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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Apr 20. 2024

출판사에서 두꺼운 원고 뭉치를 들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괜한 요구를 해서 수고를 끼쳐 드렸네요."

"그럼 오늘 강연을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몇 주 전, 나는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강연을 마치고 강연장을 나서는 중이었다. 그때 낯선 두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작가님, 오늘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관련 강연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른 훌륭한 강연들도 많았는데, 혹시 강연장을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니신지요?"


"아닙니다. 저희는 일부러 작가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시간표를 확인하고 마지막까지 기다렸어요."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일단은 그들의 말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 듯했다.


"사실 저희는 출판사에서 편집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스토리텔링 관련 책을 기획 중인데, 그래서 작가님의 강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마침내 궁금증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직 그는 자신의 마지막 패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이라는 단어는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저희가 준비하는 책이 있는데 추천사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출판사의 요청으로 추천사와 서평을 쓴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 부탁받은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퇴근 시간에 배정된 내 강연을 듣고 복도에서 기다렸다가 이런 부탁을 하는 그들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지난번에 다른 출판사의 책 추천사를 쓸 때 PDF로 읽느라 많이 힘들었거든요. 혹시 실물 원고를 받아볼 수 있다면 책을 더 수월하게 읽고 추천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저희가 최대한 준비를 해볼게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의례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그에게 문자가 왔다.


"작가님, 저희가 추천사 관련하여 안내를 드리고 싶은데 계시는 신용산역 근처에서 뵙겠습니다."


구두로 설명하겠거니 생각하고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편집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두툼한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심지어 A4가 아닌 B4 크기로 인쇄된 원고였다. '설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작가님, 아직 편집이 끝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예요."


편집자는 분홍색 클립으로 묶인 원고를 건넸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반사적으로 사과의 말이 튀어나왔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죄송합니다. 괜한 요구를 해서 수고를 끼쳐 드렸네요."


하지만 편집자는 웃으며 이 정도는 편집 작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원고 맨 앞장에는 책과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 그리고 출간 일정이 적혀 있었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 내려가는데, 평소 서점에서 사는 책들과는 문체가 달랐다


"편집자님, 저자의 문장이 문어체가 아니라 경어체로 되어 있네요?"


"네, 편집하면서 독자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 수정했습니다."


"책이 300쪽 정도 되는데, 모두 편집자님이 직접 수정하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이건 편집이 아니라 중노동에 가까웠다. 편집자가 책에 이토록 애정을 쏟는 일이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노고를 표현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채 존경스럽다는 말만 속으로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리고 편집자는 책 세 권을 더 건네며 말했다.


"추천사가 어떻게 인쇄되는지 궁금해하실까 봐 비슷한 책을 가져왔습니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그가 고생하며 들고 온 원고와 책들을 보니 복잡한 생각이 교차했다. 사실 PDF로도 충분할 텐데 내가 괜한 요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들었다. 헤어지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편집자와 함께 멋진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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