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언어를 버리고 자신을 이야기하라

무채색의 언어를 버리고 고유명사가 되는 법

by 조인후

우리가 잃어버린 뜨거운 피, 그림자의 언어


내가 기업인들의 창업 서사를 기록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할 때, 반드시 거쳐 가는 의식이 하나 있다. 인터뷰이가 너무나 뻔하고 정제된 이야기, 혹은 홍보용 보도자료를 낭독하는 듯한 무채색의 언어를 늘어놓을 때 나는 필기하던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흐르면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한다.


"대표님, 착각하지 마세요.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은 대표님께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대표님이 이겨야 할 상대는 지원사업 발표장 대기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스타트업 대표가 아니에요. 대표님은 지금 이 순간, 독자의 엄지손가락을 멈춰 세우기 위해 수조 원의 자본과 전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설계한 유튜브, 틱톡, 넷플릭스의 알고리즘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보도자료 같은 겉치레는 이제 그만 치우죠. 넷플릭스보다 더 강렬하게 마음을 흔드는 대표님만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황하던 그들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리고, ‘대표’라는 두꺼운 가면 뒤에 숨어있던 한 인간의 얼굴이 비집고 나오는 순간 회의실의 공기는 즉각적으로 바뀐다. 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대표는 이 도발 끝에 길게 한숨을 내뱉더니, 21살 군 시절 암 4기 판정을 받았던 기억을 꺼냈다. 90일 동안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병실에서 전동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만 바라보며 느껴야 했던 죽음의 공포, 그리고 퇴원 후 그 누구도 명쾌하게 답해주지 않았던 건강에 대한 막막함이 지금의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고백이었다.


'전동침대 위의 청년'이라는 구체적 장면은 청자의 시각 피질(Visual Cortex)을 직접 자극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말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 되는 순간이자, 넷플릭스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진정성이 확보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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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매일 아침, 이런 진짜 목소리를 회사 로비 바닥에 던져두고 출근한다. 사원증을 찍고 게이트를 통과하는 '삐' 소리와 함께,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은 증발한다. 대신 그 자리에는 마케팅팀 책임이나 전략 기획실장이라는 차가운 딱지를 붙인 유령이 들어선다.


회의실 문이 닫히면 연극은 시작된다. 우리의 입에서는 심장을 거치지 않은 박제된 단어들이 쏟아진다. 전략적 기회, 차별화된 가치, 시장 지배력. 마치 영혼 없는 챗봇들이 대화하듯, 무채색의 언어들이 공허하게 회의실 벽을 때리고 흩어진다. 우리는 이 기괴한 연극을 프로페셔널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안도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일찍이 우리가 실체라고 믿고 매달리는 이 현상을 가리켜 그림자(Shadow)라고 불렀다. 동굴 깊숙한 곳에 갇힌 죄수들은 평생 벽면에 비친 그림자만 보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오늘날 비즈니스 정글의 죄수들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시장 점유율이라는 꺾은선 그래프, 엑셀 시트 속에 갇힌 소비자 통계라는 그림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소중한 인생을 바친다. 하지만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누군가의 선택이 남긴 차가운 흔적일 뿐, 그 선택을 이끌어낸 인간의 뜨거운 열망과 처절한 고통이라는 진짜 실체(Forms)가 아니다.


뇌는 가면을 쓴 목소리를 즉각 차단한다


우리가 이 그림자 뒤로 숨는 이유는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과학은 정반대의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 뇌에는 기만 탐지 시스템(Deception Detection System)이 있다.


소개팅에서 상대방이 "저는 취미가 독서이며 매사에 성실합니다"라고 인공지능처럼 외워온 말을 한다면 어떨까? 당신의 편도체(Amygdala)는 즉시 경고음을 울린다. 뇌가 가면을 감지하면 전두엽은 정보 수용을 차단하고 방어 모드에 들어간다. 당신이 아무리 세련된 표현을 써도, 상대의 뇌는 그 정보를 소음으로 분류해 쓰레기통에 버린다.


인지 과학자 우리 하슨(Uri Hasso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화자가 진실하고 감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만 화자와 청자의 뇌가 똑같이 반응하는 신경 결합(Neural Coupling) 현상이 일어난다. 무채색의 언어는 당신을 수만 개의 브랜드 속에 묻히게 만들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목소리는 당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각인시킨다.


브랜드 기획자들이 그림자에 가장 깊이 매몰되는 순간은 소위 잘나가는 경쟁사를 벤치마킹할 때다. 내가 중고나라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 역시 티몬이나 쿠팡이 보여주는 세련된 캠페인을 따라 해야 한다고 믿었다. 번지르르한 남의 옷을 빌려 입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기획안을 본 경영진은 서늘한 피드백을 던졌다. “이건 티몬의 방식이지 중고나라답지 않아요. 우리만의 진짜 모습은 어디 있습니까?”


그 질문은 뼈아팠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진짜 우리 모습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서비스의 치부였던 허위매물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때마침 다가온 만우절을 기회로 삼아 전국이색매물자랑 판을 깔았다. 내가 직접 겪었던 층간소음의 고통을 담은 '전설의 무기 엑스칼리버' 같은 황당한 매물들을 예시로 올리며 이용자들과 한바탕 웃어보자는 마음으로 던진 이 기획은 뉴스 메인을 장식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세련된 그림자를 버리고 못나고 솔직한 실체를 선택했을 때, 이용자들은 비로소 우리를 자신들의 편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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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가 사라진다고 인터뷰이가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텔러로 활동한 지 4년이 지났을 때, 나 역시 무채색 언어의 함정에 빠진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수백억 매출을 기록 중인 한 창업자를 인터뷰하며, 작가로서 철저히 자신을 지우고 사실관계를 그대로 전달하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는 것이 프로다운 미덕이라 믿었다. 내 목소리가 섞이면 독자의 판단을 방해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원고를 받아본 편집자는 단호하게 원고를 돌려보냈다. "작가님이 왜 이 기업이 특별하다고 느꼈는지 해석이 전혀 안 보여요. 창업자의 말만 나열할 거면 굳이 작가가 왜 필요합니까? 이건 스토리가 아니라 그냥 녹취록일 뿐이에요."


그 피드백은 내가 객관성이라는 그림자 뒤로 숨어버리는 바람에, 정작 독자가 발견해야 할 기업의 실체를 가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같은 사건이 터져도 매체마다 분석과 시각이 달라지듯, 독자들은 창업자의 말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스토리텔러의 견해를 궁금해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설령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일지라도 내가 포착한 분석과 시각을 솔직하게 원고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창업자의 답변뿐만 아니라 대화의 틈 사이에 흐르던 기류까지 담았다. 예컨대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 그가 보였던 3초간의 침묵을,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정직했던 고뇌와 확신으로 해석해 넣는 식이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사실의 나열이 아닌 스토리텔러의 필터를 거친 서사는 훨씬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었고, 발행 이후 해당 창업자는 곳곳에서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단순한 응원을 넘어 실제 투자 유치 제안을 포함한 구체적인 비즈니스 협업 요청이 쏟아졌다. 내가 자기만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드러내자, 역설적으로 독자들은 왜 다른 이의 글이 아닌 나의 분석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러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상대방의 실체도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는 것을 나는 그때 확인했다.


You Can't Say That: 시스템이 강요한 가면을 벗는 법


이 무채색의 언어는 결코 타고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학습되고, 보상받으며, 끝내 우리 안에 강화된다. "제 생각에는"이라고 말하는 대신 "데이터에 따르면"이라고 말해야 안전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체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간다.


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Penn State) 시절, 이 견고한 무채색의 감옥을 뚫고 나오는 날것의 목소리가 가진 파괴력을 목격했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샘 리차드(Sam Richards) 교수의 수업 'SOC 119'는 그 자체로 거대한 해방구였다. 매 학기 800명이 몰리고 전 세계 170개국에서 수십만 명이 지켜보는 이 강의의 별칭은 "You Can't Say That(그런 말 하면 안 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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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발적인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금지한 말들을 여기서만큼은 마음껏 내뱉어라'라는 선언이었다. 리차드 교수는 인종, 종교, 젠더 등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며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라고 스스로를 검열해왔던 예민한 주제들을 투기장 위에 거침없이 던져놓는다. 그는 학생들이 '정치적 올바름(PC)'이나 '사회학적 이론'이라는 안전한 그림자 뒤로 숨어 모범답안을 연기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교수 스스로 진보와 보수,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며 학생들을 끊임없이 도발한다. 때로는 일부러 편향되거나 논쟁적인 의견을 던져 학생들의 화를 돋우고, 그들이 "그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며 내면의 상처와 편견을 날것 그대로 내뱉도록 부추긴다.


놀라운 점은 이 '위험한 대화'가 비난이나 공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800명의 시선이 꽂힌 무대 위에서 학생들이 비로소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교수님이 그 모든 날것의 의견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대화의 주체로 대접한다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실은 정답을 복제하는 공장이 아니라, 각자의 진실이 충돌하며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는 민주적인 전장이 되었다. 교과서를 읽어주는 백 마디의 지식보다, 화자의 진심이 실린 단 한 문장의 고백이 듣는 이의 뇌를 얼마나 강력하게 흔드는지 나는 그 뜨거운 강의실에서 목격했다. 리차드 교수가 시스템이 강요한 무채색의 가면을 벗겼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고유하고 입체적인 목소리를 가진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그림자에서 걸어 나와라


동굴 안의 죄수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니체는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자는 명령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쓰는 브랜드는 시장의 명령을 받지만, 자신의 결핍과 진실을 드러내는 브랜드는 시장의 룰을 새로 쓴다.


비즈니스에서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말을 예쁘게 꾸미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동굴 벽면의 그림자를 중계하는 해설가의 삶을 끝내고, 태양 아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되는 선언이다. 인류가 수만 년간 모닥불 주위에 앉아 생존의 지혜를 나누던 그 강력한 본능을 회복하라. 당신의 뇌가 기억하고 있는 그 생생한 장면, 그 솔직한 감정에서 진짜 서사는 시작된다.


Be your fucking self. 당신이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세상은 비로소 당신을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로 기억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자, 우리가 이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