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보세요, 눈과 입이 즐거워요
이미 1부에서 소개했듯이 카페쇼는 한 번쯤은 꼭 가볼 만한 정말 매력적인 박람회입니다. 저는 방문자 입장에서 보다 열심히 탐구하고자 다양한 카페를 들러 여러 커피를 맛보려 노력했고, 저와 같은 목표로 참여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여 글을 남깁니다. 앞선 1부와 다르게 본 글에선 방문했던 카페 몇 곳을 소개하며 좋은 점과 아쉬운 점 그리고 추천할만한 곳을 뽑아 소개하려 합니다. 다만 이것들은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느낀 주관적인 견해이고, 비난만을 목적으로 평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상기시키며 읽는 중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커피 맛에 대한 직관적인 평가보다는 복합적인 커피 경험을 우선으로 설명하고, 아쉬운 점을 소개하는 곳들도 커피가 맛없었던 것과는 별개라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홀 COFFEE ALLEY에 입장하고 나서는 사람이 아예 없는 곳도 즐비했고 반대로 벌써부터 긴 줄이 형성되고 있는 곳이 있어서, 곧바로 어딜 가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해진 목적지가 없었기에 당시에는 약간 당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사람들의 동태를 파악하고자 한 바퀴 정도 돌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통로를 서성이다 코너를 돌던 중, 한 카페의 안내자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커피 시음 한 번 도와드릴까요?"
그분의 상냥한 말투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첫 방문하는 카페는 그래도 좀 유명한 곳으로 가야지'라는 경계심을 단숨에 무너뜨렸습니다.
뻘다방
제가 처음 방문한 곳은 인천에 매장을 두고 있는 뻘다방이었는데요, 내부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제가 이 가게의 첫 손님인 듯했습니다. 우선 외관상으로 보았을 때는 반짝한 네온사인과 휴양지를 떠올리게 하는 라탄들이 왠지 커피보다는 음료 또는 디저트에 주력한 곳이라는 편견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아이고...'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이곳 덕분에 좋은 출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초반이라 메모를 바로 하지 않아서 커피 라인업이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블렌딩 두 잔과 싱글 오리진 두 잔을 시음했던 것 같습니다. 원두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친절한 응대가 더해져 커피 경험이 비교적 좋았던 곳이었고, 이어지는 코스로 게이샤(아마도...)와 깔라만시로 만든 샤베트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커피 관련 쇼라는 공간에서 커피를 음료가 아닌 고체 형식으로도 소개했다는 점과, 깔라만시의 새콤달콤한 맛이 마치 산미가 강렬한 커피를 마신 후 느껴지는 단맛을 연상시켜 좋았습니다. 하지만 게이샤의 은은하며 복합적인 풍미를 즐기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먼저 말을 걸어주신 덕에 산뜻한 시작을 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남았던 곳 중 하나입니다.
한번 시음을 해보고 나니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고 너무 고민하며 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많은 경험을 해보고 가자는 다짐으로 곧장 주변에 있는 카페들을 둘러봤습니다. 분명 가보진 못했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곳이었는데 대기줄이 길지 않아 바로 합류했습니다. 커피 라인업은 네 가지였는데 전부 블렌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앞에 계신 분은 싱글 원두를 기대했는데 블렌딩 밖에 선택지가 없어서 조금 아쉽다는 말을 전했는데, 저는 '블렌딩이야말로 이런 곳에서 경험해야 할 첫 번째 커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특별한 이곳 카페쇼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게이샤 커피 또는 구하기 어려운 커피들을 맛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각 로스터리만의 개성으로 볶아낸 이러한 싱글 원두들은 결국 생두 자체가 가진 캐릭터가 맛을 결정하기에, 어쩌면 카페마다의 개성이 겹치거나 방문자에게 지루한 커피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카페쇼에서 '우리 카페의 개성은 무엇이고 우리만의 특별한 메시지는 이러한 것이야'라는 걸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선 블렌딩 커피를 함께 소개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Milestone Coffee Roasters
다시 본 내용으로 돌아와 이번에 방문한 곳은 마일스톤 커피입니다. 이곳 또한 정말 좋은 커피 경험을 한 곳입니다. 특히 사진 중간에 서서 시음을 도와주시던 분께서 너무나 해맑고 무해한 미소로 응대해 주시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음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계열의 블렌딩 커피를 맛보았는데, 라틴아메리카 블렌딩 커피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시음을 하기 앞서 먼저 간략하게 컵노트와 생두 재배 지역에 대한 소개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마일스톤의 라틴아메리카 블렌딩 커피는 생두 재배 지역의 느낌을 커피 맛에 연결시켜, 비가 살짝 온 뒤 포근하게 젖은 토양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떠올리며 일반적인 커피 맛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굉장히 신박하고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인스톤 커피는 커피 맛을 떠나서 복합적으로 좋은 인상들만 남아서 언젠가 꼭 본점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사람이 꽤 있어서 무심결에 방문한 곳입니다. 커피 맛에 대한 경험으로는 이곳이 꽤나 훌륭했다고 느꼈던 곳입니다.
PUBLIC COFFEE ROASTERS
이미 유명한 카페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처음 들어보는 곳이기에 엄청난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만족감이 높았을 수도 있는데, 주관적인 경험으로는 이곳이 이번 카페쇼를 위해 남다른 준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남달랐던 것은 사소한 차이이지만 대기줄을 직접 안내했으며, 시음에 앞서 원두 라인업 및 카페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담긴 팜플렛을 제공한 거의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대기를 하며 커피 경험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미리 시음하고 싶은 원두들을 체크하며 시음 공간에서는 커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점도 좋았습니다.
이곳의 특징은 Infused와 Co-fermented 원두를 7가지나 소개했다는 것인데요, 먼저 infused, co-fermented, flavoured 용어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정의가 없고 이와 관련된 논란이나 오해 소지가 있는 부분은 글과는 무관한 내용이므로 이곳에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저는 요즘 들어 내추럴 커피에 관심이 짙어져 흔히 말하는 가향 커피를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이 분야의 커피에 한번 맛 들이게 되니 생두가 지닌 본연의 맛을 잊게 되는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퍼블릭 커피의 일곱 가지 인퓨즈드 커피를 만나봤을 땐 반가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가향 커피라고 해도 매번 복숭아 아이스티 계열, 수박 계열, 리치 계열 등 비슷한 느낌의 커피만 접해봤는데, 이곳에서는 요거트와 메로나 아이스크림 그리고 누텔라 초코잼 등 보다 다양한 맛 계열의 커피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번 콜롬비아와 5번 브라질 커피는 향부터 맛까지 정말 커피물에 인공 제품이 첨가된 듯한 강렬함을 받았습니다. 아마 방문객들은 이렇게 새롭고 직관적인 컵노트 경험을 기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이샤 커피도 두 가지 정도 시음을 해봤는데, 확실히 앞에 커피들에 비해 인상은 약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이곳 퍼블릭 커피 또한 커피 맛을 떠나 재밌고 좋은 경험들로 가득 찼던 곳입니다. 또한 유일하게 원두 구매를 마음먹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팜플렛 아래에 적힌 작은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더 이상 유쾌할 것도 여유로울 것도 많이 사라진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한 마디라고 생각합니다.
"DON'T BE SERIOUS, COFFEE IS JUST A CHERRY."
이곳까지가 한 라인에 있던 카페들이었고, 다양한 곳을 들르기 위해서 이만 다음 줄로 넘어갔습니다. 다시 미어캣이 된 것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던 중 유독 대기줄이 긴 곳을 발견하고 그 근처로 다가갔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다 보니 게이샤 커피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곳인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 뒤로 합류했습니다.
oas roasters
이곳은 오아스 로스터스입니다. 신기했던 건 이 줄에서는 유독 이곳만 줄이 길어서 오아스 관계자 한 분이 돌아다니며 "이 줄은 오아스 줄입니다."라고 외치며 다닌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인지 괜히 더 기대가 되었습니다. 10분 조금 안되게 대기를 한 뒤 안내를 받았는데, 처음 맛본 것은 커피잼입니다. 나무 막대기에 정말 정말 작게 찍어서 테이스팅을 도와주는데 왠지 모르게 이러한 서비스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두 종류의 커피잼을 맛보는 데 있어서 한 개의 나무 막대기에서 양 끝 부분을 활용했는데, 관계자분께서 나무막대기 중간보다 끝 부분에 더 가까운 곳을 잡아주셔서 아쉬움을 느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잼을 먹고 나서 일부로 중간 부분을 잡기 쉽도록 건네주었는데 다시 끝 부분에 가까운 곳을 잡아서 주신 점이 시음에 조금 신경 쓰였다 정도입니다.
커피 안내 책자에는 컵노트 관련해서 아무런 정보가 적히지 않아 시음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했습니다. 시음할 커피를 고르는 것도 수동적으로 고를 수밖에 없도록 안내한 시스템이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평소 어떤 뉘앙스의 원두를 즐겨 드세요?"라던가 "자주 드시는 원두 있으세요?"라는 질문이 제가 판단해서 고르는 것이 아닌 추천해 주시는 커피를 맛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그런 인상을 준 것 같습니다. 커피 맛 또한 특별히 인상 깊진 않았습니다. 오아스 부스 오른쪽 벽면에 적힌 문구가 참 와닿아서 기대를 했던 곳인데 그런 점이 잘 드러나지는 않아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게이샤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기계가 잠시 수리 중이라 번호표를 받고 20분 정도 돌아다니다 다시 들러 받았습니다. 가격은 6,000원인데 따로 안내가 되어있지 않아서 결제를 하고 나서야 가격을 알았던 것도 아쉬웠습니다. 비싸봐야 아이스크림 한 컵에 4-5천 원이겠지라는 마음을 벗어나 카페쇼에서 6천 원을 주고 먹는 아이스크림이라면 무슨 맛일까 또 한 움큼 기대를 했지만 맛 또한 가격에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게이샤를 사용했다고 마케팅을 하지만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더위사냥 아이스크림에서 커피 액기스를 진하게 한 뒤, 아이스크림을 굉장히 꾸덕하고 끈적하게 만든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카페쇼에서 하나 후회스러운 것은 이 게이샤 아이스크림을 나도 모르게 6천 원에 구매한 기억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제 입맛과 경험에는 부족했던 곳이지 충분히 로스터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듯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는 곳이라 다음번에는 어떻게 준비할지 또 궁금증이 생기는 곳 오아스 로스터스였습니다.
이어서는 다시 한번 리브스 커피 대기줄을 확인하기 위해 되돌아갔습니다. 줄이 워낙 길고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모퉁이를 두 번이나 돌아야 할 정도로 줄이 서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여 망설이던 중 바로 옆에 1-2명의 방문객이 있던 곳이 눈에 보였습니다. 어쩌다 사진을 남기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느낀 점은 또 새로웠기에 기억에는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ildio
이후 검색을 해보니 이곳을 일디오 커피라고 부르는 듯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한국의 사계절인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블렌딩 원두 라인업을 구성하여 각 계절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제철의 과일을 커피로 선보이려는 마음을 담았다고 안내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디오 커피에서 "어떤 스타일의 커피를 즐겨 드세요?"가 아닌 "어떤 계절을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계절의 각 특징을 담은 커피라니 벌써부터 큰 기대와 많은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것들이 카페쇼를 통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재미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먼저 저는 가을을 골랐습니다. 현재 날씨가 가을과 유사하기에 일디오 커피의 가을을 느끼는 것이 가장 적합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실이라는 이름을 지닌 가을의 커피는 매실과 대추차 그리고 건자두의 느낌을 담은 커피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듣고 나서는 제가 생각했던 가을의 느낌과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들, 이것들과 가을의 연관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시음을 하고 나니 예상했던 그대로 가을을 담은 커피를 마셨다는 느낌보다는 여러 맛이 나는 대체적으로 연한 느낌의 커피였습니다. 매실과 대추차의 컵노트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계절의 냄새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봄을 골랐습니다. 봄은 정적인 겨울을 흘러 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참 매력 있는 계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산뜻한 출발과 푸릇한 생명력 그리고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야생화가 떠오릅니다. 마찬가지로 일디오 커피의 봄도 적지 않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계절 블렌드를 표현한 것이 아닌 계절 블렌드에 끼워 맞춘 듯한 뉘앙스로, 기획은 굉장히 좋았으나 내용이 전체적으로 아쉬웠던 곳입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좋은 인상을 받았던 건 널리고 익숙한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며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카페쇼의 취지에 더욱 알맞다고 생각하여 개인적으로는 멋있었고 재밌던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COFFEE M STABLE
다음으로는 그 근처에 있던 커피엠스테이블에 들렀습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카페였고 배경을 다운된 녹색 톤으로 구성한 게 신기해서 한번 방문했습니다. 이후 검색을 해보며 본점에 방문한 손님들의 후기 평판을 보았을 땐 그다지 친절한 카페는 아닌 듯했습니다. 다행히도 당일 저는 그만한 불편함은 전혀 못 느꼈고 그렇다고 특별한 응대를 했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제 기준에서는 평범한 카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커피 맛에도 이어져 한 마디로 독특한 배경에 비해 무색무취했습니다. 카페쇼라는 공간 한정 하에 평범한 이런 카페보다는 차라리 욕을 먹거나 옥에 티가 나더라도 저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곳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음 카페쇼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또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카페 커피엠스테이블이었습니다.
커피엠스테이블에서 시음을 하던 중 사실 집중도를 빼앗긴 데에는 다음 소개할 이곳의 역할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카페를 통틀어 가장 높은 볼륨으로 박수와 환호를 만들어 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끈 곳입니다. 이것 또한 카페쇼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홍보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발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SANDSTONE COFFEE LAB
샌드스톤 커피는 빛으로 비유를 하자면 가장 밝고 반짝거리는 곳으로 지나가는 누구든 한 번쯤 쳐다봤을 법한 카페입니다. 이곳의 마케팅 방식은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합니다. 박수와 환호 그리고 마이크를 통해 직관적인 이목을 끌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한 퀴즈 형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음 이상의 궁금증과 만족도를 주었습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절차는 순차적으로 세 명의 사람을 한 팀으로 구성하여 각자의 앞에 놓인 세 잔의 커피를 테이스팅 한 뒤, 미리 나누어준 원두 카드를 알맞게 위치시키는 것입니다. 세 명의 사람이 모두 정답을 맞힐 경우 사은품을 증정한다는 전략도 매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테이스팅 시음의 경우 실제로 체험해 본 결과 시음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저는 은은하지만 복합적인 향미를 지닌 커피와 허브향이 매력인 커피 그리고 리치와 같은 열대과일 맛을 지닌 커피를 마셨습니다. 보통 컵노트를 확인하며 커피에서 느껴지는 향미를 더욱 연상시키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직 커피의 맛에만 집중하다 보니 원두가 지닌 본연의 캐릭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흑백요리사에서 안성재 셰프가 눈을 감고 베지테리언 사시미를 먹은 것처럼, 온전히 바리스타의 의도에 맞게 커피 경험이 이루어져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정말 영감을 많이 받았던 것은 컵노트 이미지였는데, 사진을 보면 벽면에 붙어있는 포스터들이 컵노트 카드를 크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굉장히 직관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카페의 중심 소재인 샌드스톤에 색상을 입히고 원두의 캐릭터를 나타내는 과일 혹은 꽃 그리고 허니와 허브 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일반적으로 컵노트는 글씨가 우선이고 그것을 통해 각자의 사물을 떠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깨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림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을 해주니 커피의 맛에 집중하기 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커피 맛을 떠나서 만족도 높은 커피 경험을 한 샌드스톤은 저를 또 놀라게 한 점이 한 가지 남았습니다. 별 거 아닌 거지만 이런 사소한 차이를 실행하느냐 마느냐가 이 많은 카페들이 모인 이곳에서 가장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는 듯했습니다.
"쓰레기 버려드릴까요? 저희 샌드스톤은 친절하게 쓰레기도 정리해 드립니다."
언뜻 보면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멘트이지만, 그것은 누가 어떤 말투와 표정으로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곳은 다른 곳에서 시음한 쓰레기도 직접 처리해 주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행동하는 곳은 이곳밖에 없었고 샌드스톤은 그것 또한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을 뿐이었습니다.
방문객이 낯설어하지 않도록 테이스팅 시작 전 손을 모아 합을 맞추는 것, 정답을 맞혔을 때 순수한 환호와 박수를 유도하는 것, 답이 틀리더라도 민망하지 않도록 호응을 유도하는 것, 정말 단 하나의 오점도 찾을 수 없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샌드스톤은 다음 카페쇼에서도 꼭 보고 싶은 곳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이어서는 바로 옆에 있는 카페인데요, 이곳은 유명한 곳이고 예전에 한 번 가본 경험도 있는 곳입니다. 그때의 커피 경험은 그리 좋지는 못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고 그보다 아는 곳이라는 반가운 마음에 기대가 더 컸던 곳입니다.
Camel COFFEE
커피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어쩌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수도 있을 카페입니다. 이곳의 커피 맛이나 추구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곳이 유명한 카페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스스로는 카페 자체가 유명하다고 해서 커피가 더 맛있고 특별하게 느끼지는 않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 맛을 원한다면 오로지 커피 맛에 국한해서, 혹은 종합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또 그것에 맞게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앞에 서술하는 것이 위의 카페들과는 조금 다른 형식인 것 같은데요, 커피 맛에 관해서는 오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소개합니다.
저의 당일 주관적인 커피 경험으로 카멜 커피는 말 그대로 최악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대기했을 때는 인지도 덕분인지 사람이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에 방문자들의 시음 현장을 구경하며 제 차례가 되면 어떤 커피를 마셔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5분이 넘고 결국 저는 이곳을 떠나게 되었는데요,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대기줄이 참 애매하게 형성이 되어있었지만, 분명 카멜커피의 대기줄은 맞는데 오히려 관계자들이 대기줄을 인지하고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통상 말도 안 되게 긴 대기줄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카페는 부스 안에서 한 번씩 쳐다보며 상황을 체크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삐쳐서 떠났다고 하면 그것 또한 방문자의 입장에서 후회스러운 행동이기에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제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부스 안에 계신 관계자들이 방문자들에게 시음을 도와주며 어느 정도 자신들의 커피맛도 같이 체크하며 진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모든 커피를 함께 시음하며 서로 떠들기 바쁜 모습이 제삼자가 보기엔 본인들이 더 시음하기 정신없는 곳 같았습니다. 방문자에게 커피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관계자들끼리 서로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들기 바쁜 이곳은 그 앞에 어색하게나마 서있는 저를 내쫓는 듯했습니다. 카페쇼라서 더 불편함을 받았다기보다는 일반 카페에서 이런 경험을 했더라도 분명 실망을 했을 겁니다. 결국 떠나는 그 순간에도 저는 아무런 컨택을 받을 수 없었고 차라리 잘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추가로 커피 맛과 별개로 정말 별로였던 점은 아마 포터필터였던 것 같은데, 무언가를 치며 바스켓을 탁탁 터는 그 소리가 눈을 감고 들으면 무언가를 부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끄러웠습니다. 제가 말하는 거슬림은 온전히 소리의 볼륨이었고, 커피 경험에 이어서 '이곳은 본인들이 우선인 곳이고 방문자들을 존중하지 않는구나'라는 인상이 남겨졌습니다. 저도 카페를 많이 다니고 그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정도의 퍼포먼스(일종의 포장이랄까요...)는 너무나도 불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건 주관적인 경험이지만, 이 소음에 관해서는 카멜커피를 다음 카페쇼에서 또 만난다면 보다 현명하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약간의 실망감을 얻은 저는 이어서 가장 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지치기도 했고 지금 아니면 언제 맛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어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LEAVES COFFEE
그 주변에 있는 Philocoffea를 방문할지 이곳을 방문할지 약간의 고민을 하다가 결국 줄이 더 길었던 리브스커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했던 건 압도적으로 줄이 길어서인지 이곳만 대기줄의 선두와 후미를 위한 종이 팻말을 주었습니다. 이 팻말을 받아 들 때만 해도 '줄이 길어봐야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어'라며 리브스커피는 어떨까 한참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상상과 달리 무려 2시간 30분 가까이 줄을 서고 나서야 리브스 커피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이공원도 한 번 빠질 때 최소 6명 정도씩 빠지니 중간중간 걷기라도 할 수 있는데, 이곳은 거의 한 명씩밖에 빠지지 않아서 웨이팅이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공간은 좁은데 사람은 밀집되어 정말 지칠 수 있는 구간이니 여러분은 현명하게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중간에 맞은편 남성 분께서 저를 보는 듯하며 "조심하세요, 머리 조심하세요."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어리둥절하다가 뒤를 보니 제 머리 바로 앞에 스테이플러가 박힌 쇠막대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거 맞는다고 뭐 아프거나 다치진 않겠지만, 이런 물체가 머리에 닿는 건 기분이 나쁘니 저를 위해 나서준 분께 정말 감사했고 함께 줄을 서고 있는 모습에 동지애도 들었습니다. 바로 제 앞에 작동 버튼이 있었는데 앞에 계신 분께서 모르고 가방으로 누른 듯했습니다. 두 시간을 넘게 웨이팅 했더니 이런 것도 재밌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나마 리브스 커피를 기다릴 순 없으니 곧장 부스로 가보면, 리브스 커피의 바리스타분들은 영어로 소통을 하셔서 잠시나마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많은 소통을 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저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듣고 이해하는 데 바쁜 순간들이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 원두는 거의 다 매진이었습니다. 저는 Last Day Special의 Panama Longboard Windy Ridge Geisha Natural과 Washed 그리고 ETHIOPIA SKY PROJECT BLOOM WASHED를 골랐습니다. 앞에 계신 분께서 혼자 온 저를 보며 "헤에? 세 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라며 깜짝 놀란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괜찮지 않았어요...)
한 잔을 위해 정성껏 준비하여 내려주시는 모습에 가격을 떠나서 좋은 경험들을 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추출을 하며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신 원두 디게싱과 에이징에 관한 이야기, 그에 따른 blooming 정도, 내추럴과 워시드 추출 방식의 차이 등이 너무 유익했고 재밌었습니다. 리브스 커피가 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 확실히 알게 된 순간들이었고 글로는 다 남기지 못할 것 같아 리브스 커피 경험의 과정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추출이 끝나고 나서 세 잔을 챙기는 저를 걱정하며, 어떻게 잘 들어내니 환하게 웃으며 "Ok, Ok."라고 말해주신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커피 맛은 한 마디로 풍부했습니다. 단순함과 복잡함이 쉴 새 없이 뒤섞이는, 어찌 보면 원두를 의인화하여 나와 다른 종족인 원두의 속마음까지를 알게 되는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환상적이었다는 아니지만 분명 특별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본점에 꼭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만 E홀을 밖으로 벗어났습니다.
다른 홀도 조금씩 구경은 했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소진된 터라 따로 어디를 더 들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사은품도 많이 챙겨가시던데 저는 돈만 쓰고 드립백 한 개 받아온 게 웃기기도 하더라고요. 다시 말하지만 단순한 평가 혹은 비난의 목적이 아닌 카페 문화의 발전을 위한 수필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건 카페쇼에 참가한 모든 카페들이 저마다의 열정을 갖고 열심히 준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저보다는 가벼운 목적으로 재밌게 즐기시길 바라면서도 이것저것 놓치지 않고 알뜰하게 경험하고 가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두서가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음번엔 또 색다른 체험을 하고 유익한 후기가 될 수 있도록 재밌게 잘 풀어내 보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모두들 건강에 유념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