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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24. 2020

사색75. 연휴의 끝?

5월 6일(화)

불안감, 수면까지 방해한다. 밤새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차린 아침 밥상을 놓고 깨작거린다. 어머니는 차려놓은 밥상도 잘 먹지 못하냐고 짜증 내신다. 그러고 보니 아침인데 두릅, 고기전골, 미역국 등 이만저만 노고를 쏟은 게 아니다. 실직자 아들 속상할까 눈치 보며 참았던 성질이 밥상에서 깨작거리는 모습에 폭발한다. 첫 폭발은 연쇄 폭발로 이어진다. 8시에는 일어나라, 쉬면서 운동도 해라, 수염 좀 깎아라. 특히, 오늘 안에는 꼭 면도해라고 연쇄 폭발의 종착지는 구체적인 면도 주문으로 끝난다.      


어릴 때 이발하러 이발소 가면 반쯤 누운 의자 위에서 짧은 치마 입고 면도, 안마를 해주는 아줌마들이 있었다. 야사시한 아줌마들 곁에서 안락하게 잠들어, 안마를 받고, 면도를 받는 아저씨들이 부러웠다. 무엇보다 날카로운 칼을 든 타인에게 내 목을 허락하는,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생명을 담보하는 어른스러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이번에 부산에 내려와 하루하루 거뭇거뭇해지는 내 수염, 어머니가 보기 싫은 것만큼 나도 참아, 적당히 수염을 길러 이발소에서 면도를 받으려 했다. 마침 집 앞에 오래된 이발소가 있어 나흘째 면도하지 않고 수염을 길러놨는데, 어머니는 아침 밥상에 내 얼굴 꼴의 수정을 요구하신다. 당장 욕실에서 깎고 오라고 소리친다. 실직한 걸 내 얼굴에 수염으로 표시하는 것 같다고, 나야 이 얼굴이 실직한 얼굴인지 아닌지 누가 관심 있겠나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덥수룩한 내 수염에 투영한다. 당장 직접 면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누 거품내서 얼굴에 문질러 슥슥하면 된다. 이발소 가는 돈도 들일 필요 없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 성화에 면도해버리면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이발소 면도받으려 나흘을 참고 기다린 내 인내가 아깝지 않나. 밥마저 먹고 면도할게요 하고, 식사를 후다닥 마치고 밖으로 집에서 나가버린다. 일주일 정도 수염을 길러서 면도받으려 했는데, 지금이라도 면도하고 와야겠다고 동네 이발소를 찾아다닌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을 읽고 있던 중, 도덕 감정론을 이야기할 때 이성적 사고, 즉 합리적 추론과 판단에도 감정의 역할이 크게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실직 이후 내 감정의 기복, 재취업까지 인내하는 데 역작용을 일으키는 것,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감정이 날뛰는 걸, 도대체 내 이성을 감당하기 어려워, 이 미친 망아지를 죽이기 위해 침대로 들어가 자버린다. 의식을 수면으로 멈추는 선택은 어쩔 수 없다. 실직을 이성적으로 계획적으로, 신앙으로, 감당해 나가려 해도, 불안한 감정이 이 시간을 견디는 행태에 큰 역할을 한다. 실직자는 감성과 이성을 잘 섞어 하루를 견뎌야 할 텐데, 감성, 특히 불안한 느낌을 다스리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카 해동은 레고 블록 놀이에 열심이다. 블록으로 집을 만든다며 근사한 주택을 만들더니, 한편에는 주차장까지 만드는 섬세함을 보인다. 블록으로 높은 탑을 쌓다가 허리 즈음 높이에서 와르르 무너지니 어른처럼 버럭 짜증을 낸다. 버럭 성질내는 걸 보니 이제 사람이 돼가는구나 싶다. 어릴 때 동생은 레고 블록에서 첨부한 대형 비행기 설명서를 보면서 끝까지 조립해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난 비행기든 뭐든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설명서를 보고 한참 만들어도 어디 한 부분에서 틀어져 이음세가 맞지 않아 마무리하지 못했다. 조카들을 보며 그때 이야기를 꺼내며, 그걸 끝까지 만들어 낼 ‘인내심’이 없었나 보다 하니, 동생은 인내심, 끈기보다는 종이에 있는 설명서 그림을 봤을 때 3차원으로 공간감을 머릿속에 그리고 시작하는 게 필요했다고 하더라. 인내심이 아니라 공간감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기분 나쁘다.      


고향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실직으로 고통스럽지만 한편 이런 시간이 감사하다. 저녁 식사 중 어머니는 드디어 실직 상황에 대해 말씀을 꺼내보신다. 밥 잘 차려 줄 테니 서울 짐 싸서 부산으로 내려와 같이 살자고 조심스럽게 말을 하신다. 밥 같이 먹는, 사실 가족이란 게 매일 둘러앉아 밥 같이 먹는 식구 아닌가. 돈 번다고 따로따로 떨어져 살 필요가 있는지. 오는 7월까지 두 달간 더 구직해봐도 실직 상태가 지속한다면 포기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오겠다. 7월까지라, 시한을 정한 걸 잘한 짓인지. 취직은 내가 어쩔 수 없는데 시한이란 걸 내가 정할 수 있는지. 취업에 대한 어떤 계획이 있는지, 이 기간에 어떤 계획을 신뢰하고 기다릴 수 있는지 여전히 의뭉스럽다. 여하튼 오는 어버이날 지나고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다. 실직자에게 연휴랄 건 없지만 5월의 긴 연휴가 끝나간다.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있으니 핸드폰에 전화 한 통 오지 않아도 마음이 든든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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