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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Dec 15. 2020

조선 펑크, 덕질의 시작

때는 바야흐로 2006년의 어느 날.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나는 우연찮은 계기로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듣게 되었다. 원래도 알고 있던 노래지만, 그 뒤에 붙은 아티스트의 이름이 한없이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또래들 사이에서 크라잉넛이란 「말달리자」와 「지독한 노래」로 유명한, 한마디로 ‘욕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참으로 순수하고 단순해서 ‘욕=나쁜 것’, ‘욕 노래=나쁜 노래’, ‘욕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나쁜 사람들’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기도 했었다.

‘착한 아이’였던 나 역시 그런 이미지가 박혀 있던 터라 「밤이 깊었네」를 크라잉넛이 불렀다는 걸 알고 호기심이 일었다. 무섭게 욕하는 가수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감성적인 노래도 부른다고? 혹시 리메이크한 곡은 아닐까 확인도 해봤지만, 이모저모 살펴봐도 크라잉넛의 노래가 맞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또 어떤 노래가 있을지 궁금해졌고, 찾아 듣기 시작했다. 크라잉넛 5집 음반이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14년 인생 처음으로 음반도 구입해 보았다.

그날이, 내가 기억하는 인디밴드 덕후 인생의 시작점이 된 날이다.

     

2006년부터 현재진행형, 햇수로는 15년 차. 전문성은 없고 전문적인 척하기도 싫으나 그래도 ‘덕질’만은 깨나 해 봤다고 말할 정도는 되는 인디밴드 덕후,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그간 베이스 기타와 통기타에도 발을 담가 봤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밴드를 하며 크라잉넛 같은 펑크록 스타를 꿈꾸기도 했다. 요새는 하도 좋아한 기간이 길어져 불타는 열정까진 아니지만, 한창 불같이 빠져 있었을 때는 밤새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인디씬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고 좋아하기에 뭉뚱그려 ‘인디밴드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하나, 정확하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디 음악을 콕 집어 말하자면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며 홍대 인디씬을 누볐던 ‘조선 펑크’다. 삐죽하게 세운 밝은 탈색 머리, 징 박힌 초커와 주렁주렁 위협적인 체인 액세서리, 팔뚝을 가득 채운 문신, 당장이라도 오토바이를 타고 튈 것 같은 가죽 재킷, 무대에서 기타를 부수고 방방 뛰어다니는, ‘펑크록 밴드’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런 분들 되시겠다.

길 가다가 마주쳤으면 곧바로 눈을 깔았을 테지만, 무대 위에서는 항상 나의 영웅이자 삶의 지향점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생각해 보니 인생의 절반 동안 조선 펑크를 들으며 살아왔는데 브런치에는 한 번도 글을 쓴 적이 없기에, 생각날 때마다 쉬엄쉬엄 이에 관한 글을 써 볼까 한다. 인디 음악의 인기는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개중에서도 조선 펑크는 여전히 마이너 축에 들기 때문에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하는 글이 되겠지만…… 어차피 15년을 혼자 떠들어 온 바, 무엇이 아쉬우랴.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나는 아주 가끔만 공연에 가는 방구석 리스너일 뿐이기에 전문적이지도, 전문적인 척하고 싶지도 않다.(개인적으로는 ‘흠... 이 밴드는 너무 상업적인데 이걸 진정한 펑크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ㅎ 저는 모 밴드가 진짜 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름은 들어보셨는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이 가장 꼴불견이라고 생각해서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그저 마음 편하게 써 내려가는 ‘덕질 연대기’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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