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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rain May 22. 2024

기억할게

 너의 아픔, 너의 얘기, 너의 마음...

 지역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주관한 '청소년 우울, 자해에 대한 이해와 상담' 연수를 들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커터 칼로 손목부위를 긋는 학생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다 토를 하거나, 벽을 주먹으로 치는 자해적인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상담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수를 참석했다. 


 자해의 원인, 상담을 할 때 해서는 안 되는 것, 약물처방 등 다양한 소주제로 연수가 진행되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기억할게'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충조평판'의 언어구사이다. 자해를 하는 학생을 만났을 때 충고, 조언, 평가, 판단 대신에 아래 예시문처럼 그 감정을 읽어주는 것, 그 존재를 인정(validation)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네가 공허한 존재라는 끔찍한 느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자해를 했다는 거구나. 선생님이 기억할게"

 오랜 기간 청소년을 만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강연자의 그 마지막 네 글자가 마음에 박혔다. 

'기억할게'


 병원을 찾아온 청소년에게 무심한 듯 던진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이 수용되는 경험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받는 느낌을 갖게 될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나가는 시간이다. 내일을 맞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카레를 요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재료를 손질하고, 카레의 맛을 보고 냄비 뚜껑을 닫고 가스불을 잠그고, 출근을 준비하기 위해 머리를 감고 말리며 출근한 아내의 모습을, 선생님들과 다과를 나누며 바라본 창 밖의 푸릇푸릇한 5월의 나뭇잎들을, 퇴근 후 교제한 또래 집사님들의 생생한 감사의 고백을, 식탁 의자를 활용해 맨몸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는 막내의 샤워 소리를, 노트북 작동방법을 묻는 아빠에게 전화로 친절하고도 천천히 설명해 준 군복무 중인 큰 아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내일이 되면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2024년 5월 22일이 감사했다고 기억하려 한다. 

"감사한 오늘이었음을 기억할게"


#라이트라이팅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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