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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un 22. 2020

사색78. 왜 미뤄졌을까

5월 9일(금)

오전 10시 J회사 사장 면접 보기로 했는데, 아침 일찍 전화가 온다. 사장 일정 변동으로 면접을 다음 주로 미루잔다. 어제는 기다리지 않게 해서 고맙던데 결국 기다리게 됐다. 이제 거의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미뤄진다. 좋게 생각해서 미뤄진 시간 잘 기다리면서 즐겁게 보내야겠다. 다시 취업하면 이젠 이렇게 노는 것도 끝나는 것 아닌가. 놀랍게도 벌써 김칫국 마시고 있다.      


이리저리 계산해본 결과, 이번 재취업은 거의 다 된 것 같지만, 사실 '결정'은 내가 계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몇 번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선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겸손하자 다짐했는데 이쯔음 오니 순간순간 본능적으로 그 영역을 침범한다. 애간장 태우며 전화 울리기만 기다리며 보내던 하루들이었는데, 이젠 다된 밥이라며 여유로워지다니, 잠시 미뤄진 이 시간을 여유롭다고만 보면 좋긴 하다.      


여유롭다니, 이 여유를 한번 따져보니,

하나, 취업이란 영역에도 신앙심으로, 심지어 이번 면접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며 실직 기간을 견딜 수 있다는 신앙심 때문에.

둘, 사장 면접까지 왔다. 사장 면접은 실무진 면접을 확인하는 차원, 재취업이 거의 다 됐다는 예상 때문에. 

셋, 이제 거의 다 됐으니 사장 면접 미뤄진 기간 동안 다시 직장 생활하는데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기 위한 시간이 생겨.


며칠 주어진 시간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이 폭발한다. 신적 계획을 믿고 기다린다는 건 신앙인이 평생 가져야 할 목표이지 않을까. 혹시 이번에 불합격하면 다시 실직 기간을 견딜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만은 정말 피하고 싶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요셉은 이집트 왕 파라오의 악몽을 해석해내고, 왕을 대신한 총리가 된다. 이집트의 총리직을 수행하는데, 자신을 노예로 판 형제들이 자기에게 식량을 얻으러 알현한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다시 만난다. 이제 요셉은 배다른 막내 동생이 아니라 당시 최강대국 이집트의 총리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힘으로 복수할 기회, 형제들을 당면한 그때, 최적의 복수를 수행할 순간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기회를 잡은 요셉의 대응을 살펴본다. 찰스 스완돌 목사는 "요셉은 어떠한 쓰디쓴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의 마음은 (그 대면을)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고, 즐겁기까지 했다. 불타는 복수의 마음, 그것을 하나님께 잊기로 도움을 구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의 반응,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당신의 남은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한다. 복수의 순간에 복수하지 말라고, 복수를 포기하면 오히려 관계가 창조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복수 리스트가 있다. 실직 당하고 며칠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간절히 원했던 게 재취업 보다 영화 <데스노트>처럼 어떤 이의 이름을 노트에 쓰면 그 사람이 죽는 일이었다. 리스트를 써봤다. 갑작스런 내 해고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 곧바로 두 명의 이름이 떠오른다. 황당하게 하루 아침에 날 해고한 사장과 내 해고를 막지 못한 차동수 부장. 사장에 대한 분노가 차 부장까지 번진 것이다. 차 부장은 회식 때마다 의리, 의리 외치면서, 본인은 가슴에 늘 사표를 품고 있다, 우리 조직을 위해 사표를 낼 수 있다고, 너희도 조직을 위해 사표 쓸 일을 준비하며 가슴에 늘 사표를 품고 다니라 하셨다. 그럼 내가 말도 안 되게 목 날아갈 때 그 사표를 자기도 써야지, 그게 자기가 말하는 의리지. 예전부터 차 부장이 ‘나 믿냐?’, ‘나 믿지?’ 하고 뭔지 모를 믿음을 강요할 때 이 바닥에서 그런 소리만큼 무용한 게 없다고, 피고용인들끼리 형, 동생 하며 으싸으싸 하는 것만큼 나중에 서로 마음 상할 일 없다고 그러시지 마시라고 했다. 싸가지 없는 내 반응에 그래도 차 부장은 나는 널 위해 사표쓴다 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차 부장이 나 믿지 이런 소리 안 하는 사람이었다면 데스노트에 그 이름을 올릴 생각도 안했을 텐데.


데스노트를 상상하다가 복수하고 싶은 사람들을 데스노트에 이름 써서 바로 죽이는 것보다, 그 사람들 살려두고 자식들, 아내, 가족 등 주변을 차근차근 먼저 정리하는 식으로 괴롭히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그놈들을 죽이지도 않고, 장수하도록 돌봐주는 건 어떨지. 순간 흐뭇하면서도, 나의 악마성을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데스노트가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노트가 내 손에 들어온다면, 복수에 대해선 나는 나를 절대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데스노트 같이 영화 같은 복수 말고, 진짜 할 수 있는 복수의 수준은 무엇일까. 다시 복귀한다면, 그 필드는 거기가 거기니, 날 해고한 사장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 인사하지 말고 쌩까볼까. 사장이 전직 직원까지 모이는 리유니언 자리를 만들어서 혹시 내가 초대받으면, 초대 할리 없겠지만, 아니 초대받지 않아도 억지로 거기 가서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어볼까. 혹시, 술 한잔씩 돌다가 취기가 오르면 사장에게 그렇게 당신이 원하던, 나까지 짤라가며 원하던 성과는 어디 있냐? 나 짤라 가면서 사장 당신이 하고 자 한 그 조직은, 지금 어디 있냐. 지금 같이 일하는 놈들이 나보다 잘하냐? 하고 술잔을 벽에 집어던지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일 텐데. 술잔 던질 수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복수의 수준, 이걸 복수라 할 수 있나. 군대 있을 때 선임 군화에 침 뱉어놓는 것 같다. 이런 걸 복수라면, 복수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 대한 복수가 내 인생에서 정말 필요하나. 구약성경 창세기의 요셉을 보면, 총리라는 막강한 권력자가 됐으면 그동안 억울했던 일 하나하나 꺼내서 당사자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을까. 심지어 자신을 총리 자리까지 올라가게 한 사건의 시초인 왕의 술 관리인까지 찾아서 선생님, 제가 선생님께 조언해서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가셨잖아요. 그때 저 좀 살펴봐달라고 했었는데, 그걸 2년 동안 까먹고 계셔서 제가 감옥에서 2년이나 더 굴렀잖아요 하고 2년만큼의 복수를 해주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셉은 ‘내 억울한 일은 다 잊었소’하며, 자식 이름까지 다 잊었네 하는 뜻으로 작명하다니. 이건 사람인가? 선에 대한 인간성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례 같다. 성     


다시 취직을 해서 일터로 돌아간다면 ‘복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을 테다. 물론, 막상 그 인간들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어찌될지. 분노의 감정을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통제할 수 있을까. 하하하, 웃으면서 아이고 다시 잘 부탁합니다 할까. 기회가 있다면 꼭 복수 할 테다 했는데, 요셉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보며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복수에서 자유롭고 싶다. 어~ 저 새끼 나한테 뭔 짓(복수)을 하긴 할 텐데 근데 반응이 없네 왜 저러지? 왜 실실 웃고, 복수 하지 않지 한다면 오히려 상대가 불안해지기만 하는 복수 아닌 복수. 그렇게 복수하지 않으면 관계가 오히려 창조적으로 재탄생할 듯하다. 그게 복수 아닌 복수인가. 그런데 그건 용서와는 다른 걸 텐데.         


예정대로라면 오늘 사장 면접을 보고 실직 기간이 끝났을 것이다. 만약 재취업했다면, 지금 기록하던 실직으로부터의 사색은 오늘로 끝난다. 이걸 사색이라 한다면, 인류의 사색 수준을 낮춰버린 것이지만 실직으로 부터의 사색이 끝나고 새로운 사색의 장이 열린다. 그런데, 거의 다 왔는데, 왜 사장 면접이 미뤄졌을까. 혹시, 이번 채용 인사가 취소되거나, 사장이 실무진 면접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서 엎어버린 거 아닐까. 갑자기 부정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한다. 여러 긍정적인 단서를 앞에 두고도, 부정적 단서는 하나만 나타나도 하루를 불안해 하며 보낼 수 있다. 또, 앞으로 하루들을 불안감 속에 빠져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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