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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 Jan 31. 2019

따뜻했던 시절의 기억

-  Memoirs of an Imaginary Friend


어릴 때 난 곧잘 혼자 중얼거리며 걷곤 했다. 머릿속으로 어떤 상황을 상상해 그에 맞춰서 대사하듯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수줍은 데이트를 상상하기도 하고 싸웠던 친구에게 미처 못다한 말을 마구 풀어놓기도 했다. 학교에 오가는 10분 남짓한 그 길은  내 상상속 놀이터였다. 


내 자신과 대화하고 싸우고 위로하고 화해하고 격려하며 그 길을 걸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그 시간은 이내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다. 마치 이 책의 '상상친구'처럼.






 이 책은 꼬맹이시절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상상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밤이 무서울때,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외로울 때, 방문 너머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들릴 때 아이들은 자신만의 상상친구를 불러낸다. 이 친구는 언제나 내편이다. 언제나 나에게 귀기울여주고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이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친구는 아이의 눈에만 보인다. 아이 외에는 누구도 이 친구를 볼 수도 만질수도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이들에게 "상상친구"라는 이름을 붙이며 유년기 한때 아이가 만들어낸 가상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시점이 되면 산타할아버지가 가짜라는 걸 알게 되듯이 상상친구도 자연히 사라지게 될 거라 생각한다.


어른들 생각이 아주 틀린건 아니다. 실제로 이 친구들이 사라지는 날이 찾아오니까.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다른 또래 친구들이 생기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상상친구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친구를 찾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그러다 존재 자체를 잊게 된다. 그 순간 상상친구는 이 땅에서 사라진다.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친구는 아이의 기억속에서 잊혀진다.


맥스에게도 이런 상상친구 '부도'가 있다. 그런데 부도는 맥스가 유치원에 가고 심지어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자폐를 앓고 있는 맥스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킨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해가 안되고 화가 나는 곳이지만 상상친구 '부도'는   언제나 내  마음을 알아준다. 둘이 함께라면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다.





읽는 동안 영화 토이스토리가 떠올랐다. 영화를 보며 장난감 친구의 뜨거운 우정에 몇번이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뜨겁게 사랑했지만 미련없이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럴까. 자기를 잊든 말든 끝까지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우디를 보며 급기야 펑펑 울기도 했다. 내 어린시절 장난감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어서. 안고자던 강아지 인형,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기며 함께 수다 떨었던 바비인형, 계란 후라이를 굽고 호로록 커피를 마셨던 소꿉놀이 장남감까지. 어린 꼬맹이 곁을 지켜준 이 친구들이 너무 그립고 보고싶었다.


그러나 사실 눈물이 난 건 그리움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친구가 난 지금 너무나 필요했다. 내 마음을 홀랑 뒤집어 보여줘도 괜찮은 친구. 내가 어떤 사고를 쳤든, 진짜 말도 안되게 유치한 행동을 했든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그런 친구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를 만드는 것도 친구와 가까워지는 것도 점점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괜시리 자존심만 높아져서 부족한 모습은 감추기에 급급하고 지나친 배려로 도통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 주변에 사람들은 많지만 그럴수록 더 외로워진다. 





이 책의 저자도 나만큼이나 외로웠던것 같다. 채워지지 못한 기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어린시절 언제나 내편이었던 상상친구를 떠오르게 하지 않았을까? 이토록 의리있고 이렇게나 절절한 우정이야기를 그리며 작가의 마음도 따뜻해졌겠지. 읽고 난 지금 내마음 한구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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