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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pr 08. 2024

오니기리의 고집, 어우러짐 받아들임 (카모메 식당)

영화 속 ‘음식’ 돋보기

 영화는 고집이 없다. 뚜렷한 줄거리나 인물 간의 갈등 없이 흘러가는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 자체에 대해 말한다. ‘어우러짐’이다.      


 사치에는 왜 핀란드에서 식당을 하게 됐을까. 미도리는 왜 아무 곳이나 집어서 떠나와야만 했을까. 영화는 끝까지 이들의 사연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이 단지 그곳에 머물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엇을 먹고,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것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이처럼 어떤 사건의 개연성이나 갈등, 설명에 대한 고집은 없다. 하지만 오니기리를 주메뉴로 고집하는 사치에를 통해 영화가 고집하는 메시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는 삼각형 모양의 주먹밥에 김 한 장을 붙여놓은 모양이다. 그 김은 주먹밥을 온전히 감싸지 못한다. 한국의 김밥 혹은 삼각김밥이 밥을 모두 감싸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오니기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깥에서 보이는 김이라고 하기엔, 김 부분이 너무 적다. 부피가 크고 양이 많은 밥이라고 하기엔, 안쪽에 감싸여 있다. 주인공은 김도 아니고 밥도 아니다. 그들이 이루는 ‘조화’다. 영화가 인물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지 않듯, 혹은 특정 인물을 조명하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반응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은 김이나 밥이라는 주인공을 가르기보다 그들의 어우러짐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영화가 인물과 배경을 담는 프레임도 오니기리를 닮았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얼굴이나 표정이 클로즈업 되어 나타나기보다, 풀샷으로 인물들을 담는다. 또 그 풀샷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화각이 좁기 때문이다. 배경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인물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애매한 샷들이 이어지고, 그런 장면들이 모인 시퀀스는 시각적으로 지루하고 밋밋하게 느껴진다. 마치 오니기리의 김처럼 그 배경에 있는 인물을 담는 듯하면서도 담지 못한다. 그렇다고 결코 인물들이 부각되는 샷은 또 아니고, 배경이 강조되지도 않는다. 마치 김이 밥을 감싸는 건지, 삐죽 튀어나온 밥이 김을 이겨낸 건지 모르겠는 독특한 오니기리의 형상처럼.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오니기리는 맛있다” 사치에는 아버지가 오니기리에 대해 자신에게 해준 말을 전한다. 영화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난 오니기리는 ‘삶’이다. 인물과 그를 둘러싼 상황이 어우러진 삶.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오니기리를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은 그 자신에게 던져진 삶을 받아들여 잘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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