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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Dec 19. 2020

“세상에 불만 있냐?”

10년 전에 하지 못했던 대답, 지금 해드립니다

조선 펑크.


강렬한 어감의 단어를 입속에서 찬찬히 굴리다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선 펑크’라는 단어를 말하면 어째선지 하나같이 웃음을 터뜨리지만(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어감이 웃긴가?), 내게는 학창 시절 꿈을 대신 노래해 주던 이들이자 지금도 인생의 ‘노잼 시기’를 마주할 때마다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활력소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참 자주 우울해하는 아이였지만, 그럼에도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음악 덕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그나마 조금 더 긍정적이고 꿈을 많이 꾸게 만들어 준 것, ‘낭만’이라는 단어에 한없이 약한 아이가 되게 만들어 준 것, 아직도 남아 있는 몽상가적 기질을 안겨 준 것, 모두 다름 아닌 조선 펑크였다.


하지만 어깨빵 한 번 당하면 눈을 까뒤집고 욕부터 내뱉을 것 같은 펑크 밴드들의 거친 이미지 때문일까, 아니면 10년 전 생방송에서 바지를 까버린 ‘인디씬 역적’의 여파 때문일까, 한창 조선 펑크에 빠져 있던 학창 시절에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세상에 불만 있냐? 저게 무슨 노래냐, (가사에) 욕이 왜 이렇게 많냐, 사회부적응자들이 듣는 노래 같다, 어쩌고저쩌고…….

그땐 왜인지 그 말이 한없이 분해서 백이면 백 발끈하며 아니라고 자기변호를 해대곤 했다. 그리곤 펑크 음악을 듣지 않아서 하는 말이라고, 이들의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함부로 말하는 거라고 혼자 화를 삭였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세상에 불만 있냐?’는 그 질문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도 같다. 펑크의 기본 정신이 ‘저항’이라는 거야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고, 그 시절 밴드들도 “사회가 우리를 안 받아줘(푸른펑크벌레-푸펑충)”라며 분노와 반항심을 표했는데 굳이 부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세상에 불만 좀 있으면 어때서. 세상에 불만 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정말 세상에 한 점 불만도 없는 사람이라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이른 부처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그것이 부당한 줄 모르는 바보가 아닐까.

나 또한 그렇다. 불만 참 많다. 좁아터진 세상에 어쩜 불합리한 일은 이렇게나 많은지, 타인의 삶을 존중하지 못하는 이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왜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들은 가뿐하게 제 잘못을 덮은 채 삶을 살아가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지.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일들을 이것저것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면 아주 그냥 세상을 때려 부수고 싶은 순간이 많다.


펑크의 기본은 ‘저항 정신’이다. 너무 유명한 곡이어서 의미를 딱히 생각하지 않고도 흥얼거리는 ‘말달리자’의 가사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달려야 해 / 거짓에 싸워야 해 / 말 달리자”

노브레인이 일본 후지록페스티벌 무대에서 일본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전범기를 이로 물어뜯어 찢어버린 날에도, 온 나라가 한마음이 되었던 촛불 시위 날에도 그곳에는 저항의 노래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거칠고 반항적인 겉모습만 보고 ‘사회부적응자’라며 손가락질할 때, 그들은 노래로써 세상을 바꾸려 발버둥을 쳤다. 그들처럼 불합리에 순응하기보단, 당장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저항하는 게 거시적으로 봤을 때 세상을 위한 일이 아닐까. ‘세상에 불만 많은 사람’이 되길 자처하면서, 또 너무 많은 '거짓에 싸우면서.' 20대 후반의 소시민이 된 지금도 내 가슴속에는 중학교 시절 밴드들이 불어넣었던 저항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으므로.


“세상에 불만 있냐?”
 10년이 훌쩍 지난 이제야 대답한다.

“네, 있는데요.”




+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펑크하는 밴드맨들 중엔 오히려 세상 순수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남들이 뭐라 하든 제 꿈을 찾아 펑크를 하겠는가. 겉으로 젠틀한 척하면서 속이 음흉한 이들보단, 겉으로는 조금 거칠어 보여도 속은 순수한 밴드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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