원 정도 돼야 초일류 기업 사장에게 서류심사 부탁 정도 해보는, 그게 아니라면 자식 취직은 참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기라는 건,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 부모님 은혜로 어찌할 수 없다. 비싼 등록금이 대수랴.  

   

대학원에 진학했다. 훌륭한 학교, 최신 이론과 실증법을 가르쳐주시는 교수님들, 주변에 한둘 현명한 친구들과 함께 유익한 공부도 했지만, 대학원을 진학한 결정적인 요인은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워드리기 위해서였다. 이상한 이유지만 실행하게 한다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렇게 진학하고 마쳐가는 대학원 생활,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항암치료 덕분에 기운이 빠진 아버지가 부산에서 근근이 졸업식에 오셔서 내가 씌워드리는 학사모를 쓰셨다. 어머니도 병중에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까지 오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마침 동생이 그 복잡한 졸업식 가족 인파를 뚫고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다 와서 대학원 건물 주차장에서 접촉사고를 내서 더 정신없었지만, 그렇게 학사모를 씌워드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대학원 졸업식이 아버지와 우리 가족의 마지막 외출 행사였다. 내 여한을 푼 것이다. 아버지께 학사모를 제대로 씌워드린 것이다. 사실 그해 논문을 포기하고 졸업을 미룰 뻔했다. 연구의 결론을 거의 다 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검토 과정에 굉장히 중요한 점이 틀린 걸 발견했다. 그걸 메우느라 지도 교수님, 연구실 선배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석사 논문 심사는 종심에서 엎어지는 게 학기마다 한두 명 정도 있는 일인데, 혹시 그 한두 명에 내가 들어갈까 걱정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석사 급 논문은 연구모델의 혁신성, 창의성, 주제 발굴보다 얼마나 완성도를 가지고 있나, 성의 있게 했냐가 통과 기준인 듯하다. 여하튼 허점이 보이는 논문을 지도교수님께서 다른 심사 위원께 이리저리 설명을 해가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는데, 이 연구가 석사 차원에 의미가 있다고 디펜스 해주셨다. 그렇게 지도교수님께서 ‘졸업시켜줬다’. 그래서 아버지도 졸업식에 모실 수 있었다. 지도교수님께서 학생 하나 졸업시켜냈다 정도 생각하는 것보다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가끔 술에 취해 교수님께 전화해서 덕분에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학사모를 쓰셨어요 하면 교수님께서 오히려 뻘쭘해하신다. 스승의 은혜는 여러 가지로 파생한다.       


사은회, 

교수님께서 창우는 요즘 어떻게 살아가니 라는 질문에, 저는 은혜, 은혜의 개념을 고민하고 있다 니 그거 기독교 이야기 아니냐고, 이놈 실직했다더니 예수 환자 다됐네 하며 질색하신다. 이야기를 계속 이으며, 지난달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가라앉는 걸 우리는 발만 동동 구르면서, 이때 슈퍼맨이 휘익 나타나서 그 배를 들어 올려 애들이 살아났다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일까.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날 리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은혜라는 건, 그런 기적적인 해결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오늘 하루 살며 감사할 일이 조금씩 있는 게, 그런 감사의 파편의 총합을 모아 보면 기적 단위이며, 이게 은혜가 아닌가. 오늘 우리가 ‘스승의 은혜’라고 하는데, 제가 졸업할 때 교수님께서 박사 진학하겠냐, 취업하겠냐 물어보셨는데 저는 회사에 가고 싶다고 말했고, 그렇다고 교수님께서 취직하겠다는 제자를 위해 슈퍼맨처럼 덜컥 어떤 회사 사장에게 전화해서 일자리 하나 달라해 취직을 시켜준다면, 이게 은혜로운가. 교수님은 야야 그럴 힘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하는 일에 교수님께 배운 것들의 흔적이 조금씩 묻어난다. 나는 지금은 실직자지만, 좀 전까지 전공분야에 취직해서 교수님께 배운 아이디어가 늘 내가 하는 일에 묻어나는 걸 느꼈다. 얼른 재취업해서 다시 그걸 느끼고 싶어요, 엉엉. 그런 게 스승의 은혜 아닐까. 교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어떻게 살아가니 라는 질문에 긴 대답을 했다. 이리저리 자리가 한창 이어지던 중 교수님께선 내게 오시더니 창우야 너무 초조해하지 마라 하신다.  


졸업 한지 오래된 제자, 스승의 날에 맞춰 해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게 반갑다. 실직자라 부끄러워 이 모임을 피했다면 후회할 뻔했다. 실직자라고 모임을 피할 필요 없다. 그렇다고 모임마다 나갈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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