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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rain Dec 08. 2024

대학연극

  큰 아들의 생일 전날이어서 온 가족이 멕시칸 음식으로 외식을 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사진도 찍었다. 기말고사를 앞둔 막내는 공부하러 가고, 아내와 나는 대학연극에서 조연출로 참여하고 있는 큰 아들을 태우고  이동했다. 올림픽 도로는 꽉 막히고, 네비의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조연출을 맡은 아들이 투덜거릴 만도 했는데 아빠와 다르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늦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늦으면 어쩌지?" 걱정과 달리 공연 시작 전에 도착했다. "휴~"  

 아들의 넉넉함을 배우고 싶다. 마음이 급하다고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닌데 말이다. 

 

  공연장은 2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극동아리실. 보조의자까지 좌석이 꽉 찼다. 아들의 손이 갔을 무대의 막과 소품들. 21살의 아들의 땀내가 전해지는 듯했다. 조명이 꺼지자. 발성이 확 트인 여학생의 빠른 대사들로 연극이 시작되었다. 배우의 모든 몸짓과 땀방울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직장에서 잘리고 실의에 빠진 처녀 마르따, 20년 전 집을 나간 행실이 나쁜 손자를 기다리는 아내를 둔 할아버지 발보아. 이 두 명은 영혼이 다친 사람을 치유해 주는 '영혼의 집에'에 들어온다. 발보아의 아내는 손자가 집을 나간 후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다. 발보아는 아내를 위해 손자인 척하고 건축가가 되고 결혼도 했다는 거짓 편지를 쓴다. 편지를 받으며 생기를 되찾은 아내, 에우헤니아. 영혼의 집의 소장은 발보아의 부탁으로 거짓으로 손자역할을 하고, 마르따는 그 아내 역할을 한다. 죽은 줄 알았던 손자, 마우리시오가 돌아오고, 그들의 거짓이 탄로 날 위기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긴장감 있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극의 마지막, 에우헤니아는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끝까지 그들을 손자와 손자며느리로 대하며 술을 담그는 법을 알려주며 연극은 막을 내린다.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을 정도의 호흡이 긴 연극. 첫 공연에 긴장해서 힘이 잔뜩 들어간 배우도 있었고, 오랜 외국생활로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배우도 있었지만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생 배우들의 열정은 모든 어리숙함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이토록 젊은 그들의 오늘은 뜨거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리라.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시가 떠오른다. '나는 오늘 그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자문한다. 


 연극을 보고 온 다음 날인 아들의 생일날. 아내는 연극에서 나왔던 벌꿀 가득한 호두파이를 만들었다. 자신의 생일날, 극장 앞에서 자리를 안내했던 아들이 밤늦게 귀가했다. 아내는 곤히 잠들었고, 막내와 내가 숫자 초 2와 1에 불을 붙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생일 축하합니다" 


 이제 아들의 대학연극은 막을 내렸다. 아름답던 청춘의 기록으로 남겨지길,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허전함이 길지 않기를 바라본다. 나의 2024년도 서서히 막을 내린다. 다음 막이 올려지기까지 기억되는 성실한 엔딩을 만들어보련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대학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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