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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Mar 06. 2024

“늘”

 익숙한 말이지만, 문득 달리 보이는 말이 있다. 어렵거나 전문적인 용어가 아니어서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그런 식으로 하지는 못하는 말. 걷다가 주변이 조용해지고 어떤 소리만 귀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 말을 들으려고 했나 보다. 


 “수고하셨습니다.” 길거리에서 한 여성이 같이 일하는 남성에게 말했다. 남자는 자신의 트럭에서 마트로 짐을 옮기는 것 같았고, 여자는 마지막 물건을 받아 제자리에 놓던 참이었다. 둘은 종종 같은 일을 하며 보는 것 같았다. 마침 일이 다 끝나서 여자가 남자에게 고생했다며 인사를 한 것이다. 

 “늘 감사합니다” 여자의 말을 듣고 남자가 답했다. 자주 듣고 자주 하는 말인데도 뭔가 낯설게 들렸다. 그들을 지나치고 계속 걸으면서 생각해 보다가, 난 고맙다는 말에 ‘늘’을 붙였던 적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늘’을 ‘감사합니다’ 앞에 붙일 수 있는 마음은 어떤 건지 상상해 봤다. 남자는 그 여자에게 매번 감사함을 느꼈고 그렇게 답했을 거다. 하지만 그 남자가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은 그 말을 했을 때보다 훨씬 많지 않았을까. 같이 일하는 중간에도 자신을 배려하는 그녀의 작은 행동과 따스함이 묻어나오는 말에서 순간순간 고마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일하는 중에 “고맙습니다”를 중얼거릴 순 없으니 대신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함께해서 무난하게 일할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 것일까. 뭐가 됐든 분명한 건 그는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로 그가 느낀 감사함의 마음을 표현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꼈을 거다. 넘치는 고마움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한 글자를 덧붙여 어제와 또 앞으로의 고마울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큰 나머지 미리 당겨서 표현한 게 아닐까.


 찰나의 시간이라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실제로 얼굴까지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고맙다는 말에 ‘늘’을 붙일 수 있는 그가 세상을 향해 보이는 미소는 눈에 선한 것 같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이다. ‘늘’을 묵음으로 사용하는 다른 사람을 보게 되었다. 왠지 미소가 선한 그 남자를 생각하다가 버스에 탄 다음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시고는 대뜸 앞쪽에 탄 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짐을 들어달라고 한 거다. 그 남자도 흔쾌히 짐을 올려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버스 기사님이 그 남자에게 뭐라고 말했는데 주위가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그 남학생은 내렸고, 할머니는 그 남학생이 가는 걸 조금 초조한 눈빛으로 지켜보고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 그래도 할머니가 내리실 때 내려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할머니와 눈빛 교환을 하면서 무언의 약속까지 하게 됐다. 할머니는 내릴 때가 되자 “학생 이것 좀 내려줘요” 하며 시원시원하게 말씀하셨다. 기다리고 있던 나는 짐을 내려 드리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버스 기사님이 내게 말했다. 

 좀 전에 버스 기사님이 할머니 짐을 올려줬던 남자에게 했던 말, 그때는 듣지 못하고 흩어졌던 말이 다시 조합되어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그 말이었다. 정작 할머니는 짐을 올려줬던 남자나 내게 고맙다는 말씀하진 않았다. 짐이 꽤 무거웠기도 하겠고 여든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버스까지 타고 가서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한가득 짐을 싣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 자체가 정신없고 힘든 여정이었을 거다. 

 그보다는 기사님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작은 배려를 보고서는 고마움을 느끼고 또 그걸 전할 수 있는 것에서 놀라움을 느꼈다. 마치 그 할머니가 가족인 것처럼. 


 기사님의 고마움에도 ‘늘’이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타인이 타인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고맙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긴 어떤 무한루프가 있어서 그 위에 놓인 고마움이라는 공이 못 벗어나고 늘 굴러다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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