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말이지만, 문득 달리 보이는 말이 있다. 어렵거나 전문적인 용어가 아니어서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그런 식으로 하지는 못하는 말. 걷다가 주변이 조용해지고 어떤 소리만 귀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 말을 들으려고 했나 보다.
“수고하셨습니다.” 길거리에서 한 여성이 같이 일하는 남성에게 말했다. 남자는 자신의 트럭에서 마트로 짐을 옮기는 것 같았고, 여자는 마지막 물건을 받아 제자리에 놓던 참이었다. 둘은 종종 같은 일을 하며 보는 것 같았다. 마침 일이 다 끝나서 여자가 남자에게 고생했다며 인사를 한 것이다.
“늘 감사합니다” 여자의 말을 듣고 남자가 답했다. 자주 듣고 자주 하는 말인데도 뭔가 낯설게 들렸다. 그들을 지나치고 계속 걸으면서 생각해 보다가, 난 고맙다는 말에 ‘늘’을 붙였던 적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늘’을 ‘감사합니다’ 앞에 붙일 수 있는 마음은 어떤 건지 상상해 봤다. 남자는 그 여자에게 매번 감사함을 느꼈고 그렇게 답했을 거다. 하지만 그 남자가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은 그 말을 했을 때보다 훨씬 많지 않았을까. 같이 일하는 중간에도 자신을 배려하는 그녀의 작은 행동과 따스함이 묻어나오는 말에서 순간순간 고마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일하는 중에 “고맙습니다”를 중얼거릴 순 없으니 대신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함께해서 무난하게 일할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 것일까. 뭐가 됐든 분명한 건 그는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로 그가 느낀 감사함의 마음을 표현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꼈을 거다. 넘치는 고마움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한 글자를 덧붙여 어제와 또 앞으로의 고마울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큰 나머지 미리 당겨서 표현한 게 아닐까.
찰나의 시간이라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실제로 얼굴까지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고맙다는 말에 ‘늘’을 붙일 수 있는 그가 세상을 향해 보이는 미소는 눈에 선한 것 같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이다. ‘늘’을 묵음으로 사용하는 다른 사람을 보게 되었다. 왠지 미소가 선한 그 남자를 생각하다가 버스에 탄 다음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시고는 대뜸 앞쪽에 탄 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짐을 들어달라고 한 거다. 그 남자도 흔쾌히 짐을 올려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버스 기사님이 그 남자에게 뭐라고 말했는데 주위가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그 남학생은 내렸고, 할머니는 그 남학생이 가는 걸 조금 초조한 눈빛으로 지켜보고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 그래도 할머니가 내리실 때 내려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할머니와 눈빛 교환을 하면서 무언의 약속까지 하게 됐다. 할머니는 내릴 때가 되자 “학생 이것 좀 내려줘요” 하며 시원시원하게 말씀하셨다. 기다리고 있던 나는 짐을 내려 드리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버스 기사님이 내게 말했다.
좀 전에 버스 기사님이 할머니 짐을 올려줬던 남자에게 했던 말, 그때는 듣지 못하고 흩어졌던 말이 다시 조합되어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그 말이었다. 정작 할머니는 짐을 올려줬던 남자나 내게 고맙다는 말씀하진 않았다. 짐이 꽤 무거웠기도 하겠고 여든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버스까지 타고 가서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한가득 짐을 싣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 자체가 정신없고 힘든 여정이었을 거다.
그보다는 기사님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작은 배려를 보고서는 고마움을 느끼고 또 그걸 전할 수 있는 것에서 놀라움을 느꼈다. 마치 그 할머니가 가족인 것처럼.
기사님의 고마움에도 ‘늘’이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타인이 타인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고맙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긴 어떤 무한루프가 있어서 그 위에 놓인 고마움이라는 공이 못 벗어나고 늘 굴러다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