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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바꿔달라고 인사팀에 요청했다.

성공과 인간관계: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by 조인후

지난 몇 년간 여러 기업과 경영자를 인터뷰하며 매체에 콘텐츠를 기고해왔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흥미로운 패턴이 하나 있다. 성과는 분명한데 주변에 사람이 없는 이들이 있다. 몇 번 지켜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이들은 손해를 병적으로 회피한다. 늘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려는 계산이 태도에서 묻어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나 역시 손해를 싫어하는 본능이 있지만, 그들의 태도에 전염되고 싶지 않아서다. 내 안의 회피 본능까지 강화되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손해를 거부하는 심리는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그 선을 넘는 순간, 더 큰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게 된다. 눈앞의 손해를 감수할 줄 모르면, 장기적인 성공도 의미 있는 관계도 얻을 수 없다.


조직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저서 『기브 앤 테이크』에서 사람을 테이커(Taker), 매처(Matcher), 기버(Giver)로 구분했다. 그의 연구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줬다. 최하위와 최상위 성과자가 모두 '기버' 유형이었다. 무분별하게 베풀다가 소진된 기버는 바닥에 머물렀고, 전략적으로 베풀면서 신뢰와 네트워크를 구축한 기버는 최상위 성과자가 되었다. 반면 테이커들은 초반엔 잘 나가는 듯했지만, 결국 평판이 무너지고 협력자를 잃으며 성과는 점점 하락했다.



이런 생각의 근거가 된 경험을 하나 소개한다. 몇 년 전, 추천으로 어느 기업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팀 보강을 위해 이전 직장 동료를 추천했는데, 인사팀에서 난감하다는 연락이 왔다. 정규직 자리가 없으니 계약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답했다.


"그럼 제가 계약직으로 전환할 테니 그분께 정규직 자리를 주시죠."

인사팀 담당자는 당황했다. 전례 없는 요청이라고 했다. 주변 반응은 더 격렬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의아함과 만류가 쏟아졌다.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그는 이미 검증된 인재였다. 나에 대한 신뢰만으로 이직을 고려할 만큼 믿을 수 있는 동료였고, 무엇보다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었다. 호흡이 맞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는 정규직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그에게 정규직을 주면 됐다.


나에게 정규직은 단지 고용 형태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이직을 결심하는 데 있어 고용 안정성은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상대적 효용을 따지면 답은 분명했다. 그가 정규직으로 팀에 합류한다면, 우리 둘 다 더 큰 걸 얻는 거였다.


물론 이 제안에는 계산이 있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의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이론에 따르면, 리더가 먼저 취약성을 드러낼 때 팀의 혁신과 성과가 극대화된다.


내가 개인적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은 여러 시그널을 동시에 보내는 행위였다.


첫째, 새로운 동료에게는 "이 조직은 당신의 합류를 위해 기꺼이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최상의 환영 메시지를, 둘째, 기존 팀원들에게는 "우리는 개인의 안위보다 팀의 성과와 역량을 최우선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라는 명확한 행동 기준을 제시하는 셈이었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인사팀은 내부적인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정규직 정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결정했고, 추천했던 동료를 채용하는 동시에 나 역시 기존의 정규직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아마도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보다, 정원을 일시적으로 늘리는 편이 행정적으로 더 용이했던 모양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조직 내부의 경직된 관성을 역이용한 전략적 묘수가 된 셈이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새로 합류한 팀원은 기대 이상의 뛰어난 성과를 창출했다. 오랜 협업 경험 덕분에 조직 적응이 놀라우리만치 빨랐고, 내가 보인 파격적인 환영의 제스처는 다른 팀원들과의 두터운 신뢰 구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고용 형태를 담보로 제안했던 이 거래는 팀 전체의 역량과 조직 문화를 질적으로 끌어올린 최고의 투자였다.



1980년, 애플의 역사적인 기업 공개(IPO)를 눈앞에 두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스티브 잡스가 초기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배분하는 것을 거부하자, 워즈니악은 직접 자신이 보유한 주식 중 1,000만 달러어치를 나누어 주었다. 회사의 성공은 혼자만의 역작이 아니며, 그 성과는 함께 땀 흘린 동료들과 마땅히 나누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배려나 호의의 차원을 넘어섰다.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기회비용을 포기한 대가로,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진정한 협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워즈니악이라는 이름은 곧 신뢰의 동의어가 되었고, 이후 그가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하든 최고의 인재들이 먼저 그를 찾아왔다. 결국, 개인의 단기적인 손실이 집단의 견고한 신뢰로 전환될 때,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명백한 진리를 증명한 셈이었다.


진정한 성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기득권을 내려놓는 바로 그 순간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올 여백 자체가 없다. 협력보다 통제를, 공유보다 사적인 소유를 택하는 리더는 결국 팀의 성장 잠재력을 스스로 가로막게 된다. 성장은 혼자 앞서 달리거나 경쟁자를 무작정 밀어내는 데서 오지 않는다. 함께 더 멀리 가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선제적으로 내어놓을 때, 비로소 조직 전체에 지속적인 속도가 붙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의 척도는 단지 숫자나 단기적인 실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쌓아 올리는 깊은 신뢰의 과정 속에 있다. 타인의 성과를 위협이나 질투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 팀은 곧바로 균열이 생기지만, 그 성공을 자신이 함께 만들어갈 기반으로 바라보는 순간 조직은 단단하게 결속된다.


결국, 신뢰를 선뜻 나누는 사람이 가장 멀리, 그리고 오래도록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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