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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Mar 10. 2024

“외국인이더라고요.”

 “갑자기 반말을 하네요”

옆에 있던 회사 동료가 중고 거래 대화창을 보여주며 말했다. 

동료는 얼마 전 새로 나온 아이폰을 사고선 그 전에 쓰던 휴대 전화를 팔려고 당근에 내놨는데, 구매하려는 사람과 나눈 말이었다.           


 “살 수 있나요?”

 비교적 평범하게 구매하려는 의사를 표현한 구매자는 나중에 시간과 장소를 정할 때가 오자 

“용산역”, “알았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반말로 답을 했다. 

 예의 없는 걸 넘어서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처음부터도 아니고 중간에 그렇게 말투가 바뀐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동료도 의아해했지만, 파는 게 우선이라 나가보고 후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회사 동료는 의문이 풀렸다는 얼굴로 내막을 알려줬다.


“외국인이더라고요.”     

 저녁에 구매자와 만났는데,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한국말이 약간 서툴러 보였지만, 거래는 별 일없이 잘 마쳤단다.      

 다음날 집 근처에서 키워드로 걸어둔 상품권 알람이 떴다. 구매하려고, 채팅을 걸었다. 

“거래 가능할까요?”     


 “예약중” 

 수많은 거래를 해봤지만, 첫 마디로 이렇게 짧고 간결한 답변은 처음이었다.  


 전날 외국인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갑자기 웃기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다시 프로필 사진을 보니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그러고는 예약 중이던 거래를 잘 마쳤는지, 거래 완료로 바뀌고는 따로 답이 없었다. 

 어쩌면 외국인이 아니어도, 교포이거나 다른 이유로 한국말이 서툴거나, 단순히 ‘없음’, ‘예약중’ 처럼 간결한 말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 기준에선 굳이 따지면 예의가 없는 편에 속했다. 

 그런데도 웃음이 난건, 엄밀히 말하면 그도 내 생각이 기준인 내가 보는 세상에선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많은 경우 그런 사실을 모르고 웃어넘길 줄 모르고 속으로 분한 마음을 삭이고, 그 마음이 터져 나와 화를 낸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내가 보는 기준으로 이뤄진 세상에 그들을 가두고 그들과 내 마음을 학대하는 건 나였다. 

 투박한 것에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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