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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Oct 08. 2023

불쌍한 그레고르 잠자씨에게.

프란츠 카프카 - 변신


잠에서 깨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있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던 외판원 그레고르 잠자에게 떨어진 날벼락이다.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어버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들에 대해서 어찌나 자세하게 묘사했던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그야말로 ‘벌레 보듯 한 시선’을 받게된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불쌍하기 이전에 징그럽게 느껴졌다. 그것이 갑자기 변해버린 가족들의 태도에 대해서 마냥 못마땅해하지 마라는 작가의 의도였다면, 정말로 성공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요상하게도 내 군시절이 떠올랐더랬다. 때는 아마 상병 쯤, 그러니까 선임들과 후임들 사이에 끼어 온갖 바가지를 긁히고 있었을 때였다 - 군필이라면 이렇게만 적어도 내 심정을 이해해 주리라 - 당시의 나는 잠자리에 들 때면 항상 불안해했었는데, 암전되어서 당장 내 눈 앞에 펼친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누워있자면, 마치 이미 시체가 되어 영안실 서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소리만 들려오는 분대원들의 조용한 호흡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혈청 체취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피실험체 좀비 신세가 된 것 같아 처량하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라, 콘크리트 박스안에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서는 새근거리고 있다. 그것도 똑같은 옷을 입고! 이런저런 정신 나간 것 같은 상상을 하고 있자면, 아주 작게 들려오던 내 심장소리가 점차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동 소리에 고막이 울려 주변의 숨소리까지 들리지 않게 되는 단계를 지나고 나면, 마치 내 심장 박동 때문에 침대가 떨리고 있는 착각까지 생길 정도였다.


처음부터는 이러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자면, 당시의 내가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폐해진 곳에 안 좋은 생각이 깃든다고, 나는 매일 밤이면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하는 악마와 ‘어떻게든 일어날 수만 있다면’의 천사의 싸움장으로 내 머릿속을 빌려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참 웃긴 것은, 대부분의 날들에 악마가 천사를 때려눕히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채 잠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면 멀쩡하게 깨어났다는 사실이다.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 하고 혼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천장 타일을 타가닥 거리며 돌아다니던 쥐 한 마리와 나, 서로에게 절대로 치우치지 않는 하루씩을 선사할 뿐. 이 사실을 당시의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깨달았다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그렇게 보자면 당시의 내가 ‘차라리 벌레로 깨어났으면’과 같은 끔찍한 소원은 빌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레고르 잠자도 이를 느끼고 스스로 눈을 감았듯, 살아있는 것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그토록 절망스럽게 체감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또한 어떠한 소원을 빌지 않았음에도 벌레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그레고르 잠자씨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며 마무리한다.


생각해 봤는데, 내가 유독 소설의 묘사에서 혐오감을 느꼈던 것은 내가 ‘벌레’라는 단어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바퀴벌레’를 연상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 같다. 다음에 읽게 될 때에는 통통하고 귀여운 풍뎅이를 상상하며 책을 펼쳐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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