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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붙는 메시지는 우연이 아닌 철저한 기획에서 시작된다

칩 히스와 댄 히스의 "스틱!"

by 조인후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마케팅 책은 잊힌다. 너무 이론적이어서 쓸모없거나, 너무 일화 중심이어서 신빙성이 없거나. 혁명적인 인사이트를 약속하더니 기업 전문용어로 포장된 상식을 재탕해서 내놓는다. 칩 히스와 댄 히스의 "스틱!"은 그런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자신이 설파하는 것을 실천하는 드문 비즈니스 책이다. 기억에 남고, 실행 가능하며, 불쾌할 정도로 잊히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기억에 남게 만드는 것에 관한 책이 정작 기억나지 않는다면 민망할 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 책이 다른 이유

히스 형제는 왜 어떤 아이디어는 살아남고 어떤 건 인터넷이라는 콘텐츠 공동묘지에 묻히는지 수년간 파고들었다. 그들의 답은 '진정성'이나 '참여'에 대한 뻔한 얘기가 아니다. 대신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내놓는다. 연구 기반이고, 여러 분야에서 검증됐고, 한 번만 읽어도 머릿속에 박힐 만큼 단순하다.


SUCCESs 프레임워크는 마케팅 업계에 이미 넘쳐나는 약어 컬렉션에 추가할 또 하나의 머리글자가 아니다. 이건 왜 지난 마케팅 캠페인이 말아먹었는지, 왜 근거 없는 도둑 도시괴담이 당신 브랜드의 그럴싸한 미션 선언문보다 훨씬 널리 퍼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진단 도구다.


책은 모든 마케터를 불편하게 만드는 개념으로 시작한다: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 당신과 당신 팀만 알아듣는 언어로 떠들면서, 왜 아무도 안 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단 뭔가를 알고 나면,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당신의 제품이, 산업이, 그 멋진 전략이 낯설었던 순간을 기억할 수 없다. 마치 한번 콜라나 라면 맛을 본 아이가 그 이전의 심심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프레임워크 (그리고 왜 실제로 작동하는가)

단순함(Simplicity):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싹 다 쳐낸다. 쉽게 만드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거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딱 하나의 키워드로 회사를 운영한다:


"저가 항공사"


모든 의사결정이 여기서 걸러진다. 기내식에 시저 샐러드 추가? 이게 저가 항공사 만드는 데 도움 되나? 아니? 그럼 안 한다. 대부분 브랜드는 핵심가치가 17개씩 되면서, 고객은 물론이고 내부직원조차도 기억 못 하는지 의아해한다.


의외성(Unexpectedness): 패턴을 깨서 관심을 끌고, 궁금증을 만들어서 유지한다. 대부분 마케팅은 자동차 경보음만큼 시끄럽게 자기를 알린다. 진짜 임팩트 있는 건 예상을 뒤엎는다. 문제는 놀라움은 금방 식는다는 거다—호기심의 틈을 만들되, 너무 빨리 답을 주지 마라. 미스터리 캠페인이 제대로 먹힐 때가 있고 대부분 망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부분 마케터는 절정에 다다르기 전에 설명부터 해버린다.


구체성(Concreteness): 추상적인 말은 좋은 아이디어의 무덤이다. "혁신적 솔루션을 통한 시장 리더십 달성"—이게 뭔 소리일까? 반면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보내고 무사히 데려온다"는 머릿속에 영화가 그려진다. 아무 기업 사이트나 들어가서 스크롤 내려보라. 뭔가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까지 몇 문단이나 지나가는지. 구체적인 디테일은 기억만 돕는 게 아니다. 협업도 쉽게 만든다. 모두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불필요한 회의가 줄어든다.


신뢰성(Credibility): 당신의 스펙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아이디어를 믿게 만드는 건 권위가 아니다—진짜 경험, 검증 가능한 디테일, 그리고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담배 피우다 죽어가는 금연 운동가가 보건복지부 장관보다 신뢰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대부분 브랜드는 신뢰를 쌓기보단 메시지를 컨트롤하려고만 한다.


감정(Emotional): 사람들은 정보로 행동하지 않는다—감정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여기서 대부분 마케팅이 틀린다: 정체성에 호소해야 할 때 이기심에 호소한다. "... 하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가 "20% 할인하면..."를 매번 이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감정적 조작은 쉽다. 정작 감정적 울림은 어렵다. 전자는 일회성 클릭을 만들고, 후자는 진짜 관계를 만든다. 대부분은 쉬운 길로 간다.


스토리(Stories): 그리고 여기서 모든 게 만난다.



스토리가 전부인 이유

여섯 가지 원칙 중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좋은 스토리는 본질적으로 나머지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스토리는 태생부터 단순하다. 시작-중간-끝이라는 뼈대만 있으면 기억하기 쉽다. 스토리는 예상을 뒤엎는다. 평범하게 흘러가던 일상에 갑자기 뭔가 터진다. 스토리는 구체적이다. 얼굴 있는 사람, 실제 장소, 손에 잡히는 사건이 있다. 스토리는 믿음이 간다. 디테일이 살아있으면 지어낸 것 같지 않다. 스토리는 감정을 건드린다. 우리 뇌는 스토리에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그리고 당연하지만—이건 스토리니까.


저자들은 먹히는 스토리가 세 유형으로 나뉜다고 말한다: 도전 스토리(약자가 역경을 뚫고 나간다—우리가 응원하게 된다), 연결 스토리(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만난다—우리가 공감하게 된다), 창의성 스토리(누군가 문제를 기발하게 푼다—우리가 영감을 받는다).


자, 여기서 빠진 게 뭘까?


"신기능 10개를 소개하는" 스토리? "우리 제품 가성비 최강"이라는 스토리? "20-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한다"는 스토리?


그런 건 없다. 그건 스토리가 아니라 그냥 정보 나열이니까.


스토리는 그냥 잘 기억되는 게 아니다—머릿속 시뮬레이터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뇌는 마치 직접 겪는 것처럼 그 상황을 리허설한다. 그래서 "고객 사례"가 "제품 설명서"를 이기는 거다. "사용 후기"가 "기술 문서"를 씹어먹는다. "내가 이걸 쓰고 든 생각!"이 "생산성 47% 향상"보다 백배는 강하게 꽂힌다.


근데 냉정한 현실은 이거다: 대부분 마케터는 스토리를 십분 활용하지 못한다.


기능 나열? 잘한다. 장점 설명? 문제없다. 프로세스 소개? 할 수 있다.


근데 서사는? 차원이 다르다.


스토리를 쓰려면 내 제품이 아니라 고객이 주인공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긴장감을 만들려면 문제를 정면으로 까발려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라는 질문에 두루뭉술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


대부분 브랜드는 이게 겁난다. 그래서 안전하게, 추상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말만 늘어놓는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마케팅, 콘텐츠 제작, 소셜 미디어를 한다면, 이 책은 불편하다. 아주 불편하다. 당신이 매일 저지르는 모든 게으른 짓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니까:


핵심을 찾는 대신 기능부터 들이민다


쉬운 말 대신 전문용어로 인사이트를 묻어버린다


궁금하게 만드는 대신 앞에서 다 설명해 버린다


신뢰를 쌓는 대신 "전문가가 말하길~"로 때운다


정체성을 건드리는 대신 연령대나 쪼개고 있다


스토리를 하는 대신 정보만 늘어놓는다


SUCCESs 프레임워크는 콘텐츠 품질 체크리스트다. 이메일 캠페인, 소셜 포스트, 랜딩 페이지, 영상 스크립트, 프레젠테이션, 피치 덱—당신이 만드는 모든 걸 이 필터에 한번 걸러봐라. 대부분 참담하게 걸러진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가치는 따로 있다. 뭐가 문제인지만 언급하고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고치는지까지 보여준다.


장기 밀매범 도시전설부터 글로벌 기업 캠페인, 모금 호소까지—온갖 실제 사례를 해부한다.


서브웨이 샌드위치만 먹고 50kg을 뺀 제레드 이야기는 어떻게 전국구 신화가 됐나. 텍사스인들의 자존심을 긁어서 쓰레기 투기를 막은 "Don't Mess with Texas" 캠페인은 뭐가 달랐나. 타이어도 안 파는 노드스트롬 백화점이 타이어 환불을 해줬다는 전설은 왜 지금까지 회자되나.


각각을 뜯어보면서 왜 이게 사람들 머릿속에 박혔는지, 그 메커니즘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 책이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왜 괜찮은가)

이건 바이럴 마케팅 비법이나 그로스 해킹 책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을 포스팅하는 골든타임이 언제인지, 알고리즘을 어떻게 속이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재미없는 사람을 웃기게 만들어주지도, 머리 나쁜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주지도, 무딘 사람을 날카롭게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이 책이 주는 건 아이디어를 보는 렌즈다—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경쟁사 캠페인은 왜 대박 났는데 내 캠페인은 쪽박인지 이해하게 해 준다. 왜 어떤 콘텐츠는 미친 듯이 퍼지고 대부분은 무한 스크롤에 묻히는지. 왜 공들여 만든 30페이지 백서는 다운로드 17개인데, 새벽에 즉흥으로 쓴 트윗 세 줄은 천 개가 넘게 리트윗 되는지.


이건 진단 도구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솔직히, 그게 훨씬 낫다. 만병통치약 같은 건 애초에 없다. 진단 도구는 최소한 똑같은 병신짓을 반복하지 않게 막아준다.


결론

"스틱!"은 아이디어를 퍼뜨리는 일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혁명적이어서가 아니다—원칙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지금껏 감으로만 하던 걸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스티키한 아이디어가 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배우고, 써먹고, 반복할 수 있게 해 준다.


콘텐츠 쏟아내고, 숫자 쫓고, 우선순위 싸움하느라 허우적대는 마케터들에게 이 책은 점점 귀해지는 걸 준다. 바로 명확함이다. 온갖 잡음을 뚫고 딱 하나만 묻는다: 왜 어떤 아이디어는 달라붙고 어떤 건 증발하는가?


답은 편하지 않다. 당신이 만든 모든 걸 다시 보게 만들고, 열에 아홉은 움찔하게 만들 거다. 하지만 더 잘할 수 있는 도구를 준다. 그리고 관심이 가장 귀한 자원이고 잊히는 게 기본값인 세상에서, "더 잘하는 것"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경쟁력이다.



읽어라. 써먹어라. 당신 콘텐츠가 명중하는 걸 지켜봐라. 그리고 누가 왜 갑자기 콘텐츠가 잘 먹히냐고 물으면, 스토리로 답해라.


그들은 그것만 기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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