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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19. 2020

사색73. 신앙이라 하지만 신앙이 아닌 것들

5월 4일(일)

어젯밤, 모처럼 고향집에서 어머니, 나, 동생 세 명이서 잤다.       

동생은 미명도 이르지 않은 새벽에 갑자기 비상이 걸려 부대로 가야 한다고 나선다. 자다가 갑자기 나가는 동생을 보고 놀람과 동시에 군인은 저렇게 사는구나 안쓰럽기도 하다가 저렇게 불러주는 직장이 있는 게 얼마나 좋은 건가 싶더라. 지난여름에도 저녁 식사를 같이 하다가 비상 걸렸다며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더라. 안쓰러운 마음에 밥이 넘어가지 않던데 제수씨는 늘 있는 일이라며 덤덤하게 조카들 손잡고, 부대로 가는 동생을 보고 있더라. 비상 걸려 출동하는 당사자야 비상시 매뉴얼에 맞춰 따르면 되는 데, 일상의 흐름이 순식간에 깨진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이 남겨 놓은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아니, 비상 역시 일상의 변수로 넣으면 되는 건가. 그걸 일상의 변수로 고려해야 하는,  그리고 비상사태가 익숙해져 일상 같이 돼버린 군인의 아내, 자식들 모습이 안쓰럽다.      


일요일이라 교회로 간다. 설교 중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던 게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부(소득), 명예, 직장 등 이라며, 자기가 바라는 수준이 신앙, 찬양을 대체하고 있는 실태를 지적한다. '하나님'은 단순한 직함이며, 성경 속의 인물과 관계한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the 하나님으로 돼야 한단다. 그걸 내 삶에서 증명하는 게 신앙생활이란다. 하나님으로 내 뜻을 이루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로 이뤄지는 삶을 살란다. 헌금 타령하는 보통 목사들이 하기 어려운 신앙의 핵심을 용기 있게 설교하신다.      


동생이 비상 출동해서 밤잠을 설쳤더니 예배 마치고 졸음이 쏟아진다. 어머니도 피곤하신지 교회에서 집까지 둘이서 겨우 발걸음을 이어 도착한다. 두 사람이 거실에 누워 낮 동안 자버린다. 어둑해진 초저녁에 눈 떠보니 어머니는 주방에서 뚝딱거리고 있다. 피곤한데 어디 나가 사 먹지, 매끼를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나. 어머니는 ‘해서 먹이는데’ 큰 의욕을 가지신다. 화가 정정엽의 작품 <식사 준비>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장보고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들이다. 어머니들 얼굴 표정에서 ‘우리 가족 내가 먹인다’는 당당함이 묻어 나온다. 내 가족 밥에 대한 책임감, 담대한 자부심이 나타난다.     

             *출처 : http://inchyoko.egloos.com/v/2757344


조카들은 작은 어항에 손바닥만 한 거북이 두 마리를 키운다. 거북이들에게 먹이를 주려면, 한 마리당 2조각씩 4조각의 사료를 어항에 던져 주면 된단다. 4조각을 어항에 던져 놓고 지켜보니 한 놈이 순식간에 4조각 다 먹고, 다른 놈은 한 조각도 먹지 못한다. 다시 2조각을 따로 못 먹은 놈 쪽으로 던진다. 그러니 못 먹은 놈이 한 조각을 먹는 동안 좀 전에 4조각 다 먹은 놈이 또 한 개를 먹는다. 총량으로 한 마리가 5조각, 나머지 한 마리가 1조각을 먹은 것이다. 4조각을 주고 거북이들 잘 먹겠지 하지만 실상 두 마리 거북이 각각 먹이 섭취에 불균형이 있다. 이런 불균형이 지속된다면 적게 먹은 한 마리는 비실거릴 것이고, 관찰 없이 원래부터 건강하지 못한 놈인가 하며 선천적인 건강 문제로 거북이를 탓할 수 있다. 거북이들끼리 알아서 2조각씩 나눠먹겠지 하는 것도 주는 사람의 환상이다.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항 속 거북이 먹이조차 정확하게 배분해야 한다. 같은 어항에 살아도 먹이를 두고 경쟁한다. 하는 사람이 막연히 생각하는 배분의 결과는 없다. 서로 나눠먹겠지 하다가 한 마리는 계속 살찌고, 한 마리는 죽을 수 있다. 배분 관리, 하물며 거북이 먹이도 내 생각과 달리 세밀한 관리가 필요한데, 세상에 배분과 관련한 여러 일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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