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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13. 2020

사색82. 돌돌 말은 이불

5월 13일(화)

지난주 금요일에 사장 면접이 갑작스레 연기되면서 곧 일정 잡아 전화 주겠다더니 나흘째 무소식이다. 따져보면 토, 일요일은 휴무니 월요일 하루 지난 거다. 기억을 더듬어 면접이 지연됐다는 통화를 기억해보면      

“사장님, 긴급한 일정 때문에 내일 면접을 취소하고 차후에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차후에 연락 준다고 했는데, 나흘이나 걸리는 건, 사장 면접을 다시 잡는 일절이 이렇게 시간 걸릴 일인가. 


연기하면서 했던 통화 중 차후인지, 추후인지 정확하진 않은 시점, 같이 면접 봤던 면접관 중 한 명 목소린데, 면접 지연이라는 소식을 전달하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듯했던 것 같다. 묶인 실타래가 부정적인 단서로 둘둘 풀리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면접 취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나흘이나 지나도 없는 연락. 면접이 지연된 게 취업 직전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가 된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 긍정적인 다짐으로 시간을 채우기보다 부정적인 단서들로 내 기분은 불안감으로 포획당하고 만다. 채용이 취소된 건가.     

 

힘이 빠져 침대에 누워 겨우 성경을 펼친다. 구약성경 창세기 중 요셉 이야기를 살펴본다. 아니, 요셉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은데.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자기를 노예로 팔아넘긴 형제들이 곡식을 얻으러 이집트를 방문하고, 다시 요셉을 만난다. 자기가 요셉인 줄도 모르고 만나러 온 형제들을 보고 요셉은 형제 중 한 명을 "왜 이집트로 왔냐"며 첩자 혐의로 체포한다. 그리고 나머지 형제에게 고향 집으로 돌아가 당신들이 첩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 형제는 죽는다며. 이건 복수인가, 화해인가. 곡식을 얻으러 간 자식들이 곡식은커녕 형제까지 잃고 돌아오자 아버지 야곱은 짜증을 낸다. 막내 자식(요셉)을 잃어버리고, 또 자식을 잃어버릴까 불안해하며 자식들을 힐난한다. 동생을 두 번이나 지키지 못한 니들이 그러면 그렇지. 짜증스러운 반응, 사람인지라 그런 상황에선 짜증 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참 자식들에게 짜증 내다 보니 야곱 자신은 구약의 시조, 아브라함의 대를 이은 신앙인 아니었던가. 방편을 찾기 위해 신앙인답게 신께 기도하기 시작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기도한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취업이 거의 다 된 줄 알았는데, 채용이 취소되는 것 같아 짜증 나고, 불안해하고 있다. 신께 기도할 생각은 없나. 나도 신앙인이 아닌가. 신앙인 차원의 반응은 나오지 않는 건가.     


새벽에 눈을 뜬다. 구약성경에서 천사와 씨름한 젊은 날의 야곱처럼, 이 상황을 놓고 천사든, 신이든 뭐든 씨름해보자. 두꺼운 겨울 이불을 돌돌 말아서 허리띠를 묶어 상대를 만든다. 그 이불을 부여잡고 침대 위에서 씨름판을 벌린다. 잡치기, 안다리, 바깥다리, 이 새벽에 한참을 씨름한다. 눈물이 흐른다. 천사의 허리를 잡고 절대 놓지 않았다는 야곱처럼 나도 이걸 놓지 않겠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재취업을 이룰, 이뤄줄 때까지, 이번 면접으로 취업이 될 때까지 이 씨름을 끝내지 않겠다고 돌돌 말린 이불을 부여잡고 씨름하다, 결국 엉엉 운다.     

 

“네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당장 내일 전화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면접을 보든지, 아님 채용이 취소됐다든지, 여하튼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지금은 내 인생에 신의 계획, 간섭, 그걸 신뢰한다는 신앙인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게 믿음인데 사실 지금은 도저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된 줄 알았는데 무소식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어 견딜 수가 없다. 내일 당장 어떤 결과이든 휴대폰이 울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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